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잘 키울까 연구해…혼자 지낼 때보다 재밌어”

2022.05.02 21:52 입력 2022.05.02 21:59 수정

노인 위로하는 반려식물

서울 용산구 한 주택을 찾은 박상명 원예치료사(왼쪽 사진 왼쪽)가 조상줄 할아버지에게 반려식물로 스파티필름을 심은 화분을 건넸다. 박 치료사가 조 할아버지가 키우는 화분에 ‘시클라멘’이라는 이름을 쓴 푯말을 달았다.

서울 용산구 한 주택을 찾은 박상명 원예치료사(왼쪽 사진 왼쪽)가 조상줄 할아버지에게 반려식물로 스파티필름을 심은 화분을 건넸다. 박 치료사가 조 할아버지가 키우는 화분에 ‘시클라멘’이라는 이름을 쓴 푯말을 달았다.

코로나 이후 가족교류 줄어
노년 우울증 발병률 2배로

용산구, 반려식물 보급 통해
애정의 대상과 ‘연결’ 제공

“할아버지, 이건 스파티필름이라는 식물이에요. 하얀 꽃도 피어요. 화분에 손가락을 넣어서 흙이 묻어 나오면 수분이 많은 거니까 그땐 물 안 주셔도 돼요. 아무것도 안 묻으면 바짝 바른 것이니 그때 물을 주시면 제일 좋아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한 주택을 찾은 박상명 원예치료사가 조상줄 할아버지(85)에게 화분을 건넸다. 집에는 창틀, 탁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까지 여러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에는 부러진 가지 몇 개가 바나나에 꽂혀 있다. “이렇게 2주 정도 두면 뿌리가 나와서 심을 수 있어. 유튜브에서 봤지. ‘어떻게 하면 잘 클까’하고 항상 연구를 하거든.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식물 키우면 재밌지.”

박상명 치료사가 꽃이 핀 화분을 보며 “시클라멘이네요”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이름도 모르고 예뻐서 사왔어”라며 이름을 되묻는다. 푯말을 꺼내 시클라멘이라고 적어 화분에 꽂았다.

할아버지에게 돌봄을 부탁한 스타피필름 화분은 용산구가 지난해부터 보급을 시작한 반려식물이다. 혼자 살거나 우울증이 심한 65세 이상 저소득층 어르신 200명에게 원예치료사가 찾아가 전달한다. 복지관이나 경로당도 갈 수 없었던 고령 1인 가구나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간은 고립이나 마찬가지였다.

용산복지관의 강보경 사회복지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우울증이나 대인기피가 심해진 분들이 많다”며 “외부인과 만나는 것도 부담이 커져서 원예치료사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반려식물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라매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가족 간 교류가 줄면서 60세 이상 연령대 우울증 발병 위험은 2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우울증 병력이 전혀 없던 노인의 발병 위험은 2.4배 늘었다. 가족이 서로를 챙기기 어려워 복지사의 도움을 받는 저소득층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과 만날 수 없지만 연결을 이어가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반려식물이었다. 물리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 반려동물은 키울 수 없어도 식물을 가꾸며 애정을 쏟는 대상과 작은 일거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구에서 선정한 반려식물은 공기 정화 기능이 있고 키우기도 쉬운 스파티필름과 향과 꽃이 좋은 장미다. 원예치료사는 식물을 전달한 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식물과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이날 집을 나설 때쯤 할아버지가 휴대전화 번호를 ‘원예 반장’이라고 저장해 뒀다고 하자 박상명 치료사는 “‘반장’이라는 명칭이 좋다”며 웃었다. “식사 잘 챙기셔요. 전화드릴게요!”

본업인 플로리스트를 하면서 자격증을 따 원예치료사로 활동하는 그는 일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꽃과 식물이 노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전에는 안부 전화하면 ‘바쁘다. 다음에 다시 하라’며 끊었던 어르신들이 코로나19 시국에는 사람과 말할 기회가 줄어서 전화를 끊지 못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며 “퉁명스럽던 어르신들도 ‘목소리가 멋지시다’며 대화를 이어가면 마음을 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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