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 양대 노총에는 현장 자체가 죽어 있다“

2013.05.01 22:25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쓴소리’

”정부는 미사여구 많지만 개혁의 비전·수단 없어”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76·사진)이 “한국노총은 진정성이, 민주노총은 내부 운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며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현장 자체가 죽어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미사여구는 많지만 개혁의 비전이나 수단은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꼬여 있는 노동 문제를 풀어가지 못하는 노사정을 향해 격정과 우려를 쏟아낸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노사정위원장(2003~2006)을 지냈고, 현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1월엔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세계노동운동사>를 펴내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계간지 ‘노사공포럼’과 장문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노동절인 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동계의 상황이 좋지 않다”며 “노사공포럼에 내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민주 양대 노총에는 현장 자체가 죽어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노사공포럼과의 대화에서 “한국노총은 자주성·민주성·투쟁성이 취약하다”며 “과거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내부적 변화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정당(옛 한나라당)과 정책연합을 했다가 2년도 되지 않아서 야당(민주통합당)과 손을 잡는 것이 조합원이나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불신으로 이어진다”며 “지도부 안에서도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일부는 새누리당 비례로 간 것은 신뢰·권위를 손상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을 향해서는 “투쟁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며 “정파논리만 앞세우고 합리성과 민주성, 대중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지도부 선출에 실패한 것을 두고 “대의원대회에서 두 후보가 과반수를 못 얻은 것은 정파 간 의견 차이도 있겠지만 누가 된들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 하는 절망감, 패배감의 표현”이라며 “노동운동 전체가 권위가 없어져 시민단체보다 더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박근혜 개인은 파쇼와 유신의 후예인 것이 사실”이라며 “유신·파쇼를 극복할 자기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정책도 복지, 상생 등 좋은 얘기들은 하고 있는데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동정책에 관한 개혁의 비전이나 수단은 안 보인다”며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밖에 없는데 일자리는 정부 마음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 통보를 검토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교조, 민주노총에 압박을 가하는 것도 법률상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산별노조 체계하에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걸 제한하는 나라는 없는데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법률 해석 자체를 법대로 원칙적으로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동정책 개혁은 정부가 해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노동세력이 투쟁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노동계 현실은 투쟁을 만들어낼 동력이 취약한 상황이다. 그는 “노동자들의 자존감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 국민들 생활상을 보면 민란이 일어나도 몇 번 일어났어야 되는 상황”이라며 “빈부 격차, 불안한 일자리, 실업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다른 데 희망을 찾지 못하니까 힘이 있어 보이는 쪽에 희망을 걸어본다. 박근혜를 지지할 수도 있고 안철수를 지지할 수도 있다”며 “야당에 기대하기 어렵고 진보 정치세력은 말로만 떠들면서 정파 놀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남발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를 갖고 대중성이 뒷받침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장활동이나 일상 활동이 없으니까 (노동자들이) 사용자나 정부의 눈치만 볼 뿐 노동조합에 기대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동계의 무너진 현장 복원과 자기혁신을 요구했다. 그는 “상층부에서 혁신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면 이대로 침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중조직의 본산인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의회라는 교두보를 통해 제도권 정치에 발언권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모체가 되어야만 인간다운 조건이나 실질적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사정 3자 모두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도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때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오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들어왔으면 노동부 관료들의 입김을 제쳐 놓고 직접적 딜(주고받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민주노총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한국노총과 공동전선도 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장으로서 노사정위원회나 사회적 대화기구가 있어야 하고 사용자도 상생과 협력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도 노사의견을 충분히 들어가면서 정책이나 제도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도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노사정 대화 혁신을 위해서는 “노동조합부터 사회적 대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일반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대안,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방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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