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 상가 경비에 쫓겨 서울역 안으로

2011.08.01 23:10 입력 2011.08.01 23:47 수정

코레일, 강제퇴거 22일로 연기

홈리스단체 “철회” 천막 농성

1일 새벽 2시 서울역. 이날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야간에 역사 내 대합실에서 잠자는 노숙인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보내는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알려진 날이었다. 그러나 이 시각 서울역 역사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닫힌 문 앞에는 노숙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대합실 출입구는 물론 주변의 한화 콩코스 백화점 입점 업체와 롯데마트 외벽까지 곤히 잠든 사람, 술 마시며 언쟁하는 이들, 혼자 소주병을 들고 횡설수설하는 사람 등 노숙인 300여명이 인간띠를 잇고 있었다.

30여분이 흐른 뒤 상황은 달라졌다. 오전 2시30분은 역 내부 청소를 위해 잠겨 있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역사 안쪽에서 한 공익근무요원이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며 문을 잠근 자물쇠를 푸는 순간 노숙인들은 삼삼오오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있고, 들어가자마자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는 60대 여성도 있었다.

서울역 주변에 흩어져 있던 노숙인들이 1일 새벽 2시30분이 지나 역이 문을 열자 짐을 챙겨 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역 주변에 흩어져 있던 노숙인들이 1일 새벽 2시30분이 지나 역이 문을 열자 짐을 챙겨 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약 10분 뒤에는 노숙인 200여명이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 종이상자를 깔고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한꺼번에 몰려온 이들은 대합실로 향하는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다. 여름철이면 냉방이 안돼 후텁지근한 새벽시간대의 역 대합실보다 바깥이 훨씬 선선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숙인은 오히려 역사 안을 꺼린다.

이들이 역 내부로 향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시간대면 서울역 민자역사를 관리하는 경비원들이 그들을 깨워 쫓아보내기 때문이다.

민자역사에 입점한 상점 앞은 아침이 되기 전에 청소가 돼 있어야 하는데 노숙인들이 점거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비원들이 그들을 깨워 역 내부로 들여보낸다.

대부분 노숙인들은 군말 없이 경비원들의 지시를 따른다. 하지만 취했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노숙인들은 돌발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일을 한 지 10개월째라는 경비원 ㄱ씨는 “노숙인이 휘두르는 칼에 찔려 몇 달간 입원한 동료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경비원들이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근무하며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40만여원. 입점 업체에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숙인들을 대합실로 밀어넣는 경비원들이나 어딜 가도 내쫓기기만 하는 노숙인들이나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역의 하루가 시작되는 오전 2시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역사 내외를 다녀봤지만 코레일 직원이나 철도경찰(국토해양부 소속)은 눈에 띄지 않았다.

코레일 홍보담당자는 “역사 내 노숙인 야간 취침 금지는 오는 22일부터 실시할 계획”이라며 “(코레일로서는) 20년 이상 된 고객들의 민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생각대로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숙인들이 사라지게 될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여기저기서 내쫓기면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이 도로까지 점거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홈리스행동 등 20개 단체는 이날 오후 결의대회를 열고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결의대회가 끝난 뒤 서울역 광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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