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문가 제언

2018.04.03 06:00 입력 2018.04.03 06:02 수정
노정연 기자 , 박효순 기자 , 이유진 기자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박찬병 서울시 서북병원장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9)‘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문가 제언

■“보건소 등 1차 기관, 진료 강화해 국민 접근성 높여야”

기존엔 건강증진·예방사업에 집중

의료비 ‘경제적 장벽’ 해결 위해선

민간의 ‘자선’에만 기대서는 한계

“한국 의료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이 60%에 머물러 있고, 공공의료 인프라 역시 부족해요. 의료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체계적 공공의료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75)는 높은 국민 참여의식과 저비용 고효율 기조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좋게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장벽과 낮은 접근성 탓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7년 국민건강보험 시행 당시 자문위원으로 제도 설계에 참여한 문 교수는 한국 공공의료제도 구축과 국민건강증진에 힘써왔다. 1967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대 보건대학원, 남제주군보건소장을 거쳐 근로자건강센터, 노인전문병원에 이르기까지 40여년간 다양한 공공의료 현장에 몸담아왔다.

문 교수는 “한국에서 몸이 아파도 걱정 없는 사람은 아주 돈이 많은 부자 또는 의료급여를 받는 수급자들”이라며 “많은 중간계층이 의료비 ‘본인부담금’이라는 경제적 장벽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OECD 건강통계 2017’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의료비 가계 직접부담 비중은 36.8%로, OECD 평균(20.3%)보다 1.8배가량 높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역시 10년간 60%대에 머물러 있다. 문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70%까지 끌어올리되 ‘점진적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비급여의 급여화’ 방향에 동의하지만 구체적 재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보건소 등 1차 공공의료기관의 진료 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인프라를 활용해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공공의료의 기본 목표가 건강증진과 예방사업에 집중돼 있다보니 실질적 진료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건소 등 전국에 퍼져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진료 기능을 높여 1차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공의료 임무를 민간의료기관의 ‘자선’에 기댈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며 국가가 민간 부문이 수행하는 공공의료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도 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2017년 통계청 고령자 통계를 보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725만7000명으로,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한국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70만명을 넘어 4~5년 후면 ‘치매 환자 100만시대’를 맞는다.

문 교수는 “현재 민간에 내버려둔 치매 환자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옴과 동시에 경증치매 환자를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돌볼 수 있는 ‘지역사회케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지역사회케어와 시설케어, 가정케어를 조정하고 연계하는 기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9)‘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문가 제언

■“노인·이주민 등 결핵환자 적정진료 위해 예산 지원 시급”

격리치료명령자 규정, 엄격 집행

보건과 복지, 통합서비스 구축해

병원 중심서 거주지 중심 체계로

“전국 결핵환자 중 6000명 정도가 정신질환을 동반하고 있으나 치료병동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특히 결핵환자들은 충분한 영양 섭취가 매우 중요한데, 이 부분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서울시 서북병원 박찬병 원장(60)은 ‘보건소와 공공병원을 아우르는’ 일선 국공립 의료기관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의대 졸업 후 예방의학 조교를 하다가 보건소장에 지원해 30년 이상을 공공의료기관에 몸담았다. 그동안 보건소 4곳과 지방공사 의료원 4곳에서 기관장을 지냈다.

그가 일하는 서북병원은 국내 결핵치료 중심병원 중 한 곳이다. 365병상 중 170병상이 결핵치료 병상이다. 나머지는 치매 80병상, 재활 50병상, 호스피스 25병상 등이다. 감염병에 대비해 40병상짜리 격리병동도 갖추고 있다.

박 원장은 “현실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노인·노숙인·이주민·정신장애인·입원격리치료명령자 등에 대한 결핵관리의 정책적 접근이 상당히 부실하다고 했다. 노인 결핵은 노인 자살과 함께 노인빈곤 문제가 근본적 원인으로, 노인복지사업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노숙인 결핵 문제는 안정적 숙소 제공과 식사 해결 없이는 풀기가 어렵다. 이주민 결핵 문제는 결핵관리체계 내로 이들을 받아들이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질환자들의 결핵 등 감염병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예산·인력·시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결핵예방법에 명시된 ‘입원 또는 격리치료명령대상자’ 규정도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박 원장은 또 “의료급여(생활보호대상자 등에 대한 의료보장) 환자들의 낮은 식대는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북병원은 입원 환자의 40%가량이 의료급여 대상자다. 이들은 건강보험 환자들과 구분 없이 동일한 식사를 한다. 의료급여 환자 식대는 한 끼에 3440원이어서 병원의 재정 부담이 크다고 한다. 특히 결핵환자 중 정신질환을 동반한 환자를 위한 병원서비스(격리병실 운영 등)를 계획하고 있으나 예산의 뒷받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공공성 확충 및 강화와 관련해 박 원장은 “국민건강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경제적 형평성이 어느 정도 보장돼야 모두가 건강해지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취약계층에게 적정진료를 차별 없이 제공하는 것이 의료공공성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건과 복지의 분리가 아닌, 연계 차원을 넘어서는 통합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병원 중심에서 거주지로 찾아가는 체계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치매 국가책임제가 지자체별 특성이나 인구 편차 고려 없이, 한두 가지 정형화된 치매안심센터 모델을 획일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9)‘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문가 제언

■“보건 의료, 정치·사회 활동 영역…시민 참여가 중요”

공공성 높은 의료시스템 확대

민주주의 작동해야 가능한 일

국가에 ‘건강권 실현’ 요구해야

“공공성 높은 보건의료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활동의 영역입니다. 모두의 인생에 관계되니 스스로 참여하고 자기 의사를 반영시켜야 합니다.”

지난달 29일 만난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57)은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시민 참여를 강조했다. 김 소장은 “보통 의료라고 하면 전문가의 영역이라 여기기 쉽지만, 특히 공공성이 높은 의료는 전문가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제도를 결정하는 정치·사회적 활동의 영역”이라며 “시민은 중요한 의사결정 주체”라고 말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역시 논평 등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김 소장은 2006년 연구소를 공동으로 설립한 이후 줄곧 소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는 ‘건강권 실현’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종 정책 연구와 대안 개발, 의견 개진, 교육 등의 사업을 수행한다. 김 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의약분업 등 의료개혁 정책 입안에 관여했고, 2002년 대선 때에는 노무현 후보의 사회복지 공약 작성에도 적극 참여한 바 있다. 이후 제4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맡았다.

그가 시민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소장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작동해야 공공성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공공성은 국가가 책임지고 주도하는 것이지만, 국가가 공공성을 반드시 보장하리라는 법은 없다”며 “국가가 공공성이 높은 의료를 책임지기 위해선 이를 간절히 요구하고 바라는 유권자들과 이를 책임져야겠다는 강한 책무성이 있는 민주주의가 충분히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를 ‘민주적 공공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높은 공공성을 가진 의료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선 공공성이 높은 시스템이 정착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밤새 일하고 48시간씩 일한 전공의에게 무조건 공공성 높은 의료를 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돌봄 노동자나 병원 노동자들이 양질의 좋은 공공서비스를 할 수 있는 노동조건과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되묻는다. “건강보험제도의 가치는 뭘까요? 공공의료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무엇에 기여를 하려는 것이냐, 병원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김 소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병원이 가진 의미를 더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가난한 지리산 할머니’를 예로 들었다. 그는 “현재 건강보험제도 관점에서 보면 의학적 효과도 크지 않은 이런 행동은 의료남용, 나아가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까지 나올 수 있다”며 “그러나 할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단순한 치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공공성이란 측면에서 보건의료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여건이 되든 안되든 많은 사람들이 의료에서 얻으려 하는 다양한 가치를 충족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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