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

2016.07.11 09:57 입력 2016.07.25 18:46 수정
경태영 기자

그림|김상민 화백

그림|김상민 화백

9년 전인 2007년 5월14일 새벽 5시30분쯤 경기 수원의 한 남자고등학교 매점 계단 옆에서 10대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몸에는 집단 구타를 당한 듯 팔과 다리에 수많은 피멍이 든 채 여학생이 남자고등학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10대 노숙소녀는 사망 전날 수원역에서 목격된 뒤 다음날 새벽 2.5㎞ 떨어진 남자고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0대 노숙소녀는 사망 전날 수원역에서 목격된 뒤 다음날 새벽 2.5㎞ 떨어진 남자고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른바 ‘수원 10대 노숙소녀 사망사건’이다. 이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한 다른 미제사건과는 달리 경찰과 검찰이 7명을 범인으로 찍어 법정에 세웠지만 모두 무죄로 풀려나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형사 피고인이 수감 중 재심이 결정된 후 출소해서야 재심 공판이 열린 첫 사건이다. 재심 개시 결정은 간첩조작 등 군사독재시절 공안사건에서는 있었지만 일반 형사사건에서 재심 결정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경찰과 검찰에 의해 두 번의 별도 수사가 이뤄지고, 법정위증 사건이 추가된 뒤 재심까지 결정된 이 사건은 총 15번의 법원 판결이 나온 사건으로 재심에서 누명이 벗겨진 사건이다.

■경찰, 범인으로 지적장애인 2명 지목

수원남부경찰서는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 소녀의 신원확인에 나섰으나 미성년자여서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없었다. 이후 방송 등을 통해 공개하면서 50여일 만에 소녀의 어머니가 나타나면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소녀의 옷차림이 노숙자 차림으로 사망 전날 수원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점으로 미뤄 노숙자들의 집단폭행으로 방치됐다 숨진 것으로 보고 수원역에서 기거하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했다.

수원역 광장 전경 |수원시 제공

수원역 광장 전경 |수원시 제공

경찰은 사건 발생 60여일 만인 같은 해 7월15일 20대 노숙자 정모씨(당시 29세)와 강모씨(당시 29세)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전과가 있으며, 사건 발생 전 20대 여성을 폭행한 점 등으로 범인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지적장애인으로 정씨는 지적장애인으로 등록은 되지 않았으나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고, 강씨는 지적장애 2급이었다. 결국 정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됐고, 강씨는 폭행에 가담한 혐의로 불구속입건됐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전경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전경

■검찰, ‘진범’이라며 가출청소년 5명 범인 기소

일단락된듯 했던 사건은 다음해인 2008년 1월 검찰이 “사건 진범을 잡았다”라며 발표하며 발칵 뒤집혔다.

당시 검찰은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인 가출청소년 중 한 명이 동료 소년수에게 ‘내 친구들이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주범이고, 엄한 장애인 노숙자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구속돼 친구들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고, 재수사끝에 이들의 범행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10대 청소년 5명 중 형사 미성년자 1명을 제외한 4명을 추가로 구속, 기소했다.

경찰에서 범행을 시인하던 이들 청소년들은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들은 2008년 4월 열린 공판에서 “경찰과 검찰이 짜맞추기 수사로 위협하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정씨도 증인으로 출석해 “나는 물론 가출 청소년들도 당시 수원역에 함께 있었지만 노숙소녀 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물적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노숙 청소년들의 자백을 검토한 결과 범행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이들을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한 정씨에게 “혐의를 번복했다”며 위증죄를 추가 기소해 징역 6개월을 추가 선고했다.

가출 청소년들은 “노숙소녀를 때려 숨지게 했다고 자백한 것은 검사의 회유에 의한 것으로 검사가 유도진술을 하게 했다”며 억울하다고 항소했다.

2009년 1월 서울고법은 항소심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된 자백 경위가 석연치 않고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며 가출 청소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상고했으나 다음해인 2010년 7월 대법원은 이들에게 전원 무죄 확정 판결을 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전경

수원지방검찰청 전경

■노숙인도 ‘무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경찰에서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던 정씨는 2007년 8월 열린 1심에서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강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에서 정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시작했다.

앞서 정씨는 2008년 가출청소년들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나도 가출청소년들도 죽이지 않았다”고 증언해 위증죄가 추가돼 6개월의 실형이 추가된 바 있다.

정씨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2010년 8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11년 7월 재심청구가 기각됐다.

정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고, 2012년 6월 재심 결정을 받아냈다.

서울고법은 같은 해 8월21일 정씨에 대한 재심을 개시했고, 두 달뒤인 10월 상해치사혐의는 무죄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미 정씨는 5월2개월을 복역하고 2012년 8월 2일 만기 출소한 상태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다.

정씨와 같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형에 처해졌던 강씨도 다음해인 2013년 10월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가출청소년들은 무죄 확정이 나기까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부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00만원에서 2400만원까지 모두 1억2300만원을 지급하라”를 판결을 받아냈다.

정씨도 2015년 3월 서울고법에서 1억3100만원의 형사보상 결정을 받아냈다.

■경찰·검찰의 강압적 짜맞추기 수사 논란

수원 10대 노숙소녀 사망사건은 초동수사를 맡은 경찰은 폭행과 협박으로 허위자백 받아내고, 검찰은 중요 사실이 누락된 조작된 조서로 재판 진행한 전형적인 부실 수사로 드러났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사무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사무실

정씨는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군화발로 정강이를 차고, 서류뭉치로 뒤통수를 때려 공포심을 느꼈으나 난 죽이지 않았고, 그날 밤 학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렇듯 체포·구속, 진범 추가 기소, 유죄 판결, 항소, 재심 청구, 대법원 무죄 판결까지 6년여를 끌어왔던 ‘수원 10대 노숙소녀 사망사건’은 진범은 잡지 못한채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경기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관계자는 “검찰로 송치된 사건은 더 이상 수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건 일지

2007년 5월 14일 새벽 수원의 한 고교에서 10대 노숙소녀 숨진 채 발견

7월 15일 수원남부서, 20대 노숙자 정모씨(29)와 강모씨(29) 범인으로 검거

8월 수원지법 1심, 정씨 7년형, 강씨 벌금 200만원형

12월 서울고법 2심, 정씨 5년형

2008년 1월 수원지검 “진범 따로 있다” 가출청소년 5명 기소

4월 수원지법 1심 재판 가출청소년들 “범인 아니다. 안죽였다” 진술

정씨 “나도 애들도 안 죽였다” 증언

7월 수원지법 1심 가출 청소년 전원 유죄로 징역 2~4년형 선고

2009년 1월 서울고법 가출 청소년 전원 무죄 선고

2010년 7월 대법원 가출 청소년 전원 무죄 확정

8월 정씨, 서울고법에 재심 청구했으나 기각

2012년 6월 대법원 재심 결정

10월 서울고법 정씨 무죄 확정

2013년 10월 공범 강씨도 무죄 확정

2014년 10월 서울중앙지법 가출청소년 5명에게 손해배상 지급 결정

2015년 3월 서울고법 정씨에게 형사보상 결정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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