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공공병원

“코로나 이후 위기는 정부 실패…의료정책 다시 설계해야”

2023.06.13 11:39 입력 2023.06.13 19:59 수정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공공병원 정상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02 /서성일 선임기자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공공병원 정상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02 /서성일 선임기자

# 3년 4개월 전 A도시에 큰 재난이 닥쳤다. 당국은 B식당에게만 이재민들의 식사를 전담하라고 했다. 식비를 지급하고 재난이 수습되면 손실도 보상한다고 했다. 1년 전쯤, 상황이 안정되자 당국은 이재민 급식을 중단하라고 했다. 2년 4개월 만이었다. B식당은 영업을 재개했지만 떠난 손님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당국의 보상은 6개월만 지급됐다. 현재 B식당은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지역의료원들이 겪은 일과 현재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공공병원은 착한적자를 내는 곳’이라고 알려졌지만 병원 경영인으로서 경영난을 스스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임 원장은 “지역의료원 30여 곳이 모두 똑같은 일을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건 정부 정책의 문제라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성병원은 경기도의료원의 6개 자병원 중 1곳이다. 국내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2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5월 초 전담병원에서 해제됐다. 임 원장은 “정부가 병상을 동원할 때도 강제나 다름없었지만 전담 병상 해제도 100%를 한꺼번에 했다”며 “행정편의주의적 조치였다”고 했다. 전담 병상이라면 비어 있더라도 손실보상을 받는다. 단계적으로 해제됐다면 병원이 일반 환자 받을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 원장은 “병상부터 장례식장, 매점까지도 모두 동원됐었기 때문에 지정 해제된 후에는 병원 문을 새로 여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전담병원 지정 해제 후 6개월간 안성병원의 월 지출은 약 30억원, 수익은 약 12억원이었다. 그 기간 정부의 ‘회복기 손실보상금’으로 월 평균 8억원을 보전받았으니 매달 10억원씩 적자가 쌓인 셈이다. 지금도 한 달 10억원 안팎의 적자가 발생한다. 병원은 그간 모아놓은 자금과 경기도의 연간보조금으로 손실을 메우는 중이다. 임 원장은 “몇몇 지역의료원은 올여름 임금체불 위기가 올 수 있고, 우리 병원도 이 경영수준을 유지하면 내년엔 직원들 급여 지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은 정부의 ‘회복기 손실보상’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임 원장은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해도 공공병원의 위기는 계속되고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임 원장은 2018년 안성병원장이 되기 전 아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로 있었고,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을 지냈다. 상급종합병원과 공공병원에서, 또 감염병 정책 책임자로 일해보니 한국의 공공병원이 겪고 있는 근본적 위기가 보인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의료환경은 급변했습니다. 정부의 의료정책은 의료 서비스의 고도화·선진화를 추구했고, 이용자도 그걸 원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많이 한 병원들이 보상을 받고 그렇지 못한 병원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죠.”

의료서비스의 고도화란 명목으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분원 설치, 병상 추가 허용, 인력배치 기준 상향 등이 이뤄졌다. 이는 “개별 정책별로는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을 수 있으나, 상급병원들이 의료인력과 환자를 모두 쓸어가는 효과를 냈다.

임 원장은 “중소병원에 재원을 지원한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의사 인력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지역의료원들 앞날에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와 함께 ‘지역소멸’이란 병원 밖 위기도 있다.

임 원장은 공공병원의 조직 혁신도 과제라고 했다. 나아가서는 인력과 병상 등에 관한 의료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되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의제에 그쳐선 안 된다”면서 “의료체계의 재구조화가 될 수 있도록 전문 인력 양성과 배치 전반의 정책 설계가 큰 틀에서 새롭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병원의 3차 진료 기능은 민간 영역 중심으로 가더라도 지역 종합병원의 2차 의료는 ‘공공’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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