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벌금 카드납부 봉쇄

2006.05.01 22:05

회사원 김모씨(34)는 최근 음주운전에 따른 벌금 2백만원에 대한 확정판결 통지서를 받았다. “30일 이내에 인근 검찰청사에 벌금을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회사와 가까운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을 찾아 “벌금을 내야 하는데 카드결제나 분할납부를 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2백만원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내는 게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된다. 일시불로 현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벌금집행과 직원은 “장애인이나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면 분할납부가 사실상 어렵다”면서 “카드결제는 현재 논의 중”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근처 은행에서 비싼 수수료를 물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두툼한 현금뭉치를 들고 검찰청사로 향했다. 기분이 씁쓸했다.

왜 벌금은 ‘현금 일시불 납부’여야만 하는가, 죄 지은 자는 벌금낼 때도 고생해야 한다는 뜻인가, 하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벌금을 내기 위해 현금서비스를 받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모씨(44)는 벌금 3백만원을 내기 위해 현금서비스를 이용했다가 1년여의 ‘돌려막기’ 끝에 지금은 ‘신용불량자’로 전락, 채권추심단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벌금 분할납부는 법적으로 납부연기와 함께 허용돼 있다. 검찰징수 사무규칙 12조는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1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생활무능력자 ▲불의의 재난피해자 ▲본인 외에는 가족을 부양할 자가 없는 자 ▲타인의 대리납부자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자 등 7가지 예외적 경우에 한해 벌금분할과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대상도 매우 제한적이지만, 분할납부나 연기의 절차 역시 만만찮다. 납부연기 신청서를 검찰에 제출한 뒤 소명서를 첨부해 담당 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장애인과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면 분할 납부가 어렵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벌금의 신용카드 할부결제는 ‘수수료 문제’로 답보 상태다. 카드사나 은행에 내는 수수료를 국가기관인 검찰이 ‘국민의 세금’으로 메울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검찰 집행과 관계자조차 “일반 기업이나 업소는 신용카드 사용을 독려하면서 국가기관이 ‘수수료 문제’로 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오승주기자 fai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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