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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25년 만의 신곡, 음반도 내기 전에 12곳서 리메이크”

2019.05.28 06:00 입력 2019.05.28 11:29 수정

“소송 대법까지 가고 공정위에도 제소…문체부도 책임 있어”

불법 개작 수십년 ‘방치’ 저작권 관리 단체 ‘음저협’도 문제

방송사들도 ‘무단 개작’…창작물 보호 ‘인격권’ 공론화 필요

작곡자인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노래를 리메이크한 불법 음반·음원 제작사를 고소해 1심에서 승소한 가수 서유석씨가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작곡자인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노래를 리메이크한 불법 음반·음원 제작사를 고소해 1심에서 승소한 가수 서유석씨가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창작자 동의 없이 작품 일부가 변경돼 세상에 공표된다. 미술이나 출판계에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 음악계에선 비일비재하다. 조용필, 서태지, 김동률씨 등 유명 가수들도 피하지 못했다. 고소와 호소가 이어졌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창작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돈’이 아니다. 창작물 의도를 보호하는 ‘저작인격권’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다.

■ “대법원까지 갈 각오로 소송”

가수 서유석씨(74)는 2015년 3월 자작곡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음원을 발표했다. ‘홀로 아리랑’ 이후 25년 만의 신곡이다. 음원 발표 뒤 CD를 만들기도 전에 12개 불법 음반 제작업자들이 서씨 허락 없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카세트테이프, CD, 차량용 USB 등에 담아 팔았다. 노래는 멜론·지니·엠넷뮤직 등 국내 다수 인터넷 음원 유통사이트에서도 거래됐다.

서씨는 두 업체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현레코드에서 가수 금잔디씨가 부른 곡은 1심에서 서씨 측 승소로 판결이 났다. 더하기미디어에서 가수 진성씨가 부른 노래는 1심에서 서씨 측이 패소했다. 이 소송은 결이 다르다. 서씨가 개작동의서 사인을 해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서씨는 사인을 해준 적이 없고 사인이 도용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재판 모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서씨는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대법원까지 갈 각오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서씨는 “리메이크를 하려면 원작자에게 개작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며 “내가 개작동의서에 사인해준 업체가 한 곳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 노래를 불러 앨범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이미 자신의 곡으로 나온 10여개의 앨범을 보고 CD 제작 계획을 접었다.

12개 업체의 노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에서 내주는 ‘증지’를 달고 나왔다. 음저협의 발매 승인을 받았다는 뜻이다. 음저협의 증지 때문에 멜론 등 음원 사이트도 유통했다. 멜론에서 1심 패소한 금잔디씨 버전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는 사용 중지된 상태다. 27일 현재 나머지 10여곡은 유통 중이다.

음저협은 작사·작곡가 등으로부터 각종 음원 저작물 관련 권리를 신탁받아 저작료를 대신 징수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협회는 업체의 음원·음반 발매 승인 요청이 있을 때 해당 음원이 창작됐는지 2차 개작(리메이크)됐는지 확인한다. 음저협은 음원 업체가 거짓말을 한다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음저협은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만 관리할 뿐, 본인 허락 없이 창작물 개작을 금한 저작인격권은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댄다.

음저협 관계자는 “업체가 사용 승인 신청 시 개작이 아닌 순수 창작곡이라고 하면 사용 승인을 내줄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업체가 리메이크곡을 창작물이라고 속여 승인을 요청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개작과 관련된 인격권 침해 문제는) 저작자 일신상의 권리라 신탁이 안된다. 우리가 관리할 수 없는 문제다.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개인이 고소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답했다.

■ 서태지는 음저협 탈퇴

불법 리메이크의 피해를 본 유명 가수들. 왼쪽부터 서태지, 조용필, 김동률씨.

불법 리메이크의 피해를 본 유명 가수들. 왼쪽부터 서태지, 조용필, 김동률씨.

음저협은 2차 개작 금지 권한을 가진 단체가 아니다. 그러나 회원의 음악이 부당하게 재사용되는 것을 수십년간 지켜보기만 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선 음저협의 태도가 불법 음반 업자들의 활동을 부추긴다고 본다.

가수 서태지씨는 음저협의 이 같은 태도를 비판하며 2002년 협회를 탈퇴했다. 2001년 가수 겸 방송인 이재수씨가 서씨의 ‘컴백홈’을 허락 없이 리메이크했다. 서씨는 이씨를 고소하고 자신의 음악이 허락 없이 리메이크되는 것을 방치한 음저협에도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으로 국내에 ‘저작인격권’ 개념이 알려졌다. 음저협은 당시에도 음반 발매 승인과 저작권료 관리만 할 뿐 개작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2005년 밴드 엠씨더맥스가 조용필씨의 인기곡을 모은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원곡 작사·작곡자인 조씨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낸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김동률씨도 히트곡 ‘거위의 꿈’을 인순이씨 말고는 누구도 허락받지 않고 리메이크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2008년 작곡가 박인호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자신의 노래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을 무단으로 개사해 불렀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박씨는 “<무한도전>이 허락 없이 가사를 바꿔 저작권을 침해했고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개사로 노래를 희화화해 나의 지적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실추시켰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이름이 알려진 가수들은 고소를 하거나 억울함을 토로할 기회라도 있지만, 그 외 작곡자들은 대처 방안이 마땅치 않다. ‘불법 리메이크는 관행’이라는 업계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 불법 업체와 합의금을 받고 합의한다. 고소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들다보니 자신의 곡이 불법 개작되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곤 했다.

음악 경연 방송에서 다른 가수가 원곡자 노래를 편곡해 부를 때도 모두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원곡자는 개작에 대한 언질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나 음악 프로그램 PD들 역시 저작권법, 특히 저작인격권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 원작자 ‘인격’ 침해가 핵심

음저협은 설립목적을 ‘저작권법에 의거, 저작권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음악 저작물 사용자의 이용편의를 도모함으로써 음악문화의 향상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누군가는 저작권료만 받으면 문제없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허락 없이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이라도 음저협에서 증지를 받고 나온 것이니 원곡자에게 일정의 저작권료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서씨는 불법 리메이크는 인격권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후배들의 리메이크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음악 색깔상 내 노래는 포크이고 트로트와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개작을 거절해왔다”며 “창작자로서 음악 표현이 다르게 되는 걸 걱정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주체의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해외에서 비틀스나 U2 같은 그룹은 리메이크가 거의 안된다. 저작권자와 협의가 안되면 저작인격권이 침해된다는 개념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평론가는 “한국 사회는 저작권 인식이 아직 희박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협회와 원작자, 사용자들이 함께 의견을 조율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협회가 재산권만 관리하고 인격권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허점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 측은 음악 업계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소할 예정이다. 그는 음저협 외에 음악 저작물의 저작권 침해 문제를 담당하는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서씨는 “사회 전체로 보면 음악가들의 불만이 작은 뉴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창작 업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며 “지금까지 그냥 넘겨온 불합리한 부분을 이번 기회에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 ‘저작인격권’이란?

저작권 크게 ‘재산권’과 ‘인격권’으로 나뉘어
불법 음반 유통, ‘공표권·동일성유지권’ 침해


저작권은 크게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구분된다. 재산권이 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전하는 권리라면, 인격권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다. 과거에는 재산권만 보호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이 많았다. 최근에는 예술작품에 깃든 저작자의 정신과 인격을 보호하지 않으면 재산권 보호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법 제3절 저작인격권에 따르면, 인격권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공표권’은 저작자가 저작물을 일반에게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둘째, ‘성명표시권’은 저작자 자신이 그 저작물에 자신의 이름(실명, 예명 또는 이명)을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셋째,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 등이 저작자 의사와 달리 변경되지 않도록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인격권’은 저작권자 본인만 관리가 가능하다는 뜻의 ‘일신전속권’을 가진다.

불법 음반 유통은 저작권자의 공표권과 동일성유지권이 지켜지지 못한 경우다. 원작자가 공표하고 싶지 않음에도 원작자 음악이 본인의 허락 없이 변경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이 같은 경우에 저작인격권이 침해됐다고 규정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펴낸 저작권 가이드북 <콕콕 저작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가이드북은 ‘음반 기획사에서 전문가를 투입하여 내가 작곡한 음악을 일부 변경하였습니다. 예술적 가치가 높아졌으므로, 동일성유지권 침해 주장이 어려운가요?’라는 예시 질문에 ‘고쳐진 내용, 형식, 제호 등이 설사 원래의 것보다 좋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저작권법상 저작자의 동의 없는 변경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술적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 또한 예외는 아니므로,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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