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② 장그래는 구고신을 찾지 않는다] “386세대,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됐다”

2016.03.01 22:28 입력 2016.03.01 22:32 수정

이율배반적 기성세대, 청년들 눈엔 ‘꼰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 적응을 잘 못해서 과 사람들하고 안 친해요. 과에서 ‘왕따’ 아웃사이더입니다. 제 잘못이지만 공부도 열심히 안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하고도 안 친하고 할 줄 아는 게 제대로 없는 간판만 대학생인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1월 만난 김건호씨(가명)가 보여준 아들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고민을 상담했던 내용이다. 글 아래엔 “언제부터 ○○갤이 한심한 대학생 상담소로 전락했지?”, “네가 열정 없는 거 뻔히 다 보이는데 우리 보고 어쩌라고”, “대인관계고 나발이고 학점관리 안 할 거야?”라는 댓글이 달렸다. 2014년 24세였던 김씨 아들은 인터넷에서 다른 청년을 만나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부들부들 청년][3부② 장그래는 구고신을 찾지 않는다] “386세대,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됐다”

“난 도대체 뭘 했을까.” 김씨는 자신과 자신 세대가 살아온 궤적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한 ‘386세대’로 나름대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끌어냈고, 사회에 비판적이고 탈권위적이며 개혁지향적이라고 하는 386세대가 만든 세상이 여전히 누군가에겐 끔찍한 것이었다. ‘천재는 99%가 노력’이라는 말을 믿으라고 하면서 그걸 믿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386세대가 반성해야 한다”는 김씨의 말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철학자의 말이 있잖아요.” 김씨는 386세대는 반대로 갔다고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권력과 싸웠던 사람들이 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길거리 투쟁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름 좀 얻으면 정치권에 가는 거예요.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가야 된다지만, 실제로 호랑이 굴이라도 들어갔는지 의문이며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얘기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386은 민주주의라고 포장돼 있는 승자 독식주의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액세서리였던 겁니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만든 것은 결국 386과 같은 기성세대라고 김씨는 말했다. 물질만 좇다 보니 나온 경쟁의식, 나만 잘돼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해고시스템은 갈수록 유연해졌다. 거대 공룡 재벌들을 탄생시키면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역으로 내줘야 했던 것은 혁명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이 사회 불평등 구조였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인 어른들의 모습은 계속됐다. 사교육 과열 풍토를 걱정하면서 자기 자식은 누구보다 먼저 사교육을 받게 하고, 정부의 토건사업을 비판하면서도 부동산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김씨는 “완전히 모순이다. 그 모순에 386이 가담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걸 통해서 자기 자식이 출세하고 성공을 하느냐? 아니다. 근데 거기 동참하지 않으면 처질까봐 그래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다. 절차다.” 386세대의 과오는 거기서 나온다고 김씨는 지적했다. 민주주의 달성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도 권력을 남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왔으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라고 하면서 어디 의원 자리 없느냐, 감사 자리 없느냐,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악을 쓰면서 갔죠. 기존의 기득권보다 더한 짓들을 많이 했어요. 각성해야 돼요. 그게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할 출발점이고요. 결국엔 자기 출세죠. 끝까지 이름 없이 스러져 가는 사람으로 남아있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누구든 지도자가 되려고만 했지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정말 진정성 있는 사람들은 투쟁현장에서 사라졌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러면서 ‘안되면 되게 하라’, ‘나와 맞지 않으면 나가라’는 식의 권위주의와 군사주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은 용인되고 과정은 생략해도 된다. 현재 청년들의 시선에선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해봤자 ‘꼰대’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기성세대라고 하면 싸우려면 제대로 싸우든가, 끝까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덤벼보든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어요. 기성세대 스스로 혁신적으로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믿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보다 조금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족하면서 넘겨버리는 거죠.” 김씨는 세월호 참사나 국정교과서 등 큰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도 시민사회가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와 연결돼 있다고 봤다. 국회에서 해법도 되지 못하면서 목소리 큰 비난으로만 삼켜져 버린다는 것이다.

“투표 잘하면 세상이 바뀐다?” 김씨는 “말도 안된다”고 했다. 선거는 로또가 아니기 때문이다. 되레 정치권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대안은 없이 권력 선택을 강요만 하고 있다. 김씨의 대안은 한 가지다. 386세대가 희생을 곧바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 희생은 ‘진솔한 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청년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386세대가 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386세대가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청년들에게 미안해할 것, 미안한 것을 소중하게 표현해주고 정말 청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자고 그는 말한다.

“가장 절절하게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었고 고문으로 쓰러져 죽은 동료, 최루탄에 맞아 죽은 동료를 다 봤는데….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된 게 뭐냐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죠. 이렇게 되려고 청춘을 바쳤나요? ‘아빠, 지금이라도 잠깐만 서봐’라고 아들이 말하는 것 같아요. 내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들을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아들을 잃고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많아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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