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산적한데… 분열·갈등의 늪에 빠진 노동계

2013.05.01 22:26 입력 2013.05.01 23:05 수정

민노총, 수장 못 뽑고 6개월째 내부갈등

한노총은 정치적 타협에만 골몰 지적

123주년 노동절인 1일 민주노총은 서울에서 1만여명이 참여한 거리행진과 기념대회를 했다. 한국노총 조합원과 시민 2만여명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마라톤대회를 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은 노동 배제를 넘어 노동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며 올해 노동절 구호로 ‘노동 없는 박근혜 정부 규탄과 노동의 사회적 위상 제고’를 앞세웠다. 서울역에서 거리행진을 시작해 오후 3시 서울광장에서 기념대회를 할 때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산업재해 사망 처벌법 강화, 최저임금 현실화, 의료공공성 강화가 노동자들의 핵심 구호로 나왔다.

한국노총은 ‘고용안정·일자리 창출과 산재예방·안전문화 확산’을 마라톤대회의 슬로건으로 잡았다. 올해 마라톤 행사는 처음으로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함께 열었다. “노동 없는 정부 규탄”(민주노총)과 “일자리 창출”(한국노총)이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양대 노총의 ‘화두’로 갈라져 터진 하루였다.

<b>민주노총은 노동자대회</b> 123주년 노동절인 1일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서 연 전국노동자대회 도중 전국에서 올라온 크고 작은 노동조합 깃발들이 광장 중앙으로 입장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민주노총은 노동자대회 123주년 노동절인 1일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서 연 전국노동자대회 도중 전국에서 올라온 크고 작은 노동조합 깃발들이 광장 중앙으로 입장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b>한국노총은 마라톤대회</b>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노동절 마라톤대회에서 시민들과 조합원들이 출발 신호에 맞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한국노총은 마라톤대회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노동절 마라톤대회에서 시민들과 조합원들이 출발 신호에 맞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노동절을 맞는 양대 노총은 ‘제 머리 못 깎는’ 노동계의 현주소도 그대로 보여준다. 철탑농성과 노동자들의 자살·분신이 이어지고 있지만 책임 있게 문제를 풀어가는 중심축에서 양대 노총은 벗어나 있다. 민주노총은 6개월째 내부 갈등으로 위원장이 공석이고, 한국노총은 노동현안은 뒤로한 채 정부·경영계와의 일자리 타협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두 조직 모두 노동자들의 까칠한 시선을 받고 있는 배경이다.

민주노총은 ‘임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애매모호한 체제로 노동절을 맞았다. 철탑농성 중인 현대차·쌍용차·재능교육 노조가 산하 조직이지만 민주노총은 정부·경영계와 맞서고 교섭할 구심점도 세우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1월 김영훈 전 위원장이 임원 직선제 유예 논란에 휩싸여 사퇴한 후 6개월째 지도부를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장 선거를 위한 대의원대회는 두 차례나 답 없이 끝났다.

지난 3월 이갑용 후보와 백석근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로 나선 대의원대회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지난달 23일 1차 투표에서 다수득표한 이갑용 후보의 찬반투표 역시 정족수 미달로 투표함 뚜껑을 열지 못했다.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유성기업, 골든브릿지증권 등 장기투쟁 사업장 노조들은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과 자본의 폭력 앞에 찢어진 우산조차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투쟁의 구심점이 되어달라”며 대의원대회 성사를 호소했지만, 결국 지도부 선출에 실패했다. 민주노총의 고질적 정파 갈등이 선거도 보이콧시키는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후보 입후보를 거쳐 재선거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르면 6월 말쯤 새 지도부가 선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대의원이 재선거 실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고 이갑용 후보 측도 반발하고 있어 내분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정파 갈등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위원장조차 뽑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민주노총의 내부적 갈등과 위기가 노동계의 사회적 지위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파 때문에 내부 결속력이 떨어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치유할 해법과 대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해 내부적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며 “해고자들과 비정규직 등 힘없는 노동자들이 기댈 노조 조직도 진보정당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년 전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내세우며 대정부 투쟁 결의 집회를 열었던 한국노총은 이날 경총과 마라톤대회를 공동 주최하면서 ‘일자리·산재·안전문화’를 강조했다. 5월 한 달간 경총·고용노동부와 함께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도 가동키로 한 상태다. 그러나 복수노조·타임오프 등 노동계가 제기해온 노조법 재개정 문제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현안 해결 없이 정치적 타협에만 골몰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년 연장과 대체휴일제 등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이슈들이 정치권에서 논의되는데도 양대 노총은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내부 갈등과 현안에 밀려서 중요한 노동시장 이슈들을 놓치고 있다”며 “대체휴일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정년 연장도 무조건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봐서 무책임한 얘기”라고 말했다. 배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개편,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모두 노사 간 타협사항이지만 노동계가 노동시장 문제를 제대로 고민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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