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도 우리 국민” vs “무단 월선 흉악범”…강제북송 첫 공판서 치열한 공방

2023.11.01 17:34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한 탈북 어민들이 귀순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으로 송환했다면 위법일까.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볼 수 있는지, ‘흉악범죄’와 ‘귀순의사’ 중 방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1일 열린 ‘탈북어민 강제북송’ 첫 재판에서 검찰과 피고인 측은 이런 쟁점을 두고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사례가 많지 않고 법적 근거가 모호한 데다,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진 사건이라 첫 재판부터 장시간 의견 진술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재판장 허경무)는 이날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들은 2019년 11월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도록 지시한 혐의, 탈북 어민들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 생명권·기본권 보장했어야”

검찰은 이날 탈북 어민들이 남한에 왔고 귀순의사를 밝혔다면 일단 남한 국민으로 편입된다고 전제했다.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제한해선 안 된다는 헌법 제37조 2항이 탈북 어민들에게도 보장된다는 것이다.

검찰 측은 “살인자라고 한들 국내 수사와 재판으로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할 수 있고, 그것이 헌법상 핵심가치인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온당한 처사”라며 “법치주의를 포기하고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생명권과 기본권을 무시할 만큼 절박한 안보 위협이 없었다고 본다”고 했다.

검찰은 탈북어민을 북송한 조치는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법령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귀순의사의 진정성 요건을 내세우고, 단기간 행정조사에 불과한 합동정보조사만으로 북송 여건이 인정된다고 단정한 것”이라며 “임의로 사건을 종결해 행정처분이 사법절차 당부를 판단하거나 피해 회복을 할 수 없게 해 그 자체가 직권남용 행위”라고 했다.

공판에 나선 검사는 모두발언 끝에 “이 탈북어민들이 강제북송된 뒤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 지금은 살아있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은) 유엔 가입국이고 실질적 사형폐지국인데 케이블 타이로 묶어 강제북송한 것이 정당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발언을 이어가던 중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전쟁중 대한민국·이중적 지위의 탈북어민…“강제북송 명명 동의 못 해”

반면 피고인 측은 이 사건의 탈북어민이 ‘잠재적 이중적 지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 주장대로 ‘북한주민=대한민국 국민’이란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지금까지 판례 등을 들며 “북한주민에 대해 어떻게 할 것 인가에 대해선 입법도, 판례도 없고 오로지 행정 당국의 조치만 있었다”며 “기존 행정 당국은 대공혐의점이 없는 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귀순의사에 따라 대한민국에 편입시키기도 하고 송환시키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16명을 하룻밤 사이 살해한 흉악범죄자가 군사분계선 NLL을 무단으로 침범해 월선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귀순의사를 밝혔지만 흉악살인범인 점, 북한체제에 불만을 품고 남한에 온 게 아니라 흉악살인범죄에 대한 도피 목적으로 남한에 온 점, 군사분계선을 무단으로 통과해 정전협정을 위반한 점 등 여타 탈북민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이어 “이들은 대한민국에 편입될 경우 국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사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북송 필요성이 있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할 경우에도 남한의 형사재판에서 이들을 단죄하기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라고 했다. 검찰 주장과 달리 탈북어민의 ‘귀순의사’ 자체는 북송 여부를 결정할 주요한 기준이 아니며, 북송은 여러 사정을 고려한 정당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정 전 실장 측은 마땅한 법률적 근거 없이 북송 조치를 취해 위법하다는 검찰 주장도 반박했다. “군사작전과 관련한 행정작용에 관한 한 법률의 직접적 근거 없이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관습법이 ‘전쟁 중’인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전 실장 등 피고인들은 NSC 상임위원회 의견을 청취하는 등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절차도 거쳤는데, 검찰은 이런 의견청취를 ‘공모관계’라고 둔갑시켰다”고 주장했다.

노영민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노영민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북한 선원 강제 북송과 관련해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 연합뉴스

정 전 실장은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이번 사건을 탈북어민 강제북송이라고 명명한 것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번 사건은 북한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다 NLL을 침범해 무단으로 월선한 범죄인들을 우리 해군이 제압해 나포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에선 이들이 (남한의) 사법절차에 따른 처분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국민의 생활과 안전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서 전 원장과 노 전 실장, 김 전 장관 등도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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