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구매력 유지돼야 성장 선순환 가능해져”

2015.03.12 22:07 입력 2015.03.12 23:01 수정

(2) 세계적 화두가 된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

▲ 국제노동기구(ILO) 소득주도성장론 주도 이상헌 박사
“한국 최저임금 수준 세계적으로 낮은 편… 중위임금의 45~60% 돼야
노동소득 증가해도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소득주도 성장론 입안을 주도한 이상헌 박사(48·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는 12일 “최저임금의 목표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을 인상해야 소비 수요가 늘어 내수가 커지고 투자도 뒤따르는 선순환 성장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ILO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박사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임금을 비용으로만 보는 기업 중심의 시각이 최근 전 세계적 내수 부진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45~60%가량이면 고용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는 일면이 있지만, 퇴출되는 한계기업의 빈자리에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들어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한번에 1만원까지 가자고 얘기하는 것도 노동시장에 충격이 클 수 있어 어떻게 도달할지 목표를 잡고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장정훈 독립PD 제공

사진 장정훈 독립PD 제공

-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국내에서 최저임금 논의가 불붙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지금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한국에선 되레 늦게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임금이 오르는 속도가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위기가 닥치자 임금 저하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이렇게 되자 가계 가처분소득에 문제가 생기면서 내수 부진이 찾아왔다. 이 때문에 주요 20개국(G20) 회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도 임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 여야와 정부의 초점은 현재 인상 폭에 맞춰지고 있다.

“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데엔 대부분 동의하는데 수단이 문제가 된다. 임금이 오르면 노동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고 투자 확실성도 생겨 전체적인 선순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조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임·단협에서 임금을 많이 올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결국 기대게 되는 것이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만 오른다 해서 내수가 회복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다른 정책 분야에서 손을 떼면 효과가 크지 않다.”

- 이 박사는 대표적인 소득주도 성장론자다. 최저임금 인상은 어느 정도 효과를 주게 되나.

“소득주도 성장론은 간단히 말해 소득 분배 개선이 사회적 통합, 정치적 안정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 제고와 경제안정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임금을 노동비용으로 보고 기업 이윤율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을 비용 문제로만 보는 게 아니라 소비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내수가 줄다 보니 수출을 늘리게 됐다. 임금과 노동생산성의 격차가 1 대 1로 맞춰져 성장하다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그 패턴이 깨진 것이다. 일본·독일도 그렇게 줄어든 내수를 수출로 메꾸고 있다. 미국은 수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라 가계 빚을 인위적으로 일으켰고 이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번졌다. 임금의 중요성과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운영한 경제가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경제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려면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하고 그중 하나가 최저임금이다.”

-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노동자에겐 어떤 영향을 주나.

“한국에서도 노동자가 최소한의 소득은 어떤 식으로든 누릴 수 있게 하는 소득흐름(income flow)이 무너진 상태다. 그렇게 되면 중간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협상력도 떨어진다. 더 열악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협상에서 우월해진다는 것이다. 소득흐름을 복원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올려 밑바닥을 떠받쳐주고, 임금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들에겐 임금상한제를 적용해야 한다. 임금상한제 같은 직접적 규제가 어려우면 세제상 조치를 통한 소득 재분배로 임금 밑바닥과 꼭대기의 간극을 좁힐 필요가 있다.”

- 현재 한국 최저임금 결정 구조는 어떻게 평가하나.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은 괜찮다. 다만 원칙이 없는 게 문제다.

경총이 2%를 주장하고 민주노총이 20%를 주장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와 20%라는 인상률을 두고 논의를 하면 간극을 좁혀봐야 서로의 차이가 5%포인트 이내로 되기 어렵다. 각자 주장하다 공익위원들이 중간선에서 정리하는 방식이 되면 원칙이 없어지는 것이다.”

-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어떤 원칙과 방향을 갖고 풀어가야 하나.

“첫째 원칙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게 최저임금의 목표가 돼야 한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은 올려줘야 구매력이 유지된다. 둘째는 지난해보다 올해 경제가 좋아졌으면 이 부분도 반영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 상황이 3% 이상 좋아졌는데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만큼만 먹고 떨어지라는 건 안된다. 세 번째는 형평성이다. 예를 들어 평균임금의 50%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에 합의를 해야 한다. 다만 공격적으로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는 건 좋은데 내년에 바로 1만원으로 할 순 없다. 갑자기 올리면 노동시장이 혼돈 상태에 빠진다. 중소기업 중에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아진다. 최저임금 중 가장 나쁜 것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높다, 낮다’ 의견이 갈린다.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자영업자도 통계에 들어가는 국민소득 기준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안된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우니 국민소득이 낮게 나오고 최저임금이 높아 보이게 된다. (이런 비교는) 정부가 우겨보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려면 중위임금(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맨 중앙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낮은 편이다.”

-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이 2013년에 내놓은 보고서에도 실증 연구를 해보니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이 부작용 없이 운영되려면 중위임금의 45~60% 정도면 된다. 이 범위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최저임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들은 이 정도 수준인데 일자리가 감소한 나라가 별로 없다. 그 밑으로 가면 최저임금 의미가 없고, 더 높아도 의미가 없다. 너무 높을 경우 실제로 그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있다.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지만 일면적 접근이다. 항상 한계기업은 있고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로 퇴출될 수 있다. 그 자리에 최저임금도 줄 수 있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들어온다. 최저임금이 퇴출과 진입의 다이내믹(역동성)을 빠르게 하는 것이다.”

▲ 이상헌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부터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 박사는 2010년 통과된 ‘ILO 가사노동협약’의 초안을 성안했다.

국제노동계에서 최후의 협약으로 불리는 가사노동협약은 가사 노동자의 권리를 일반 노동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는 ILO에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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