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전남 광양 중마동 주차장 살인사건

2016.06.12 13:39

그림|김상민 화백

그림|김상민 화백

그토록 살갑게 지내던 친구가 아무말없이 떠나버린 2009년 6월14일. 그날로부터 꼭 7년이 됐다. 김모씨(52·여)는 “그런 일만 없었다면 지금쯤 며느리도 보고, 손주도 보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자신보다 두 살 아래이던 ㄱ씨(당시 43세·여)를 1986년 가을 광양시내 한 둘레길에서 만난 뒤 친자매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활달한 성격의 경상도 출신 김씨와 마음씨 곱고 내성적인 충청도 출신 ㄱ씨. 객지에서 가정을 꾸린 그들은 서로 나누며 채워주는 사이였다.

김씨는 친구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그날 밤 늦게 방송을 듣고 알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감당할 수밖에 없는 슬프디 슬픈 현실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피해자 차량(빨갛게 그린 네모안)이 발견된 전남 광양시 중마동 버스터미널 주차장 현장.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피해자 차량(빨갛게 그린 네모안)이 발견된 전남 광양시 중마동 버스터미널 주차장 현장.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일요일이던 그날 오전 8시57분 ㄱ씨는 한 달여 전 경리직으로 취업한 대기업 협력업체의 사장 이모씨(40)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집을 나섰다.

“○○병원 앞으로 가요. △△엄마가 약 하나 줄거요. 바로 먹고 집에서 쉬고 있어요. 답하지 말고 바로 강요(가요)”

수년전 이혼 후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장이 오늘 따라 더욱 고마웠다. 병원 앞까지는 직선거리 200m. ㄱ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 뒤편이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ㄷ자형 대로를 따라 득달처럼 갔다. 하지만 ㄱ씨는 오후 6시53분쯤 인근 중마동 버스터미널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안에 뒤로 젖혀진 운전석에 반듯이 누운채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약속 장소인 병원에서 140m, 집에서 350m 떨어진 곳이었다.

■“내가 목졸라 죽였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엔 자살로 봤다. 아무런 상처도 없고, 두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아 얹고 있던 ㄱ씨한테서 타살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차량은 시동이 걸린채 안에서 문이 잠겨 있었다. 차창을 깨고 보니 에어컨 온도가 32℃에 맞춰져 있었다. 영락없는 ‘약물 자살자’ 모습이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4)전남 광양 중마동 주차장 살인사건

하지만 곧바로 ㄱ씨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면서 타살 혐의가 금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십여개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이 사장을 불렀다. “당신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갔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따지자 이 사장은 “‘병원 앞으로 가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통신사 등의 협조를 얻어 그 전말을 캐자 이씨의 동거녀 강모씨(43)가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4년전 남편과 헤어진 강씨는 그후 이씨를 만나 세살짜리 딸을 낳고 함께 살고 있었다. 이씨는 부인(34)과 네살짜리 딸을 두고 있으면서 강씨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강씨는 이씨 주변에 새로 나타난 여직원 ㄱ씨 때문에 불안했다. 첫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현재 부인과도 별거하면서 자신과 살림을 차린 이씨의 ‘여성편력’이 늘 걱정이었다. 때문에 병원에서 불안증 치료까지 받는 처지였다. ‘사장과 여직원 사이’를 의심하던 강씨는 한 ‘인터넷 전화서비스’에 가입, 이씨와 ㄱ씨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둘 사이가 심상치않은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으로 동반 출장을 다녀오고, 사고 전날엔 이씨의 친족 모임에도 ㄱ씨가 초대되는 상황을 ‘문자중계’를 통해 지켜보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던 차였다.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강씨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거남을 가장해 보낸 문자메시지를 경찰이 복원한 것을 다시 옮겼다.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강씨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거남을 가장해 보낸 문자메시지를 경찰이 복원한 것을 다시 옮겼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4)전남 광양 중마동 주차장 살인사건

이를 벼르고 벼르던 강씨는 사건 당일 아침 ㄱ씨를 불러내기 위해 이씨를 가장해 집 컴퓨터를 통해 3차례 문자를 보냈다. 바로 병원 앞으로 간 강씨는 ㄱ씨를 만나 차에 함께 탄 후 인근 터미널 주차장으로 갔다. ㄱ씨에게 자신이 먹던 신경안정제를 주고 마시게 한 뒤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장과 어떤 관계냐?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ㄱ씨도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고 되받았다. 둘 사이에 드잡이가 벌어진 것은 물론이다. 강씨는 “모든 것을 생생히 알고 있는데, 발뺌을 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 목을 졸라 죽였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처음엔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다 이처럼 모든 것을 털어놨고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3심 법원 모두 “나는 모른다” 범행 부인에 ‘무죄’

강씨는 구속되기 전 검사 앞에서 “고인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묘에 가서 술이나 한잔 따라주면서 그분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고도 했다. 이어 법원에서도 3번째 공판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단독 범행을 주장했던 강씨는 4번째 법정에 서면서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털어놨던 진술을 모두 뒤집기 시작했다. 강씨의 범행 시인으로 싱겁게 살인사건을 풀어내고 한 숨 돌리던 검·경찰이 이번에 구석으로 몰리는 형편이 됐다.

강씨는 먼저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까지는 맞지만 그 밖의 모든 진술은 거짓말이라며 완강히 범행을 부인했다.

강씨는 “그날 아침 딸이 징징대며 울어서 달래느라 피해자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며 “증거가 있냐”고 대들었다. 강씨는 사실상 남편인 이씨까지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황이어서 둘 가운데 범행 의심을 사고 있는 자신이 죄를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씨는 “남편과 내가 모두 감옥에 가면 어린 딸을 마땅히 돌볼 사람이 없어 경제력이 있는 남편만이라도 밖에 두고 싶어서 범행을 시인했던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강씨의 당일 바깥 나들이 장면과 피해자 차량 동선 등의 동영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수사진이 오히려 벼랑으로 몰렸다. 피해자 차량 안팎에서 범인의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 직접 증거물을 찾지못한 허점도 파고 들었다.

피해자의 몸속에서 나온 신경안정제 성분도 강씨가 건넨 것이 아니라 상당시간 오래전에 넘긴 약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비닐 봉지로 목을 졸랐다”고 했지만 피해자 목에 생긴 폭 0.7~0.8㎝ 흔적을 낼 수 없다는 과학수사 결과도 더해졌다. 수사 단계에서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서도 현장검증을 나가지않으려고 버틴 정황도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용의자한테서 흔히 확인되는 항변’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추가됐다.

전남지방경찰청 청사

전남지방경찰청 청사

■“범인은 2인 이상”…그러면 누구냐?

강씨의 주장은 1심에서 대법원까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 현장의 모습을 실제로 모르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2014년 3월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는 등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범행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세번 모두 무죄를 내렸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경찰은 강씨가 직접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강씨 주변인물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강씨가 범행을 누군가에게 부탁했을 수 있다는 의심도 버리지 않고 있다. 공범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결론’도 보태지고 있다. 피해자 목에 난 핏자국이 앞에서 목을 졸랐을 때 나타나는 흔적이 아니라, 피해자 뒤편에서 스타킹 등으로 탱탱하게 끌어당길 때 생기는 U자 형이라는데 주목하고 있다. 피해자 차량 뒤편 좌석에 휴지통과 물병 등이 나동그라져 있는 것도 ‘2인 이상’이라는 가정을 뒷받침한다. 피해자는 평소 ‘정리 맨’이라고 불릴 만큼 물건을 깔끔하게 해두는 성격이다. 뒷좌석에 공범이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범인이 가까운 곳에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경찰은 사실혼 사이인 이씨와 강씨 주변 인물 수십여명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 피해자 친·인척과 친구들도 경찰의 재수사 의지를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송하옥 담당 형사는 “강씨가 범행을 자백하면서 초동수사가 촘촘하지 않았던 점이 아쉽지만,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면서 “반드시 범인을 오랏줄로 묶어 오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친구 김씨도 “경제력이 튼튼한 이씨와 내연녀 강씨 사이에 분명한 단서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미 이들은 사이가 틀어지는 등 벌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건제보는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061-289-2472). 다음 미제사건은 ‘인천 십정동 부부살인 사건’입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3)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범인은 ‘단골? 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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