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② 장그래는 구고신을 찾지 않는다] 장그래가 구고신을 찾지 않는 이유 “바뀌는 건 없고 잃는 것만 많다”

2016.03.01 22:27 입력 2016.03.01 23:20 수정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웹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비정규직 청년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그에게 상사들은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버티는 것 외에 답이 없다. 설령 일이 꼬여도 장그래는 남 탓을 하지 않는다. “탓할 게 있나요? 제가 부족한 것투성이인데”라며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역시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송곳>의 구고신은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사는 노무사다. 고문을 당해 후유증에 시달리지만 노동운동을 계속한다. 하지만 공포 속에서도 그는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송곳 같은 인간”을 기다린다. 그는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조력자다.

드라마 <송곳>에서는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송곳 같은 인간”인 이수인이 노무사 구고신을 찾는다. 하지만 비정규직 청년으로 사는 ‘장그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고신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드라마 <송곳>에서는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송곳 같은 인간”인 이수인이 노무사 구고신을 찾는다. 하지만 비정규직 청년으로 사는 ‘장그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고신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장그래가 구고신을 만난다면 정규직이라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단에서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씨(25)에게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구고신’이었다. 이씨가 경험한 임금체불이 부당하다고 말해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이씨는 선생님이 소개해준 기관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그래에겐 구고신이 없다. 노동조건의 개선은커녕 사회참여의 첫발을 디디도록 끌어줄 이도 없다. 설령 구고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해도 장그래는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구고신을 모른 체한다. 간혹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이내 장그래는 구고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만다. 이들의 분노는 거대한 파도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덮치고 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정치의 장’으로까지 뻗지 못하고 있다. 장그래가 구고신을 찾지 않는, 청년이 참여의 정치를 스스로 배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그래는 바쁘다

김주영씨(28·가명)는 고시를 준비하면서 “분노를 단념”했다. 2007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김씨는 사회참여 의지가 컸다. 2008년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2014년 세월호 추모 집회에도 참여했다.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사회 변화의 흐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집회 현장에 나서기가 꺼려진다. 김씨는 “집회에 나가려면 내가 감당해야 할 생존비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대학에 진학한 2011년부터 꾸준히 집회에 참석했던 대학원생 이윤영씨(25·가명)는 언제부턴가 집회 현장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학과 공부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떤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퍼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참여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1주일 단위로 알바 근무를 짜야 하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장그래는 구고신을 눈여겨볼 여력이 없다. 취업이라는 현실의 좁은 문 앞에 선 청년들은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다. 한 청년단체 활동가는 “청년들은 유년기에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체제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몸에 새겼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사유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구고신은 있으나마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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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는 구고신을 모른 체한다

“해서 얻을 건 크지 않아 보이는데 잃을 건 너무 많다.” 스스로를 “사실상 마지막 운동권”이라고 생각하는 오성욱씨(29·가명)가 다니는 회사엔 노조가 없다. 해가 바뀔 때마다 눈에 띄는 임금 상승을 기대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불만은 쌓여갔지만 오씨는 행동에 나설 생각이 없다. “회사 내부에서 반기를 들어봐야 정작 바꿀 수 있는 것은 크지 않고 사내 평판만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집회 참가자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은 목소리를 높여보려는 장그래를 불이익에 처하게 한다. 지방의 회사원 정서현씨(25·가명)는 올해 초 경찰의 소환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당시 찍힌 사진에 정씨의 얼굴이 포착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정씨는 그날 서울에 간 일이 없었다. 경찰이 정씨와 닮은 인물을 그로 착각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정씨는 “국가 기관에서 내 얼굴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그날 이후로 트위터에 글 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사회참여로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없다는 점도 구고신을 만나는 것에 주저하는 이유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석영씨(26·가명)는 “뭘 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네가 그렇게 해봤자 아무것도 안 바뀐다’고 말한다”고 했다. 구고신을 외면한 장그래는 제도 정치 역시 내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내 문제에 답을 주지도 못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내 속에만 갇히고, 목소리가 위축된다.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노조를 만든 이수인(가운데)과 푸르미마트 노조원들이 사측의 부당 징계에 항의하는 장면.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노조를 만든 이수인(가운데)과 푸르미마트 노조원들이 사측의 부당 징계에 항의하는 장면.

■장그래는 구고신에게 등을 돌린다

“아직도 깃발의 시대인 줄 안다.” 대학원생 이상윤씨(26)는 고교 때부터 틈틈이 집회에 참여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깃발’은 여전히 나부꼈고, 이마의 빨강 띠와 민중가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씨는 “깃발은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모이게 하지만, 촛불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들 수 있는 것”이라며 “깃발 아래 뭉치자고 해봤자 권위주의식 학생운동 문화에 대한 거부감만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2008년 고교 2학년 때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여했던 ‘촛불소녀’ 권성혜씨(25)는 대학 입학 초기만 해도 학생회 선배들과 어울렸다. 집회 땐 1학년 동기들과 율동을 했고, 농활에 참가해 민중가요를 불렀다. 하지만 농활 현장에서 권씨가 선배보다 먼저 음료수를 마신 게 화근이 됐다. 선배는 “왜 선배부터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권씨는 그날부터 학생회 선배들과 급격히 멀어졌다.

사회참여의 발을 디뎠던 장그래들조차 결국 구고신과 함께하지 못하고 키보드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상황에서 ‘광장에 나오라’ ‘투표하라’는 요구는 자신들이 갇혀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꼰대’의 지시로 읽힐 뿐이다.

1980년대생들이 유년기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공포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고 분석한 <트라우마 한국사회> 저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1980년대 대학생들은 ‘과’라는 단위가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였지만, 현재는 개별화돼 있다”며 “이제는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정치적인 변화나 희망을 주는 흐름이 생기면 분노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박재현 송윤경 이혜리 이효상 정대연 김서영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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