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명확한 거부 없어도 불법촬영 동의 단정 못해”

2020.03.01 22:25

술취한 여성 몰래 찍은 남성 무죄 선고한 2심 파기환송

“피고인, 피해자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 미필적으로나마 인식”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몰래 사진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대법원이 깼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명확한 거부 의사가 없었더라도 몰래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성폭력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67)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1일 밝혔다. 이씨는 2017년 4월 휴대전화 카메라로 피해 여성의 하반신 등 사진 2장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피해자가 운영하던 유흥업소의 손님으로 친분을 유지하던 중 외상 술값을 갚겠다며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씨는 피해자 동의를 얻어 사진 촬영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해자는 사진 촬영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1심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장원석 판사는 이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1심은 “사진 촬영에 동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그 동의는 명확한 것이어야 하는데, 촬영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2심인 의정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오원찬)가 무죄로 바꿨다. 2심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진의 존재를 말하고 스스로 사진을 전송한 점을 볼 때 이씨에게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은 또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했는데도 술에 취해 이를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버스에서 레깅스 바지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동영상 촬영한 남성 사건에서도 1심 유죄를 2심에서 무죄로 바꿨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한 것에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증거의 가치는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져 있지만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해야 한다. 단순히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을 갖고 증거를 배척해서는 안된다.

대법원은 이씨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가 당시 술에 만취해 판단능력이나 대처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면서 사진 촬영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이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대법원은 “(술에 취한) 피해자가 이씨 행위에 대해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해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이씨와 피해자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피해자가 이씨에 의해 자신이 사진 촬영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또 피해자는 잠들었기 때문에 촬영에 동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했다. 대법원은 “2심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만으로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봤다”며 “2심 판단은 증거법칙에 위배해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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