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도드라지게 한 가사근로자법의 ‘구멍’

2024.04.19 14:51 입력 2024.04.19 15:10 수정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이 의회를 통과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지난 2월12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이 법안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화물노동자, 플랫폼 종사자의 최저보수 보장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호주 정부가 노동법 구멍을 막는 노동개혁을 진행한 것과 비슷한 시기 한국에선 되레 구멍을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외국인 유학생·결혼이민자 가족을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가사노동자로 쓰자고 제안했다.

개별 가구(가사사용인)는 가사노동자 고용 시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비공식 부문에 있는 가사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2022년 6월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다. 문제는 가사근로자법은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인증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노동자에 한해 최저임금, 사회보험 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최근 인증기관이 100개를 넘어서긴 했지만 최소 11만명가량으로 추정되는 가사노동자 중 가사근로자법 적용을 받는 이들은 아직 극소수다.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가사근로자법의 구멍을 파고드는 윤 대통령 발언이 나온 만큼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호를 위한 논의를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사근로자법 제정 이전인 2016년 12월 고용노동부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에 가입하고, ‘가사사용인에 대해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근기법 11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노동부는 사적 공간인 가사노동 장소에 대한 근로감독의 어려움, 근로계약 등 행정절차 부담, 사회보험료·퇴직금 등 노무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스페인, 프랑스 등은 개인 이용자가 가사노동자 고용 사실을 정부에 등록하도록 해 고용관계를 공식화하고 있고, 개별 이용자가 가사서비스 이용권 구매 시 이용요금에 시간당 사회보험료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사회보험료 부과·징수의 어려움을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을 포함한 돌봄노동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와 돌봄노동을 사회적 책임으로 볼지다. 최저임금 안팎인 돌봄노동에 제 몫을 돌려주고, 돌봄노동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저출생·고령화에 조금이라도 대응할 수 있다. ‘싼 값으로 이주민을 쓸 수 있도록 할 테니 개인이 돌봄을 해결하라’는 식으로 구멍을 방치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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