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양형 높여도 되레 늘기만…여론 재판 우려도

2012.11.25 22:19 입력 2012.11.25 23:06 수정
이범준·유정인·윤은용 기자

물증 없이 5년형 선고에 고소인이 “거짓” 자백도

합리적인 대책 마련해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09년 양형기준을 만든 뒤 해마다 성범죄 양형을 올리고 있지만 성범죄는 오히려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범죄 양형이 적정한지를 놓고 여론재판 양상마저 보이면서 법관들조차 유무죄 결정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엄격한 법 집행과 성범죄 예방을 위해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08년 9월부터 성범죄자들에게 부착하고 있는 전자발찌들이 전시돼 있다. 정부는 매년 성능을 개선한 전자발찌를 새로 만들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2008년 9월부터 성범죄자들에게 부착하고 있는 전자발찌들이 전시돼 있다. 정부는 매년 성능을 개선한 전자발찌를 새로 만들고 있다. | 연합뉴스

25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2007~2011년 성범죄 통계를 보면 2007년 1만3396건이던 성범죄 건수는 2008년 1만5017건으로 늘었다. 2009년 양형기준이 만들어졌지만 1만5693건으로 상승세가 계속됐다. 여론과 국회의 요구로 2010~2011년 거듭 양형을 강화했지만 성범죄는 다시 늘어 1만8256건과 1만9498건을 기록했다.

법원 관계자는 “양형 강화만으로는 성범죄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현대의 형사정책 이론”이라며 “이 같은 이론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양형이 급상승하고 성범죄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법원 재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성폭행 재판에서 피고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징역 5년이 선고되자 놀란 고소인이 “나를 모함한 것이 힘들어 사실 아닌 것을 말했다”고 털어놔 무죄가 선고되는 해프닝도 나왔다.

성범죄, 양형 높여도 되레 늘기만…여론 재판 우려도

성범죄 재판부 판사들은 “사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무죄 판결문 쓰는 게 예전보다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어떤 판사들은 “양형이 너무나 높아진 상황이라 엄격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차라리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사단계에서 검찰이 성범죄 피해자 말만 듣고 허술하게 기소했다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아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성범죄는 강제성 부분이 핵심이지만 검사들이 고소인을 강하게 추궁하는 것을 껄끄러워하면서 결과적으로 무죄가 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지법에서 있은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6건 중 4건이 무죄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만약 법관이 재판했어도 무죄가 나왔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법원의 판단기준이 성범죄에서 무너지게 됐다는 평가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 양형기준이 너무 물렀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은 외국보다 오히려 양형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핵심은 법관이 여러 상황과 요소를 고려해 합리적이고 적정한 형을 선고할 여지를 줘야 하는데 이를 박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과 양형의 성급한 압박이 범죄 예방이라는 사회의 근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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