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받지 않는 교사’는 전교조 교사?

2013.11.01 19:01 입력 2013.11.01 22:31 수정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면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사고친 학생들의 정학이나 퇴학을 반대하는 교사’…

나열한 예시는 어떤 교사를 지칭하기 위해 든 예시일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좋은 교사’에 대한 예시를 든 것이 아니다. 1989년 문교부가 일선 교육청에 공문으로 내린 <전교조 교사 식별법>의 사례를 나열한 것이다.

1일 서울 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법외노조 효력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측 변호인은 30여분간의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이같은 자료를 제시했다.

이날 법정에서 제시된 <전교조 교사 식별법>은 이외에도 다양했다. 문교부가 적시한 예시에는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반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자기자리 청소 잘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도 포함됐다.

또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 ‘탈춤, 민요, 노래,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신문반 민속반 등의 특활반을 이끄는 교사’ ‘경향, 한겨레 신문을 보는 교사’ 등도 전교조 교사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같은 행동특징을 보이는 교사는 전교조 교사에 해당하니 신고를 하거나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촌지받지 않는 교사’는 전교조 교사?

■전교조 “단순히 해직교사 9명을 탈퇴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 아니다”

한편 이날 전교조측 변호인과 고용노동부측을 대리해 나온 정부법무공단측 변호인들은 각각 30여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면서 때로는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전교조측 변호인은 “노조의 해산을 규정한 시행령 제9조2항은 법률의 위임없이 제정된 것으로 고용노동부측도 이 부분이 위헌성이 있다는 점을 이미 인정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법 제12조3항에서 설립 중인 노조는 법률로서 신고서를 반려하도록 돼 있는데 이미 설립된 노조는 시행령으로 법외노조를 통보하도록 돼 있다”며 “설립이 되지 않은 노조에 대해서는 법률로서 통보를 하는데 이미 설립된 노조에 대해서는 그보다 하위법령인 시행령으로 통보를 한다는 것은 이미 한다는 것은 입법취지에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전교조측은 특히 전체 6만명의 노조원 중 고작 9명의 해직자 때문에 노조의 자주성이 상실됐다는 고용노동부측의 주장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노조원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4호 단서(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전체노조가 실질적으로 자주성을 갖고 있는 이상 노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전체 근무인원 34명의 사업장에서 2명(5.8%)의 무자격 조합원이 있다고 노조의 실질이 없다는 것은 위법이라고 한 대법원 판결을 제시했다. 6만명의 전교조 노조원 중 단 9명(0.015%)의 해직교사 때문에 전교조의 자주성이 상실된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앞에서 열린 ‘전교조 해직교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전교조 설립취소 철회 및 고용노동부ㆍ교육부장관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앞에서 열린 ‘전교조 해직교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전교조 설립취소 철회 및 고용노동부ㆍ교육부장관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전교조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봐야”

특히 변호인은 전교조가 해직교사를 노조원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역사적 의미에 방점을 뒀다. 노동자의 권리가 약하던 80년대에는 사용자들의 일방적 부당해고에 맞서기 위해 해고자에 대해서도 노조원으로 인정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고용노동부는 해직교사 9명만 포기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9명에 대한 포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노조원의 보호를 위해 가장 앞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사용자가 하는 가장 전형적인 행위는 징계였다”며 “결국 가장 앞장서서 활동한 사람이 해고라는 형태로 징계를 받고, 그 사람이 해고됐다는 이유로 노조에서 탈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노조 자체가 와해되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지금 현재 몇 명이 나가면 되는 게 아니냐가 아니라, 본질은 그 9명의 탈퇴를 시작으로 전교조의 자주성이 침해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법의 보호 요구하면 안 돼”

그러나 고용노동부측은 “일반노조와 교원노조는 명백히 차이가 있는데 전교조는 일반노조의 접근방식을 전교조에 적용하려 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전교조의 교원노조법 무력화 기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위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또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강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이 강조돼야 하는데 전교조는 참교육을 내세우면서 정작 법을 지키지 않고 법의 보호를 요구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법무공단 변호인은 “이런 선생님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어떤 것을 배우겠냐”며 “650만명에 달하는 학생과 1000만명이 넘는 학부모들에 대한 직무위반”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특히 “해직교사 9명에 대해 노조탈퇴 처리하고, 규약만 개정하면 3일 이내에 합법노조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기회를 주고 있는데 전교조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그러나 “해직교사 9명만 탈퇴하면 이후에는 이같은 처분이 없다고 확답할 수 있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현재로서 문제가 발생되는 부분은 해직교사 9명에 대한 부분”이라며 별도의 답변을 피했다.

현행 교원노조법은 현직 교원만 노조가입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는 규약에 부당해고된 조합원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이 규약에 따라 가입돼 있는 해직교사 9명을 노조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고, 전교조는 전체 노조원 투표를 거쳐 고용노동부의 시정요구를 거부했다. 고용노동부는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외노조지위 박탈통보를 내렸고, 이에 전교조가 처분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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