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불복종 확산

추진 논리도, 집필 잣대도, 지지 세력도 ‘교학사 파동’ 판박이

2015.11.04 22:45 입력 2015.11.04 23:20 수정

‘99.9% 편향 교과서’서 빠진 교학사, 새 교과서 기준으로

2년 전보다 빠듯한 일정·반대도 거세…후폭풍 더 클 듯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이 교학사 교과서 파동과 닮아가고 있다. “나오면 보라”는 국정화 강행 논리도, 현행 교과서 공격의 잣대로 교학사 교과서를 매김하는 것도, 국정화를 옹호하고 추진하는 세력도 상당 부분 교학사 교과서 갈등이 극심했던 2013년과 겹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황교안 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하는 담화문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지 않은 학교) 99.9%가 편향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혀 교학사 교과서의 시선으로 국정교과서를 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4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황 총리가 밝힌 내용들을 집필기준으로 준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고시 전후에 국정화 반대 의견이 높아지자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비판하지 말라”는 답을 반복하고 있다. 2013년 5월30일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초안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집필진 성향상 친일·독재 미화 내용이 우려된다는 보도에 대해 교학사 지지층의 대응도 같았다.

그러나 8월 말 검정 최종 통과 후 드러난 교학사 교과서의 모습은 부실했다. 친일파들의 기업활동을 독립운동인 것처럼 다뤘고,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근대화를 이뤘다는 논리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명성황후 시해범의 입장을 알아보자는 내용과 의병 소탕, 일제에 쌀 수출 등 일본 관점의 표현, 지나친 이승만 띄우기,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공약 6항 삭제 수록 등 무더기 오류와 왜곡으로 뭇매를 맞았다. 2013년 9월 교학사 교과서 검정본을 분석한 4개 역사단체 학자들은 심각한 오류만 298건, 총 500여개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국정교과서를 지휘할 김정배 위원장과 고대사 분야 대표집필진에 합류한 이화여대 신형식 명예교수는 교학사 지킴이를 자처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23명에 이름을 올렸다. 교학사 교과서 구매운동에 앞장섰던 조전혁 전 의원은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위원, 교학사 교과서 필진인 권희영·이명희 교수는 국정교과서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 총리는 지난 3일 담화문 발표 내내 0.1%가 선택한 교학사 교과서를 콕 찍어 올바른 교과서의 기준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친일과 독재 미화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국정교과서에 깔릴 생각이 어떤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황 총리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20여곳의 학교가 특정 집단의 인신공격, 협박 등 외압 앞에 결국 선택을 철회했다. 다양성을 표방한 검정제는 실패했다”고 평했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경기지역의 한 공립학교가 교장 입김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교과협의회가 다시 열렸고, 수원의 한 학교에선 교과서 채택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가뜩이나 무더기 오류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 교과서를 이런 절차상 외압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와 학생, 동문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교학사 교과서의 선정 철회가 잇따랐다. ‘속도전’에 나선 국정교과서는 역사 왜곡 이전에 품질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교학사 교과서보다도 빠듯한 일정과 거센 반대 역풍 속에 진행되며 오류·왜곡으로 얼룩지는 ‘제2의 교학사’ 파동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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