20년 역사 사업에 이제와 색깔 입히는 정부

2023.08.25 06:00 입력 2023.08.25 06:01 수정

광주 항일·음악가 ‘정율성 역사공원’ 정쟁 도구화

행안부·보훈부 문제 삼아…강기정 시장 “대표적 독립운동가”
지역선 한·중 우호 교류 상징…시민 “정치적 편 가르기” 지적

20년 역사 사업에 이제와 색깔 입히는 정부

광주광역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때아닌 색깔론에 휩싸였다. 정율성(사진)은 광주에서 태어난 항일 무장단체 출신 중국 음악가로, 광주시는 약 20년 전부터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해 각종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정부 내에서 중국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등을 작곡한 정율성의 이력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대체로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한국·미국·일본 공조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율성 역사공원은 광주시가 올해 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공원은 광주 동구 불로동에 그의 삶과 음악세계를 기리는 광장 등 988㎡로 조성된다. 총 48억4700만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에서는 각종 정율성 기념사업이 열리고 있다. 남구가 2004년 개최한 정율성 국제학술대회가 계기가 됐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에서 지난 23일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에서 지난 23일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남구는 정율성 사적 등을 복원해 한·중 우호를 다지고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보자는 전략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후 양림동에는 정율성거리가 지정되고 생가 표지석이 생겼다. 전시관도 지어졌다. 양림동은 정율성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2005년부터 정율성 국제음악제도 개최되고 있다.

정율성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이 20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광주 내에서는 이렇다할 논쟁이 없었다. 한·중 우호 교류의 상징으로 그를 평가하는 시각이 많았던 까닭이다.

정율성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활동 등 항일 독립운동과 작곡 활동을 했다. 6·25전쟁 당시 중국 인민군을 위한 전선 위문 활동을 펼친 후 중국으로 귀화했다. 이후 ‘팔로군 행진곡’과 ‘연안송’ 등을 작곡하며 중국에서는 3대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다. 박 장관은 지난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북한의 애국열사릉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행정안전부 감사실도 이 사업을 들여다보겠다며 광주시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SNS를 통해 밀양 김원봉 기념공원과 통영 윤이상 기념공원을 사례로 들며 “이 공원들도 문을 닫자는 말씀인가”라고 반박했다. 강 시장은 “그 아버지와 5남매, 친가·외가 모두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집안”이라면서 “그에 대한 공과는 역사에 맡겨 두자”며 기념사업 철회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광주시민들도 대부분 이번 논란에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림동에 사는 김춘혜씨(47)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데 마치 편을 갈라 나쁜 놈, 좋은 놈이라고 싸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말했다. 대학생 박상현씨(23)는 “이미 20년 넘게 진행해온 사업을 이제 와서 잘못됐으니 관두라고 한다”며 “시민 전체를 바보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율성선생기념사업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국에서 유명한 음악가가 된 그는 8·15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오려 했으나 남북이 가로막혀 광주에 돌아올 수 없었다”며 “수십년간 이뤄진 기념사업을 하루아침에 중단하는 것은 한·중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나친 이념 논쟁을 벌이는 것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