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공공병원

“코로나 이겨내니 이제는 알아서 살아남으라고요?”

2023.06.13 11:25 입력 2023.06.13 19:58 수정

인천의료원, 감염병 전담병원 해제 이후

병상 가동률과 외래 환자 모두 ‘반 토막’

경영난에 의료진도 떠나 공공병원 위기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지난 2일 인천의료원의 한 병실. 병상 아래 ‘빠른 쾌유를 빕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환자명, 담당의, 입원일 모두 빈칸이다. 옆 병실도, 그 옆 병실도 마찬가지다. 입원 환자가 줄어 ‘52병동’은 전체가 비었다.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코로나19 유행 시절 인천의료원은 ‘최전선’이었다. 인천공항과 가까워 국내 첫 확진환자를 치료했다. 2020년 2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후 305병상 중 70%를 코로나19 환자에 내줬다. 유행 초기엔 인공호흡기를 단 중환자 치료까지 맡았다.

지난해 6월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됐다. 그러나 2년 넘게 인천의료원을 이용할 수 없었던 ‘일반 환자’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 이전 80~90%였던 병상 가동률은 현재 50%도 안 된다. 하루에 600~700명 정도였던 외래환자는 ‘반 토막’이 났다.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52병동은 아예 운영을 중단했다. 다른 병동도 병상이 많이 비었다. 외과병동은 총 43병상인데 입원환자는 16명뿐이었다. 외과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코로나 유행 전에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어도 보람 있었다”며 “코로나를 보내고 1년이 다 돼가는데 환자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다른 병원으로 가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숙련 간호사들이 떠난 탓에 현재 병동 간호사의 60% 정도는 3년 차 이하다.

인천의료원에서만 17년간 일한 A씨는 요즘 공공병원의 위기를 체감한다. 그는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인천시 재정 문제 때문에 월급이 안 나왔던 경험이 있다”며 “그런데 지금처럼 환자 수가 회복되지 않고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면 그런 일이 또 반복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공공병원의 중요한 기능을 모두 잃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서울지역 공공의료 강화와 초고령사회 간호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 간호사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정정기준 마련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서울지역 공공의료 강화와 초고령사회 간호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 간호사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정정기준 마련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충청남도가 운영하는 천안의료원도 사정이 비슷하다. 천안의료원도 코로나19 유행이 번지면서 충남지역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됐고 유행이 끝난 뒤 의료원 본연의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경석 천안의료원장은 “현재 병상 가동률이 40%에 못 미친다”며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돌아오게 만들기 어려워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천안의료원이 있는 천안은 비수도권과 수도권의 경계다. 또 같은 관내에 대학병원이 두 곳 있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쉽게 다른 지역이나 병원으로 떠날 수 있는 구조다. 이 원장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실상 진료를 볼 환자가 없던 외과 계열 등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가만히 앉아서 월급만 받는 분위기를 못 견디고 떠났다”고 말했다.

[위기의 공공병원]“코로나 이겨내니 이제는 알아서 살아남으라고요?”

지역 공공병원 대부분이 경영난으로 의료진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어느 지역의료원에서는 코로나19 전담 병원 지정 해제 후 병상가동률이 2019년에 비해 절반을 밑돌고 있는데 환자가 줄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 지속해서 임금체불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며 “당장 6월부터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고 전했다.

현장의 의료진은 지역 공공병원의 위기가 널리 알려지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새로운 동료들을 구하기 더 어려워질까 불안해한다. 백지훈 천안의료원 진료부장(신경과 전문의)은 “정부라도 나서서 지역 의료원이 실제로는 휴가나 복지,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고 ‘일할 만하다’고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특히 의사가 부족한 필수의료 진료과만이라도 정부가 현재의 까다로운 인건비 지원 규정을 완화해야 지역 의료원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투석실)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신장내과 과장 등 의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은 인천의료원은 지난해 2월부터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했다. 현재 인천의료원의 신장내과 전문의는 0명이다. 문재원 기자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투석실)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신장내과 과장 등 의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은 인천의료원은 지난해 2월부터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했다. 현재 인천의료원의 신장내과 전문의는 0명이다. 문재원 기자

사실 코로나19 유행 전에도 공공병원은 어려웠다. 운영 특성상 의료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의뢰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팀이 진행한 ‘지방의료원 공익적 비용 계측 연구’(2022년 2월)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기준 34개 지방의료원의 공익적 적자 비용은 1247억원(전체 손실의 89.4%)이었다. 같은 진료권 내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과 비교하면 의료비용과 진료실적은 유사한데 인건비와 의료급여환자 비중이 높았다. 또 비급여진료 비율은 낮아 환자당 수익이 낮았다.

경기도의료원은 인구가 가장 많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만큼 산하 지역 공공병원도 6곳을 거느리고 있다. 수원병원을 제외하면 이천·포천·안성·의정부·파주 등 도내에서 인구 규모가 작은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지난 5월 기준 병상 가동률은 44.1%로 4년 전(2019년 5월·78.0%)보다 33.9%포인트 감소했다.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인천의료원의 한 병동이 지난 2일 비어있다. 전체 7개 병동 중 하나인 이곳 ‘52병동’은 감염병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반환자 감소로 병동 전체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문재원 기자

입원환자뿐 아니라 외래환자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올해 1~5월 외래환자 수는 31만3966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45만5661명)보다 14만1695명 줄었다. 같은 기간 의료수익(외래+입원수익)은 521억원으로 2019년(614억원)보다 93억원 줄었다. 경기도의료원 관계자는 “기존 내원 환자들이 타 병원을 이용하면서 코로나 이전 환자 수를 회복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감염병 전담 병원 해제로 정부 보상금 지급이 중단되고, 의료수입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 관리비 등 고정비용 상승에 따라 경영 상태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맡은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인천의료원만 해도 지금 월 15억~20억원 정도씩 적자를 보고 있다”며 “1년이면 적자만 200억이 넘는데, 코로나19 손실보상금으로 쌓아둔 돈을 갖고 운영을 하고 있지만 아마 연말이 되기 전에 잔고가 바닥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공공병원의 위상과 역할은 올라가는 듯싶었다. 조 원장은 “2019년 인천의료원 역사상 가장 많은 환자를 보고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던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오히려 공공병원을 강화해줄 중요한 계기가 되겠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대와 달리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최일선에서 역할을 다한 공공병원에 투자를 끊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이 지난 2일 병원 원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이 지난 2일 병원 원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경석 천안의료원장은 미래가 더 암울하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전국의 공공병원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장기 구상조차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공병원은 적자를 감수하고 취약계층 의료지원 등 본연의 기능을 하고 있는데 정작 평가와 지원에서는 민간 병원과 경쟁을 한다. 이 원장은 “민간병원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공공병원만의 특성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쪽에 지원해야 그나마 자생력을 기대해 볼 수 있을 텐데, 현재 정부나 지자체 그 어디에서도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장 의료인들은 무조건 지원은 바라지도 않으니 최소한 생존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백지훈 천안의료원 진료부장은 “지역 의료원이 성과를 내는 분야에 더 많은 지원을 제시하는 등의 방안이라도 마련해주면 각 병원이 공공의료가 필요한 영역에서 더 많은 환자를 모으려 애쓸 동기가 유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의료원 관계자도 “공공병원에 세금을 무한대로 써달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며 “다만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원상회복이 필요한데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벌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