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광주시립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 박모씨(41)는 도서관 직원이 건넨 점자책을 만지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그가 받아든 책은 <장애인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 보고서였다. 지난달 23일 도서관에 그가 점자책으로 변환해달라고 요청했던 자료다.

“가족과 함께 사는데, 혼자 생활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거든요.”

점자 변환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박씨는 반신반의했다. 다른 점자도서관에서는 일반 소설책 한 권도 점자책으로 변환하는 데 평균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더욱이 연구 보고서는 각종 기호와 표 등이 많아 점자 변환이 까다로워 작업 기간이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사실상 원하는 도서나 자료를 바로 읽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점자 변환 신청 당시) 직원이 ‘한달 쯤 걸릴 것’이라고 해서 웃었는데, 이렇게 빨리 제작될 줄 몰랐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아침마다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립점자도서관은 지난달 14일 문을 열었다. 지상 4층(414.43㎡) 규모로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연합회)가 위탁운영을 맡았다. 해당 부지는 연합회가 마련했으며, 광주시는 국비 7억5900만원을 포함해 19억원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 광주에는 시각장애인 7146명(지난해 12월 기준)이 거주한다.

그간 연합회가 자체적으로 운영해온 도서관은 있었지만, 별도 건물을 짓고 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점자도서관은 이곳이 처음이다. 점자도서와 음성도서 등 8000권을 소장하고 있다. 열람실과 서고·교육실은 물론 점자 제작을 위한 인쇄실·녹음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도서관은 점자책 제작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한달 가량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여느 점자도서관들이 점자책 제작을 위해 일일이 점을 찍는 것과 달리 이곳에선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쇄기로 점자책을 만들기 때문이다. 책의 양쪽을 촬영하면 문서 파일로 자동 전환한 뒤 인쇄기로 점자를 찍어내는 방식이다.

도서관 직원 대부분이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점역교정사는 점자 규정과 오탈자 등 점자책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는데, 책에 있는 각종 표를 쉽게 정리하고 삽화를 점자로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상주 점역교정사가 1명인 반면 이 도서관에는 관장을 비롯한 직원 6명 중 4명이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2명도 조만간 자격증을 취득할 예정이다.

광주시립점자도서관은 개관 한 달 만에 점자책 50여권을 제작했다. 다른 점자도서관이었다면 6개월이나 돼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시각장애인들의 점자책 요청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책의 내용을 음성으로 전환·지원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손끝으로 읽는 독서 재미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도서관 측에 따르면 소설이나 시·자기개발서 등은 음성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지만 교육 목적 독서는 여전히 점자책을 선호한다.

광주시립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기본 점자 교육부터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심화반도 운영 중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시 낭송 등 문화 프로그램도 있다. 도서관이 비장애인들도 함께 이용하는 정보·문화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최영호 광주시립점자도서관장은 “전문인력을 통한 체계화된 서비스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우르는 최적의 도서관이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