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인질 석방]감자 2개로 4명 식사…설사·고열

2007.08.31 22:37

아프가니스탄 한국인봉사단 납치는 버스운전사가 가즈니주(州)에서 태워준 현지인들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 고 배형규 목사·심성민씨는 무작위로 뽑혀 본보기로 살해된 것 같다는 피랍자들의 견해도 제기됐다. 탈레반에 납치됐다 31일 풀려난 한국인 피랍자 대표 유경식(55)·서명화(29)씨는 31일 카불 세레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2일 간의 납치생활 전모를 증언했다.

◇바뀐 운전기사와 피랍=전조가 있었다. 지난 7월19일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출발하기 전 당초 봉사단을 칸다하르까지 태워주기로 했던 전세버스 운전기사가 “내가 수술을 받게 됐으니, 믿을 만한 운전기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새 운전기사는 가즈니주(州)에 도착하자 갑자기 “아는 사람을 태워주겠다”며 현지인 2명을 버스에 태웠다. “왜 모르는 사람을 태우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운전기사는 “가다가 내려주면 된다”고 얼버무렸다.

이 현지인들은 버스에 탄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총을 꺼내들고 협박하며 정차를 요구했다. 버스가 멈추자 다른 무장괴한들이 나타나 버스타이어에 총을 쏜 뒤 봉사단을 하차시켰다.

이 과정에서 현지인 운전사는 구타당했고, 배형규 목사는 실신했다. 이후 선교단은 수십대의 오토바이에 태워져 비포장도로를 통해 작은 마을로 옮겨졌다. 그 때까지 납치범들은 “우리는 아프간 정부의 사복경찰인데 당신들을 알 카에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말했다.

선교단은 AK 소총으로 무장한 납치범 10여명의 감시 아래 몸 수색을 당했다. 이때 선교단의 휴대전화와 카메라도 모두 압수됐다. 당시 납치범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인사는 서툰 영어로 유씨 등 인질을 심문했다. 이어 납치범들은 기관총으로 위협하며 선교단을 벽에 일렬로 세운 뒤 비디오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자 탈레반은 “우리가 알카에다”라며 총쏘는 시늉을 하며 죽이겠다고 했다.

◇짐승 우리에 감금=처음 감금된 곳은 짐승 우리 같은 곳이었다. 창문이 없고 환기통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이후 며칠간 낮에는 주로 갇혀 지내고 밤에는 정부군을 피해 이동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6일쯤 지나자 일행을 3~4명씩 분산시켰다. 그때부터 석방될 때까지 봉사단은 서로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유씨의 경우 민가를 주로 돌아다니면서 12번을 옮겼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헤드라이트를 끈 오토바이에 태워져 이동했다.

선교단은 초기에 구출을 염원하며 금식 기도를 했다. 탈레반들은 봉사단이 단식하는 것으로 오해한 듯했다. 음식은 매우 열악했다.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 4명이 먹기도 했다. 물이 좋지 않아 설사도 많이 했고,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기운이 없어 이동하지 않은 시간은 대부분 잠을 자며 지냈다.

탈레반은 간혹 언론과의 통화를 강요하기도 했다. 유씨는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구출해준다’면서 인터뷰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감시 소홀을 틈타 구출요청을 시도하기도 했다. 유씨는 “감시자가 없고 할머니 한 사람만 있어 감금 장소의 출입문을 살짝 열고 구출 요청을 하기 위해 마을 아래로 내려갔으나 갑자기 감시하던 농부가 낫을 들고 쫓아오면서 소리를 질러 급히 되돌아갔다”고 말했다.

◇“배목사 등은 본보기로 살해한 듯”=배목사는 무작위로 데리고 나간 것이다. 본보기로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12명(6+6)의 1조 6명 가운데 배목사가, 2조 6명(4+2) 가운데 4명 그룹에서 심성민씨가 나갔다. 탈레반이 고세훈, 심성민씨 중 고씨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심씨를 향해) ‘너’ 하고 무조건 끌고 나가라고 그러더라. 두건을 씌워서. 그 뒤로는 모른다.

◇“이지영씨의 석방양보는 사실”=나중에 이지영씨한테 들어보니 김경자씨가 굉장히 아팠다. 설사하고 며칠동안.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했는데, 거기엔 김경자씨와 김지나씨, 이지영씨 등 여자만 3명이 있었다. (2명만 석방되면)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으냐며 기가 막혀 울고 이랬다. (이지영씨가) 자기는 회복이 됐다고 하면서 ‘나 대신 너 가라’고 얘기해서 김경자씨가 갔다.

〈카불|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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