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출구 사건 1년···“슬픔과 용기가 돼 돌아왔다”

2017.05.13 14:33
백효은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5월 17일은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의 1주기이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심각성을 알렸고, 많은 여성들이 포스트잇 추모를 통해 맞서 싸우기를 촉구했다. 1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하는 여성주의 활동가 백효은씨가 강남역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는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해 5월 17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해 5월 17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강남역 사건은 여성에 대한 공포를 공표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나의 공포에, 여성에게 전해진 공포에 공감하고 대책을 세워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남성중심 사회에서 나의 공포는, 여성에 대한 공포는 그저 남성들의 한때 치기 어린 관심이나 욕정에 불과했다. 결국 사건은 ‘묻지마’ 사건으로 종결되었고 가해자는 여성에게 무시를 받은 착한 사람이었다고 발표되었다.

여전히 ‘그들’로 존재하는 남성들
강남역 사건, 그 이후로 나는 삭제되었다. 아니, 그 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설마하는 안일한 태도로 지내왔을 뿐이다. 안일한 태도인 ‘내가 조심을 한다면’이나 ‘내가 주의를 기울인다면’이라고 시작하던 나의 삶이 ‘내가 조심을 한다고 해서’라는 공포의 태도로 바뀌었다. 공포와 폭력에 눈을 가리고 아웅하던 시절에서 눈을 뜨자, 차마 마주하기 싫었던 공포가 삶을 앗아갔고, 나는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삭제되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 공포는 내 자신이 얼마나 쉽게 없어질 수 있고 사회는 그 사실에 얼마나 추악하게 무감각했는지 확인시켜줬다. 한 번은 자주 나가던 책 모임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강남역 포스트잇 운동으로 자신이 다니는 강남역 근처 어학원을 가기가 너무 불편하다며 한 남성 회원이 불평을 늘어놓았고 많은 남성들이 동조했다. ‘불편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복원’되었다.

한 여성 살인사건이 어학원 통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그의 불평과 나머지 남성들의 동조는 누가 나를 삭제하는지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그들’이었다. 그저 여성에게 무시를 당한 ‘한 명의 착한 남성’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복원되기로 결심했고 그들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강남역 사건은 그래서 ‘복원’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때부터 줄곧 나의 존재는 의심을 받았다. 그들은 나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거나 논리가 없는 질문을 일삼고 무책임한 언행을 선보였다. 그때마다 나의 상처를 보여주며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었다. 심지어 차라리 내가 한 성인처럼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정당했고, 그 사실에 나의 무능력함과 초라한 지식을 탓했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회 주류로 부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인정만 받는다면 언젠가는 그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강남역 10번출구 1주기 추모행사 포스터 / 페미당당 제공

강남역 10번출구 1주기 추모행사 포스터 / 페미당당 제공

그렇게 계속 인정과 주류에 집착했다면, 삭제된 존재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앎’은 더 이상 중심이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말해주었다. 먼저 존재하기 위해 저항한 여성의 역사의 활자로 체득하면서 중심의 자리에 나를 위치시키게 되었다. 이제 걸을 차례였다. 사회는 남성중심 사회다. 사회는 사회의 중심이 되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교육시키고 당연히 중심이 되는 성은 ‘남성’이다. 하지만 앎은 교육과 다르다. 교육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역사와 인물을 보여주고 나와 닮은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렇기에 걷기 시작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존감과 자애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태껏 주류의 성이 되지 못해, 한마디로 거세당한 존재로,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오던 생명이 나라는 존재로 거듭났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한 남자 동기가 “여자는 25살이면 꺾이지”라는 말을 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나 페미니스트야”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의 나에 대한 설명에 대한 마침표였다. 마침내, 나였던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가만히 두는 사회는 아니다. 비루한 의심과 질문으로 무너지지 않는 존재는 혐오로 대응한다. 혐오로 고립시키고 목소리를 내면 간단하게 무음을 누르는 무지하지만 거대한 사회다. 개인은 사회에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존재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칠 계란조차 없는 것이다. 절망은 그때 찾아왔다. 개인의 사회집단 안에서 집단의 사회로 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아침은 불특정다수에게 어제 어떤 욕설을 들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거나 두려웠던 적은 없다. 절망한 이유는 그들을 제재하는 공권력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점과 기댈 곳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공권력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깨닫는 것과는 다르다. 법에는 빈 부분이 아니라 큰 공간이 있었고, 대부분은 여성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공간을 위로받고 싶었다. 충고보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불특정다수에게 욕설을 듣던 공간을 통해 드디어 누군가가 연락을 해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제 그만 포기할까를 매일 생각하며 아침에 또 눈을 떠 휴대전화로 욕설을 확인하는데, ‘관심 있으면 같이 활동해 볼래?’라는 간단한 연락이었다. 간단한 연락이 계란을 쥐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개인이라는 혈혈단신의 존재가 아니라 ‘너’가 존재하는 연대의 사회로 걸어갔다. 걷는 풍경이 달라진 순간이었다. 연대의 사회는 같이 걸어가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같이 존재한다의 개념이 강했다. 그때 처음으로 모순적으로 나의 존재가 처연해지며 눈물이 났다.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에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성을 가만두지 않는 남성중심사회

간단한 연락으로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독서모임, 영화감상과 중간 중간 열렸던 집회에도 참가했다. 연대는 나에게 안전망을 의미한다. 국가기관이 제공하지 못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보살피고 다듬어주었다. 단순히 감상을 나누는 자리는 유의미한 경험의 축적이 되고 서로의 경험에서 위로를 건네며 연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를 강건하게 만든다. 나의 존재가 너의 존재가 되고 길거리로 나서는 순간 우리의 존재가 된다. 우리를 삭제하고 목소리를 지우려 그들은 우리를 이제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연락이 계란이 되는 것이다. 강남역 사건으로 생명들은 폭발적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5월 17일, 강남역 사건 1주기는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고 또한 우리의 연대를 확인하는 자리다. 함께 존재함을 확인할 때의 용기와 감동은 큰 의미를 갖는다. 나아갈 길이 있고 더 이상 홀로가 아니라는 시야의 확장은 무거운 삶의 짐을 나누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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