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게 만든 ‘국민 어학시험’ 토익, 불혹 맞았다

2022.12.02 15:55 입력 2022.12.02 16:46 수정

1982년 1월 첫 시험…73명 응시

연 3회, 서울 등 5개 도시만 시행

평균 점수도 550점→680점 ‘쑥’

토익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수험생. 연합뉴스

토익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수험생. 연합뉴스

고성욱씨(22)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각기 다른 목적으로 거의 매년 토익(TOEIC)에 응시했다. 고씨가 대학에 입학한 2018년 여름방학에 카투사 지원을 목적으로 응시한 것이 처음이었다. 카투사에 지원하려면 토익 점수가 780점을 넘어야 한다.

2020년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갈 때는 900점 이상의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지난해에는 변리사 시험을 보기 위해 또 토익시험을 봤다. 변리사 시험에 응시하려면 토익이 775점 이상이어야 한다. 내년에 법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씨는 지난 8월에도 토익을 봤다.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도 어학 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토익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서 계속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2일 YBM 한국토익위원회에 따르면 과거 토익은 소수의 응시자가 1년에 세 번만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1982년 1월17일에 열린 제1회 토익시험에는 금융연수원 직원과 학원 강사 등 73명이 응시했다. 제2회 시험에는 기업 임직원 277명이 응시했다. 2013년 토익위원회가 마지막으로 공개했던 응시인원은 연 207만명이었다.

현재 토익이 대표적인 어학시험으로 자리잡은 것과 달리 40년 전 토익은 영어 사용 빈도가 높은 소수의 직장인과 공무원이 치르던 시험이었던 것이다. 30년 전에 토익을 공부했던 김모씨(49)는 “과거에는 다른 영어 시험이 더 보편화돼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토익 정기시험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26회 실시된 반면 도입 첫해의 정기시험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5개 도시에서 연 3차례만 실시됐다. 당시에는 종이로 된 신청서를 작성한 뒤 현금으로 토익 응시료를 내야했다. 성적은 시험을 치른 뒤 40일이 지나서야 전화나 우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시험 10일 뒤면 온라인으로 성적 확인이 가능하다.

국내의 토익 평균 점수는 40년 전 약 550점에서 지난해 680점으로 올랐다. 당시 응시료는 약 1만8400원으로 올해 응시료인 4만8000원의 약 38% 수준이다. 다만 당시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이 546만원이고 지난해 국민소득이 3656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과거의 토익 응시 부담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박선영씨는 지난해 1~3월에 목표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 토익에 응시했다. 박선영씨 제공

박선영씨는 지난해 1~3월에 목표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 토익에 응시했다. 박선영씨 제공

현재의 토익은 대학 졸업과 취업을 위한 ‘필수코스’로 불린다. 취업준비생 박선영씨(24)는 오는 25일 토익을 앞두고 있다. 취업 서류에 토익점수를 기재해야 하는데 토익점수의 2년 유효기간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박씨는 2020년 대학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 처음 토익을 봤고, 지난해에는 취업을 위해 토익을 세 번 봤다. 그는 “900점을 넘어야 원하는 기업에 지원할 수 있어서 목표 점수가 나올 때까지 매달 응시했다”라고 했다.

대학생, 취준생뿐 아니라 직장인 중에도 토익에 응시하는 이들이 많다. 2년차 직장인 배근표씨(30)는 “두세 달 안에 토익을 보고 회사를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A씨(24)도 사기업 이직을 위해 지난달 13일 토익에 응시했다. A씨는 “ 더 높은 토익점수를 받으려고 퇴근 후 짬을 내 기출문제를 풀면서 공부했다”고 했다.

한국토익위원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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