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예뻐서 수사권 준 거 아니다”

2018.07.01 08:36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6월 21일 정부서울청사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하는 동안 이낙연 국무총리·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강윤중 기자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6월 21일 정부서울청사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하는 동안 이낙연 국무총리·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강윤중 기자자

“정전협정이다.”

정부가 지난 6월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 합의문을 두고 한 정부 관계자는 이런 평을 했다. 이번 합의문은 ‘그만 싸우라’는 정부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60년 넘게 수사권 조정을 놓고 싸워 왔다. 한두 해 묵은 갈등도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해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이유는 검찰개혁이다.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세워진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이 매번 검찰과 싸우는 모습만 보인다면 검찰개혁 역시 요원하다는 정권의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결국은 수사권 조정을 통한 막강한 권력분산인데 그 수사권을 준다고 하면 누굴 주겠나. 경찰한테 줘야 하는데 경찰은 매번 검찰과 영장갈등, 수사 지휘권 갈등이나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찰을 믿고 수사권을 넘기도록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은) 일단 싸움을 멈춰놓아야 그 다음을 계획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간 작업이다.”

이 때문일까. 불과 일주일 정도 지난 6월 28일 현재 일선 경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울지역 경찰서의 한 수사팀장은 “처음에는 경찰들이 ‘무슨 이런 합의가 다 있냐’면서 분노하다가, 경찰 내 일부 인사들이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니 조금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가 지금은 까맣게 잊고 지낸다”면서 “(수사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런 합의사항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게 우리들의 솔직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번 합의문을 우리들(경찰)이 예뻐서 줬다기보다는 검찰개혁의 요체가 수사권 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넘겨 받은 것 아니냐”고 했다.

지휘관계가 아닌 대등한 협력관계로
물론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선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헌법개정 사안인 영장청구권 문제는 제외됐지만 경찰과 검찰의 관계를 상명하복 지휘관계가 아닌, 대등한 협력관계로 규정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라는 평가다. 조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앞으로 사건 송치 전까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 검·경의 수직적 지휘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는 핵심 조항인 셈이다. 물론 조정안에는 검찰이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상당 부분 남겨놨다. 검찰이 영장청구 시 필요한 경우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검찰총장 또는 각급 검찰청 검사장은 경찰청장을 비롯한 징계권자에게 해당 직원의 직무 배제 또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수사과정에서 법령위반, 인권침해, 현저한 수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사실의 신고가 있거나 인지하게 된 경우 경찰에 사건기록 등본 송부 및 시정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감시권’을 검찰에 부여했다. 수사 지휘권을 ‘빼앗긴’ 검찰을 달래는 일종의 당근인 셈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권과 함께 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됐다. 그러나 완전한 수사종결권이 아닌 ‘1차’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지 않더라도 불송치결정문, 사건기록 등본을 검찰에 통지함으로써 검찰의 사후 판단을 받도록 한 것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이의제기를 하거나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일선 경찰은 1차 수사권·종결권을 받은 것에 일단 환호하는 분위기지만 자성론도 있다. 경찰 내에 일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검찰에 ‘퉁치는’ 관행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머슴(경찰)이 주인집(검찰) 농사(수사)를 지으면서 내 논같이 농사 짓겠냐’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ㄱ경감은 “이제는 경찰이 검찰과 동등한 하나의 수사기관이라는 무게를 잘 인식하고 좀 더 책임감 있게 수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검찰개혁의 핵심과제 중 하나이기도 한 영장청구권이다. 영장청구권은 이번 합의에서 빠졌다. 헌법을 개정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이 영장을 기각했을 때 경찰이 관할 고등검찰청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원회(가칭)를 통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경찰이 그동안 줄곧 주장해 온 ‘검찰의 자의적 영장청구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간부급 경찰은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틀어쥐고 경찰의 수사를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다가 막상 그 사안이 언론 보도 등 외부로 공개되면 그제야 청구해주는 경우도 있어 왔다”면서 “때문에 비록 경찰이 검찰과 동일한 영장청구권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경찰이 예뻐서 수사권 준 거 아니다”

영장청구권은 빠져 여전히 아쉬움
물론 검찰 입장에서는 한없이 실망스러운 결과다. 공식대응은 자제하고 있지만 경찰의 부실·강압수사를 염두에 둔 비판은 검찰이 내놓은 의견서에도 적나라하게 나온다. 검찰 측 의견서를 살펴보면 “경찰의 수사과정에서의 불법수사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검사의 역할이 경찰의 수사에 ‘협력’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사의 역할은 구속력 있는 지휘·지시로 불법·부당한 수사를 중지시키거나 수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시정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민의 입장에서도 경찰 수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불법·부당수사를 통제할 장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찰이 ‘법률전문가’가 아닌 점도 우려의 근거로 들고 있다. 이미 과거부터 경찰의 부실·불법수사가 존재해 왔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경찰에 큰 권한을 주고, 실효성 없는 보완수사 등 2차 수사·감시권을 준 것은 검찰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영역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금융·증권범죄, 선거범죄 등으로 제한한 것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다. 테러나 연쇄살인사건 등 검·경 수사 협력이 필요한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이 즉각적인 수사권을 갖지 못한다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검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될 경우 현직 및 퇴직 2년 이내 정무직 공무원, 청와대·국정원 3급 이상, 법관·검사, 장성급 장교(전직에 한정),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과 그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대통령의 경우 4촌 이내 친족에 대한 수사는 모두 공수처로 넘겨야 한다(법무부 안). 검찰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혀 온 고위공직자 수사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셈이다. 경찰 역시 비록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수사기능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국가수사본부 신설이나 자치경찰제 확대 등 경찰 조직을 사실상 여러 갈래로 분산하는 개혁안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검찰과 경찰은 합의안이 발표된 이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질의응답을 통해 한 발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검·경 양측 모두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합의가 이뤄진다는 것은 양쪽의 입장을 100%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합의는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견제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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