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① 미개의 출구 ‘ㅇㅈ’] 군대문화·갑질·여성혐오…정치·조직·일상에 만연한 ‘미개’

2016.03.21 18:20 입력 2016.03.22 00:17 수정

‘미개’ 주제 심층 인터뷰 후 의미망 분석

경향신문이 청년들이 많이 쓰고 있는 ‘미개’라는 말을 주제로 청년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데이터 기반 컨설팅 업체 ‘아르스 프락시아’에 ‘의미망 분석’을 의뢰했다. 의미망 분석은 특정 단어의 쓰임새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문장을 이룰 가능성이 큰 단어를 찾아내 그룹을 짓는 분석방식이다. 단어를 잇는 화살표가 굵을수록 한 문장에서 함께 쓰이는 빈도가 높다. 화살표 방향은 문장 속 단어의 앞뒤 순서를 가리킨다. 청년들은 ‘미개’함을 느끼는 대상으로 정치, 군대, 여성혐오를 많이 꼽았다.

[부들부들 청년][4부① 미개의 출구 ‘ㅇㅈ’] 군대문화·갑질·여성혐오…정치·조직·일상에 만연한 ‘미개’

“1980~1990년대 호황기를 지나면서 근대화를 했어야 하는데 이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전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취업 상황이 안 좋으니까 기강 잡고, 군기 잡는 것도 심해졌다.”

직장인 김유리씨(32·가명)는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을 만난 대다수의 청년들처럼 한국사회에 “미개”라는 말을 붙였다. 한국사회는 학교를 가나, 취직을 하나 군대 문화가 지배한다. 상사는 신이고, 손님은 왕이다. 위아래를 따지기 애매할 때는 나이를 ‘깐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갑질은 일상이 됐다. 지하철엔 질서가 없고, 정부는 시스템이 없다. 이 톱니바퀴에 낀 채로 여성은 남성의 혐오를 응시한다. 물리적 폭력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일상이다.

■ “대한민국은 군대”

지난 2년간 군에서 복무한 대학생 박준기씨(25·가명)는 군대에서 학교의 모습을 봤다. 군대는 학교의 확장판이었다. 학교에는 조회와 종례가, 군대에는 아침저녁으로 점호가 있었다. 교실과 생활관에는 태극기가 있었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비슷했다. 수학여행 갈 때면 줄을 맞추듯, 군대에서는 오와 열을 맞췄다. 문제가 생기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더 높은 사람에게 모욕을 받았다. 그는 “모두에게 눈총 받으니까 튀는 거 자체가 약간 부정적인 거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답변자의 상당수는 한국사회의 미개함을 군대 문화와 연결지어 풀이했다. 군대는 엄격한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지시와 벌은 자주 내려지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 혼나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다. 직장인 최민철씨(29·가명)는 “남자들은 특히 부당하다고 말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며 “군대에 가면 부당한 것들이 많은데도 계급에 따라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군대를 경험해보지 않은 집단에서도 군대는 확대 재생산된다. 의사 김우성씨(31·가명)는 대학교 1학년 때 파마를 했다가 운동장을 한 시간 동안 뛰어야 했다. 김씨처럼 용모가 단정치 않은 후배, 혹은 인사성이 좋지 않은 후배들은 선배에게 수시로 얼차려를 받았다. 의대 6년을 마치고 인턴을 할 때는 레지던트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들었다. 김씨는 “선후배 간에 수직적 관계가 되면 내 손에서 해결 안되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두려워서 선배한테 연락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우리가 당했으니 하지 말자는 말을 십몇 년째 하고 있는데 (악습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일상 속 미개’

절절히 느끼는 여성여성들도 일상에서 군대를 간접 체험한다. 군대 계급장은 나이가 대체한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계연씨(21·가명)는 상사들과 식당에 가면 기계적으로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른다. 반말을 듣는 일도 다반사다. 이씨는 “심하게 말하면 중년 남성 꼰대 같은 분들이 인간관계를 장유유서라고 한다”며 “어딜 가나 내가 막내인 경우가 많은데 그분들이 특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같은 위계의 덫에 놓이더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취약하다. 취업문 앞에 남녀가 나란히 서도, 여성은 능력을 쌓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외모는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된다. 취업문이 좁아질수록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도 증가한다. 남성은 “임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이라며 결혼이 불평등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혼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양보도 결코 적지 않다. 계약직 직장인 강소연씨(31·가명)는 지난해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했다. 면접 중 강씨는 “결혼 생각 있느냐? 임신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강씨는 “북유럽은 정해진 시간만 일해서 남녀가 함께 육아를 하고, 일본은 여성이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서는 맞벌이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니까, 이게 미개하다”고 말했다.

조직을 통해 ‘미개’를 확인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상적으로 ‘미개’를 느낀다. 정은혜씨(23·가명)는 지방의 과학고를 다녔다. 2학년이 되던 해, 남자 동급생 2명이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 사진을 찍다가 적발됐다. 최소 6명의 여학생이 몰카 피해자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학교는 징계위도 열지 않고 문제를 수습했다. 정씨는 “과학고 위신에 손상이 온다는 이유로 없던 일이 됐고, 남학생 2명은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며 “남자들도 희롱은 당할 수 있겠지만 몰카에 찍힐까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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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이 없다

한국사회의 엄격한 위계질서에서 개인은 불편부당을 요구하길 꺼린다. 개인은 엄정한 시스템이 사안의 잘잘못을 따져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계약직 박성현씨(30·가명)는 직속 팀장의 집사 노릇을 하며 2년간 하대를 당했다. 하루는 팀장이 업무 중 접대를 받은 게 문제가 됐고, 박씨는 팀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팀장의 문제는 커지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됐다. 박씨는 “팀장의 직속 상관이 자신의 임기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이것이 미개한 한국 직장”이라며 “내가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계약직인 나만 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한승우씨(28·가명)는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 시스템의 부재를 봤다. 한씨는 “뉴욕에는 9·11 테러를 기념하는 박물관에 사건의 원인과 참사 당시 숨진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기록으로 남겨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이라며 “세월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은폐되는 것 같다. 문제 해결을 위해 축적되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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