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원 내 감염·환자 추적 놓쳐… ‘현장’ 부주의가 사태 키웠다

2015.07.01 22:00 입력 2015.07.01 22:02 수정

병원·정부, 감염병 ‘방심’

접촉자 명단 놓고 실랑이

전문가 “장기계획 세워야”

서울 강동성심병원 감염관리실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173번째 환자(70·여·사망)가 확진된 지난달 22일부터 정부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이 병원은 173번째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외래·입원·중환자실에서 진료했다가 하루아침에 메르스 위험지대가 됐다.

병원 직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병원을 다녀간 환자·보호자 수천명을 찾아내는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같은 자료를 되풀이해서 중구난방 요구하는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보건소 직원과 끝없는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메르스가 발병한 지 1일로 43일째를 맞도록 정부와 의료기관 간 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우리도 복지부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미숙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메르스 현장 리포트 - 답은 □□에 있다](1) 병원 내 감염·환자 추적 놓쳐… ‘현장’ 부주의가 사태 키웠다 이미지 크게 보기

[메르스 현장 리포트 - 답은 □□에 있다](1) 병원 내 감염·환자 추적 놓쳐… ‘현장’ 부주의가 사태 키웠다 이미지 크게 보기

메르스의 국내 유입이 확인된 5월20일부터 현재까지 보건당국과 대형병원들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실수를 거듭해왔다. 방역·감염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다. 학계 전문가들은 병원 내에서 확산되는 감염병 유입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보고 있다. 처음 경험하는 미지의 바이러스 앞에서 정부와 병원은 근거 없이 자신만만했다. 메르스 확진자(182명)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으로 불어난 것은 한국 특유의 의료환경 탓이 크지만, 정부와 병원은 현장의 특수성에 눈감은 채 중동 사례에 기반을 두고 작성된 매뉴얼만 붙들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의 근저엔 현장에 대한 무지·무시·방치가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최초 환자(68·남)가 5월15~17일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서 같은 병실 접촉자만 격리했다가 같은 병동 내 감염자들을 놓쳐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병원이 최초 환자 확진 9일 만인 29일에 휴원한 뒤 민관 종합대응 태스크포스(TF)가 환경검체를 분석한 결과 에어컨·문고리 등 병원 시설물 전반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임현술 동국대 교수(예방의학과)는 “최초 환자 병실에 배기구·환기구가 없었던 특수한 상황들이 더해져 바이러스가 과도하게 확산됐지만 이 사실을 알기엔 당시 지식이 부족했다”며 “메르스는 (2m 이내 밀접 접촉자에게 전파 가능성이 높은) 비말 감염인데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까지 감염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승식 인하대 교수(예방의학과)도 “역학조사관들이 식중독처럼 산발적인 문제는 해결해봤지만 병원 내에서 확산되는 감염병 역학조사는 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대한 부주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반복됐다. 최초 환자의 메르스 감염을 처음 발견한 삼성서울병원의 정두련 감염내과 과장은 지난달 11일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최초 환자와 14번째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은 안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 병원은 5월29일 밤 정부 역학조사팀이 사전 연락 후 14번째 환자를 만나기 위해 내원했을 때 출입을 제한했고, 응급실 관련자 전체 명단을 6월7일에야 보건당국에 건넸다(경향신문 7월1일자 1·2면 보도). 현장에서 정부와 병원이 우왕좌왕하며 불협화음을 내는 사이 이 병원에서만 87명이 감염됐다. 14번째 환자에게 감염된 76번째 환자가 6월6일 입원했던 건국대병원에서도 보건당국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76번째 환자가 머물던 반쪽 병동의 환자만 격리했다가 복도 건너편 병동에서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격리망을 좁혔다가 현장에서 사태를 키운 실수를 발병 19일째까지 계속 되풀이한 셈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유입 초기 국내 감염 전문가들 대다수가 메르스를 가볍게 보고 방심한 게 이번 사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현장에서 예상했던 문제가 속속 엇나가면서 굉장히 머쓱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어떤 해외 감염병이든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장기 시나리오를 마련해 훈련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2009년 신종플루는 장기 시나리오를 세우고 거기에 맞게 행정권한·예산·인력동원 전략을 짰는데 메르스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대응하다보니) 하는 일마다 구멍이 나고 있다”며 “장기 계획이 미흡했던 점이 크게 아쉽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