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9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문재인 정부 및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혐의를 일부는 유죄, 일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청와대가 송 전 시장의 당선을 위해 공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김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도록 정부 정책 발표 시점을 조정한 의혹, 청와대가 송 전 시장을 민주당 후보로 만들려고 경선 경쟁 후보를 매수한 의혹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청와대-경찰 ‘하명 수사’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3부(재판장 김미경)는 송 전 시장이 황운하 민주당 의원(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게 ‘김기현 수사를 해달라’는 청탁을 넣었다고 봤다. 또 송 전 시장이 측근인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과 공모해 문해주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울산광역시장 비리개요’ 문건을 전달했다고 판단했다. 민정수석실을 통해 경찰에 수사 청탁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윤장우 전 민주당 울산시당 정책위원장의 진술을 핵심 근거로 들었다. 송 전 시장의 선거캠프 전신인 ‘공업탑 기획위원회’ 멤버였던 윤 전 위원장은 검찰에서 “당시 송 전 시장이 황 의원을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김기현 관련 자료를 챙겨가 보라고 한 적이 있고, 이후 송 전 시장이 황 의원과 만나 이야기가 잘 됐다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황 의원은 김 대표 측의 비위 정보를 인지하게 된 건 송 전 시장 때문이 아니라 울산경찰청 홍보담당관을 통해서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송 전 시장 측에서 받은 김 대표 관련 비위 첩보를 내부 보고체계를 통해 경찰에 전달했다고 판단했다. 문 전 비서관이 첩보를 재가공해 ‘지방자치단체장(울산광역시장 김기현) 비리 의혹’ 문건을 만들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했고, 백 전 비서관은 이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박 전 비서관은 반부패비서관실 행정관을 통해 경찰청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백 전 비서관 등은 이러한 행동이 ‘통상 업무’였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규정상) 감찰 권한을 갖지 않은 현직 시장에 대해 비위 첩보를 수집, 작성해 수사기관에 인편으로 넘기는 게 통상적 업무라면, 대통령비서실에서 권력을 이용해 정치인이나 민간인을 사찰하고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제도와 국민들의 참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고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어 그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며 죄책 또한 무겁다”고 했다.
또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할 경찰조직과 대통령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여 국민들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피고인들의 선거개입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공익상의 필요가 매우 크다”고 했다.
공약 지원 혐의는 “증거 부족”, 경쟁후보 매수 혐의는 “진술 신뢰 어려워”
재판부는 청와대가 송 전 시장의 당선을 위해 공공병원 관련 공약을 지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검찰은 청와대가 송 전 시장이 공공병원 공약을 만들 수 있도록 정보를 지원하고, 청와대와 송 전 시장이 김 대표의 핵심 공약이었던 ‘산재모(母)병원’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탈락했다는 사실을 선거 직전 공표하도록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송 전 시장이 장환석 전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꼭 ‘공약 지원’과 관련한 공모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무엇보다 이진석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보건복지부에 검토하라고 지시했던 공공병원 설립안과 송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공약에 차이가 크다고 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2018년 지방선거 직전 김 대표의 공약인 산재모병원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고 발표한 것도 청와대와 송 전 시장의 공모에 따른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산재모병원 건립 예정지였던 울주군 측도 예타 탈락 발표를 미뤄달라고 요구하는 등 다른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송 시장의 단수 공천을 위해 내부 경선 후보자를 매수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핵심 증인인 임동호 민주당 전 최고위원의 진술을 신뢰하기 힘들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임 전 위원은 한병도 민주당 의원(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본인에게 전화해 ‘자리 거래’를 시도했다고 증언했으나, 공소장에 적힌 날짜에 통화내역이 확인되지 않은 데다 임 전 위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