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지방]古都보존법 제정해야

2002.12.01 19:04

〈박병식·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의 창출이 새로운 국가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반만년 동안 축적해 온 한민족의 역사문화와 생활양식들은 매우 독보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세계화·정보화의 시대에 역사 문화재는 국가의 부(富)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며, 한국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귀중한 자원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최근 문화재위원회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바깥쪽 1,100여평에 대한 보존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사유재산권이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제한받게 됐으며,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할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경주지역에서는 이미 40여년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일이다.

수십년 된 낡은 주택을 신축하지 못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해 왔던 경주시민들에게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파괴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정부의 역사 문화재에 대한 무정견·무책임·무철학에서 기인한다. 정부는 말로는 반만년의 문화민족·한국문화의 위대성 등을 외치면서도 역사 문화재를 소중하게 다룰 충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현재 역사 문화재의 보존은 문화재보호법·전통건조물보존법 등의 문화재 관련법과 도시계획법 및 건축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고도지구·미관지구 등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 관련 규정은 개별적 역사 문화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은 전국의 모든 도시에 대해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또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현재까지 매장 문화재가 발견됐을 때 토지나 건물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가 발굴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있다. 풍납토성 일대의 재개발·재건축 건설회사들은 언제 유적이 출토돼 공사가 중단될지 모르는 지뢰밭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문화유적 발굴에 따른 모든 부담을 토지 소유자나 개발자가 져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문화재의 발견을 원하겠는가.

매장 문화재는 바로 국민의 재산이며 선조가 남긴 고귀한 민족유산이다. 이런 문화유적은 당연히 국가가 모든 경비를 들여 정밀하게 발굴하고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권리는 국가가, 책임은 개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문화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의 역사문화의식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최근 경주시민들은 ‘문화특별시’ 지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체 시가지의 대부분이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는 경주지역은 천년 고도의 역사 문화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정부 차원의 특별조치를 요청하고 있다.

이제 역사 문화재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돼야 한다. 이를위해 경주·부여·공주 같은 고도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고도보존법’의 제정이 절실하다. 도시전체가 역사유적으로 뒤덮인 지역은 현행 법령으로는 충분한 보존과 관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역사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문화특별법’ 제정도 검토해야 한다.

천년고도 경주를 살리는 것은 바로 한국문화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고도보존법 제정은 찬란한 역사 문화유산을 보존할 뿐 아니라 문화의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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