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2018.11.20 06:00 입력 2018.11.20 10:00 수정

수능으로 본 교육 경쟁력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회 전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우리 사회의 교육만족도는 크게 떨어진다. 교육전문가들은 유불리에 사로잡힌 입시 문제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 전체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교육 대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회 전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우리 사회의 교육만족도는 크게 떨어진다. 교육전문가들은 유불리에 사로잡힌 입시 문제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 전체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교육 대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국가적 관심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며칠 전 끝났습니다.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1시간 늦춰지고, 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 이착륙마저 금지되는 경건한 ‘의식’은 외신에도 한국의 교육열을 알리는 놀라운 광경으로 소개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초등학교 이전의 유아교육 단계부터 초·중·고교까지 15년 이상 교육의 종착점은 수능과 입시라고 여겨져 왔고, 모든 노력이 이에 집중돼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외국인들의 눈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학업노동’에 혹사당하며 경쟁에서 승리한 아이들, 소위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과연 사회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인재로 자란 걸까요? 부모들의 바람대로 불안한 미래사회에 든든한 무기를 쥐여준 것일까요?

이번엔 불수능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 문제에, 선택과목의 유불리에 당락이 갈리는 수능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근본적인 우리의 ‘교육 경쟁력’을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 부작용 회피 위한 교육·입시정책

대입 정책이 곧 교육 정책
명문대 입학 유불리 따라
교육 내용·사교육 움직여

좋은 교육 위한 고민 없이
입시 단점 지우기 ‘땜질’

교육정책은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하는가, 어떤 인재를 기르고자 하는가라는 방향에 따라 어떤 내용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교육하고,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자연스럽게 실행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첫 단계인 교육철학부터 정립돼 있지 않습니다. 거꾸로 꼬리가 몸통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명문대 입학의 유불리에 따라 중·고교 교육의 내용이 달라지고, 초등학교 이전 단계의 사교육 시장이 이에 따라 춤추며 공교육을 흔들어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정책은 대입정책과 거의 동일어였습니다. 어떤 인재를 기른다는 뚜렷한 철학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에 손을 댔고 학교 현장엔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대입은 해방 이후 크게 4번(연합고사→자격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 바뀌었습니다. 1994학년도 수능이 도입된 이후에도 19번이나 개편을 거듭했으니 거의 매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던 셈입니다.

어떤 단점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한 변화가 많았습니다. ‘수능 연 2회 실시’는 난이도 격차 지적에 첫해 이후 사라졌고, 사교육 증가를 막기 위해 EBS 수능 연계 정책을 도입했으며, 수능이 어렵다는 비판에 따라 ‘과목별 만점자 1%’ 정책 도입, ‘만점자 1%’를 크게 벗어나며 과목별 난이도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폐지하는 식입니다. 학생 부담이 크다는 원성에 선택과목 수를 계속 줄이다가, 2015 교육과정으로 개정하면서는 너무 안 배우는 부분이 많다며, 도로 여러 과목들을 하나의 교과 안에 묶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좋은 교육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비판을 덜 받겠다는 비겁함입니다. 교육적으로 맞다면 욕을 먹더라도 그 방향을 고집해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정책에는 교육이 빠져 있습니다.

■ 세계는 미래 역량 키울 교육 고민 중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대비
소통·협력·창의성 고민
한국만 ‘반복 학습’ 제자리

세계 각국은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지 고민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교육전문가와 교사들은 21세기의 핵심역량을 ‘4C’로 정리했습니다. 소통(communication)과 협력(cooperation), 창의성(creativity)과 비판적으로 성찰(critical thinking)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며, 학교에서 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의 미래학자이자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뿌리째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라 일갈합니다. “정보를 이해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며,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세계적인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학생들의 성공적 삶을 위해 학교는 8가지 핵심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호기심·창의성·비평·소통·협력·연민·평정·시민성입니다. 유네스코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교육의 역할로 5가지(주인의식 강화, 변화를 위한 역량 강화, 장기적 관점과 의사결정 능력 학습, 미래 지향성 제고, 가치·행동·생활양식의 변화 촉진)를 꼽았습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사회에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스스로 배우려는 태도입니다.

우리 교육은 어딜 향하고 있습니까.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 이미 다가온 변화…교육은 제자리

평생 역량 키워야 할 미래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국민적 토론·합의 이뤄야

이미 사회는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당장 일자리 전망이 전통적인 교육과 충돌합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직업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에서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부모들이 선망하는 열 손가락 안팎의 전문직도 더 이상 평탄한 일생을 보장하는 ‘금동아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직업은 1만2000여개(워크넷, 2017년 12월 말 기준)로, 사회 변화와 함께 낯선 직업들이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단일화·표준화·대량화를 통해 산업화 시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탄생한 현대 학교교육 체제로는 인간 노동의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AI)이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출 수 없습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원하는 지식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공식을 달달 외고 각종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는 형태의 교육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은 아직까지 수십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 과목 만점의 비결은 반복훈련” “반복해서 문제를 풀고 또 풀었습니다”라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시민들도 우리 교육에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17)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82.2%가 지금의 암기식, 주입식 교육제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7.4%에 불과했습니다.

■ 원점부터 재논의, 담대한 전환 필요

언제까지 이런 저효율 교육에 아이들과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갈아넣으며, 국가적 낭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요.

교육전문가들도 현재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래사회는 평생 역량을 키워야 하는 사회인데, ‘번아웃’된 상태로 대학에 들어가고 있으니, 완전한 전략적 실패”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만 16세 학생들은 2012년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읽기 부문 2위 등 최상위권을 차지했지만, 같은 OECD의 성인역량조사(PIAAC)에선 조사에 참여한 22개국 중 12위(문해력 부문)로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문해력과 연령대의 상관관계 그래프를 보면 30대에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가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은 20대 초반 최고점을 찍고 급전직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러한 곡선 형태를 ‘10대 집중형 평생학습곡선’이라 일컫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10대에 학습량이 집중하며 학교 졸업 후 학습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수능의 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조차 언론을 통해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봤을 때 불합격권에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능이 암기력 테스트로 전락했다는 증거”(동아일보 2017년 7월31일자), “수능점수 290점과 285점의 의미 있는 차이는 전혀 없는데,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진다”(중앙일보 2017년 9월10일자), “수능이 도입 취지와 달리 대입전형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 전형 자료로 활용되는 것도 경쟁 완화에 역행하니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세계일보 2018년 6월26일자)며 여러 차례 수능 중심 입시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수능, 학종이 몇 %가 되어야 한다’는 논쟁에서 한발 물러서 우리 교육과 사회의 미래를 좀 더 넓고 길게 바라봐야 합니다.

일단 입시는 두드러진 단점만 보완하고 논의를 당분간 중단하길 제안합니다. 당사자의 문제가 될 경우 입시란 어차피 유불리에 따라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초등학생 혹은 그보다 어린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를 염두에 두고 과연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관련 전문가 모두가 모여서 논의하고 국민적인 토론에 부쳐야 합니다.

정치, 산업, 경제, 노동, 시민, 학생, 교원 대표 등이 모두 모여 10년 후, 20년 후의 사회를 지금부터라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한 세대 후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합의점을 찾아서, 그에 따라 각급 학교의 역할, 교원 양성 방안, 교육과정, 평가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면 됩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1 대 1 맞춤식 교육’과 학습자 주도성이 발휘되는 교육,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 새로운 것에의 배움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 등은 전 세계 교육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미래 교육의 방향입니다.

“잘 보든 못 보든, 잘 보든 못 보든….” 몇 년 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수능일에 부른 일명 ‘수능송’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 서울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 성적 상위 몇 %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현재의 입시 위주 교육정책으론 개인도, 사회도 미래가 없습니다. 잘 보든 못 보든 시험 자체의 영향보다 긴 인생의 과정마다 여유 있게 대처하는 유연함이 미래엔 더 필요합니다. 개개인과 사회를 살리는 담대한 교육비전, 우리 사회에선 언제쯤이나 가능할까요?

■ 우리 교육 이대로 좋은가

■ 성열관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미래 사회는 노동시장이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사회, 삶의 불안요소가 강해지는 위험사회라는 두 측면이 있는데, 한국 교육은 둘 모두에 준비가 잘 안되고 있다. 시험 공정성 담론이 논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약점은 보완하되 역량은 키워야 한다.”

■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어떻게 하면 명문대에 진학해서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가가 모든 학생, 학부모들의 관심인데, 평생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미래 사회에선 교두보 확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허망한 목표다.”

■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교사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유동적인 세상에선 축적된 지식은 순식간에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성취도 위주의 현재 학교평가보다 스스로 학습을 설계할 수 있는 역량과 협업을 위한 관계조정· 사람 마음 이해· 공감· 소통 등이 더 필요하다.”

■ 유성룡 입시분석가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현재의 오지선다, 찍기식 수능은 문제다. 쉬운 수능을 강조하니 변별력이 상실되고 눈치경쟁만 심화됐고, 문제가 어려우면 사교육이 활성화된다. 조급해하지 말고 대한민국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이 뭔지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

■ 수험생 부모들 수능일 SNS 멘트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6)‘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로 담대한 전환을


“내가 학력고사 볼 때 자식들은 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없다.”
“제한된 시간에 신속, 정확하게 답을 찾는 이런 시험이 아이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