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민사 법리로만 노동문제 접근… 노동법원·전문 법관 시급

2015.07.19 21:33 입력 2015.07.19 21:59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5) 쟁점과 대안

▲ 노동현장 등 이해 부족
일반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
“공부량 많고 전망 불투명”
로스쿨서도 노동법 외면

지난 6일 시작된 경향신문 노동기획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 시리즈에 대해 전문가들은 “화석화돼가고 있는 노동법의 기본정신을 되새기게 한 기사였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보호는 뒷전이고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진 노동행정, 민사법적 사고로 노동법을 바라보는 법원·검찰·노동위원회에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정당’ 판결 직후 페이스북에 ‘오늘로서 사법적 정의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고 썼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정도를 넘어 수직관계가 됐음을 확인케 한 기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고 바로잡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법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관들이 기업이나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부터 걱정하고, 노동자가 처한 입장보다는 민사상 계약법리로만 노동 문제에 접근하다 보니 검찰·노동부의 억압적인 노동감독이나 행정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0년간 긴 싸움 끝에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아 KTX 복귀가 좌절된 여승무원이 지난 5월 아이를 안은 채 서울역 앞 집회에 참석해서 발언을 듣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2심을 뒤집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하자 좌절한 노동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오른쪽). KTX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회 일반 정서와도 부딪치는 것으로 지적된 대법원 판결은 노동법원 설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 김창길·이준헌 기자

10년간 긴 싸움 끝에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아 KTX 복귀가 좌절된 여승무원이 지난 5월 아이를 안은 채 서울역 앞 집회에 참석해서 발언을 듣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2심을 뒤집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하자 좌절한 노동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오른쪽). KTX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회 일반 정서와도 부딪치는 것으로 지적된 대법원 판결은 노동법원 설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 김창길·이준헌 기자

서울중앙지법에서 노동 사건 전담 경험이 있는 한 중견 판사는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 서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노동법인데 판사들은 노동법을 대등한 당사자의 계약법리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노동법은 노동자를 떼쓰는 어린아이로 만드는 법’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법관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현장이나 노조활동에 대한 법관들의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 있다. 노동운동을 경험한 한 중견 판사는 “노동자들이 사업장 내에서 폭력을 일으킨 경우 사용자 측의 부당한 선행요인이 있기 마련이고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과격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데 판사들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폭력 양태만을 보고 판단한다”고 말한다. 노동 사건을 아무런 사회 경험 없이 법복을 입은 전문법관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법원 내부적으로는 노동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서울·부산 등지 법원에서는 1·2심 민사·행정 사건에 노동전담재판부(13개 합의부, 6개 단독)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전문법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중견 판사는 “노동전문이라고 할 만한 판사가 2~3개 기수(200~300명) 중 한 명 정도”라며 “노동전담부 부장판사들도 처음 노동을 맡는 분이 많고 3년 정도 전담하면 다시 노동을 맡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대법관들도 노동법을 전문분야로 인식하지 않고, 현재 14명의 대법관 중 노동법 전문가라 부를 만한 사람은 전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법원, 민사 법리로만 노동문제 접근… 노동법원·전문 법관 시급

갈수록 노동분쟁이 늘어나고 법리도 복잡해지고 있지만 대법원과 정부 모두 노동법 전문인력 양성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시험을 통한 획일적인 법조인력 양성 시스템의 대안으로 2009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됐지만 노동법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법이 다른 선택과목보다 공부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변호사 시장은 크지 않다 보니 노동법은 기피 대상이다. 올해 초 로스쿨을 졸업한 민주노총 법률원 김세희 변호사는 “학교에서 노동법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선행학습이 필요한데 당장 변호사시험이 발등의 불이 되면 상대적으로 점수를 따기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변호사시험 위주로 운영되는 로스쿨도 30~40명의 전임교원 중 노동법 전공자는 1~2명에 불과하다. 로스쿨 출신 중 10~15%를 제외하면 노동법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민사법 법리만 형성된 법조인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이호준 노무사는 “부당노동행위 사건과 관련해 사측 대리인으로 나온 변호사가 ‘아르바이트생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도재형 교수는 “민사법의 독침을 맞은 현재 법원 시스템으로는 노동계가 지니는 문제의식 혹은 노동 사건의 신속하고도 전문적인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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