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마을공동체, 가능성과 한계점들

2017.10.01 11:31

<한가위의 어원은 ‘한가운데’라는 뜻과 이어진다. 음력 8월의 보름날, 둥글고 큰 달이 떠오르는 이 날은 한 해 가을걷이 시기의 한가운데이기도 하다. 보름달은 도시에나 농촌에나 떠오르지만, 현대의 도시생활에서 추수의 기쁨을 함께 누리던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도시 안에서도 시나브로 자리잡은 마을의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다. 2012년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한 서울시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가 시행한 마을사업도 5년이 지나면서 정책의 성과를 거둘 시점이 됐다. 수확은 곧 다음해 뿌릴 씨를 고르는 채종으로 이어진다. 현재까지의 도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성과와 가능성을 살펴보는 한편,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골라내야 할 한계점들을 함께 짚었다.>

서울 금천구의 한 마을공동체 도서관에 모인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서울 금천구의 한 마을공동체 도서관에 모인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아파트 텃밭에도 추수철은 다가온다. 서울 성동구 행당2동 행당대림아파트 단지 내 ‘우리마을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은 농작물만이 아니라 이웃 간의 정을 기대하며 4년째 밭을 일군다. 사실 작은 텃밭인지라 다 익은 작물은 시시때때로 거두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추석 명절을 맞아 열매를 수확하는 기분은 평소와는 남다르다. “텃밭이 손바닥만하다고는 해도 한 번에 거둔 작물을 집안식구들끼리만 먹기에는 양이 남거든요. 이웃끼리 서로 주고받다 보면 도시에서도 명절 인심을 느낄 수가 있죠.” 주민 박모씨의 말이다.

행당대림아파트 ‘우리마을텃밭’은 2014년 3월 마을공동체 사업의 일환인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통해 시작됐다. 텃밭이 있던 자리는 쓰레기가 쌓여 활용이 애매했던 200여평의 테니스장 터였다. 지자체에서 마을공동체 사업 지원금을 받아 테니스장을 농사짓기에 알맞은 흙땅으로 바꾸고, 향후 텃밭 운영을 위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정한 수칙도 만들었다. 올해는 총 64구역으로 나눠 추첨으로 아파트 주민들에게 임대했다. 기간은 땅이 녹는 4월부터 11월까지다. 이 가운데 10개 구역은 텃밭운영위원회의 몫으로 따로 정해 공동으로 가꾼 뒤, 수확한 농작물은 경로당과 독거노인 가구 등에 전달한다.

동 전체가 거의 아파트단지로만 뒤덮여 삭막한 느낌이 드는 행당2동에 작지만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주민들은 기뻐했다. 텃밭은 단지 먹을거리를 심고 거두기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어떤 퇴비를 써야 할지, 벌레는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혼자서 농사를 지으면 고민해야 했던 내용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최장 열흘에 이르는 올해 추석 연휴처럼 길게 집을 비워 밭을 돌보기 힘들 때는 이웃의 텃밭을 서로서로 돌봐주기도 한다. 주부 한정자씨는 “아파트라는 특성 때문에 이웃끼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는데, 마을텃밭을 일구는 데 다같이 참여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진 게 가장 큰 열매”라고 말했다.

도시 마을공동체, 가능성과 한계점들

■아파트 단지 안 ‘우리마을텃밭’

행당2동의 ‘우리마을텃밭’은 마을공동체 사업이 거두고 있는 긍정적 성과 중 하나다. 도시농업이나 텃밭 가꾸기와 같은 활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지만, 마을공동체와 함께 연결되면서 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대도시 주변의 텃밭이 주말농장 위주로, 살고 있는 지역과는 거리가 떨어진 곳이 많고, 시간상으로도 특정한 요일에만 돌보게 되는 한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땅값이 비싼 대도시에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텃밭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지만, 마을텃밭 사업은 마을공동체 사업 5년을 지나며 잘 정착된 사업 유형 중 하나다.

텃밭을 가꾸는 등 지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주민이 아니라, 집에서는 잠만 자고 출근하기 바쁜 직장인들에게도 마을공동체를 경험해볼 만한 방법은 없을까. 직장인 심현규씨가 이전까지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심드렁했던 까닭도 그것이었다. 미혼으로 부모님 댁에 얹혀 사는 처지인 그에겐 딱히 동네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직장이 있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부근에서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다 발견한 강좌 내용이 심씨의 눈길을 끌었다. 직장 근처 주민센터 강당에서 열리는 동양철학 강좌는 전혀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심씨도 들을 수 있었다. 강좌를 함께 들으며 심씨는 자연스레 공동체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심씨는 “처음엔 동네 얘기를 할 때는 제가 껴서 할 말이 별로 없었는데. 나처럼 직장이 가까워 마을공동체 개설 강좌를 들으러 나온 사람들까지도 점점 마을에 관한 대화를 하다보니 주소가 두 개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 동네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수가 급증하고, 사업 진행이 점차 정착되는 단계로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마을텃밭을 가꾸는 사업, 동네 주민끼리 공동육아 공동체를 만드는 사업, 교양 인문학 또는 실용강좌를 함께 듣는 사업 등 마을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활동이 지원대상이 된다. 종래의 마을 개념처럼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면 다른 마을에서는 살 수 없는 것과 달리 여러 공동체에 모두 적을 두는 것도 가능하다.

전국의 마을공동체 수는 1만2000곳을 넘어섰다. 한국지역진흥재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지자체 지원 마을공동체가 8184곳, 국가 지원 마을공동체가 3540곳에 이른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마을공동체와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속도를 고려하면 5년 뒤엔 2만곳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2011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1379곳에 불과했던 지자체 지원 마을공동체 수가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들이 마을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2012년부터 3033곳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정부가 지역 복지의 거점이자 기반으로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계속되는 한 증가세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주민 마을공동체가 마련한 공방에서 주민들이 버려진 가구를 수리해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주민 마을공동체가 마련한 공방에서 주민들이 버려진 가구를 수리해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마을공동체 급증, 종류도 다양해져

문제는 종류와 수가 모두 늘어나면서 마을공동체 사업 역시 지원금이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정책으로 변모할 여지도 늘어나는 데 있다. 실제 현장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관 주도로 지원금을 받아서 시행이 된 사업이 정착 단계에 이르면 참여하는 공동체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자립성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의 사업 지원에서 대체로 3년을 기준으로 해 3년간 지속된 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추가 지원을 중단 또는 동결하는 원칙이 있다는 점도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최모씨는 중앙정부의 마을사업 지원금을 받아 시행한 마을기업 사업에 참여했으나 결과적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의 한 농촌마을에서 영농조합을 설립해 지역 특산 농작물을 생산하는 사업이었다. 수도권이긴 하지만 농촌지역인 만큼 젊은 인력은 부족하고 고령의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하지만 정착단계까지 감당할 초기 적자는 정부 지원으로 충당하고, 이후 사업이 자리잡으면 마을에 작으나마 수익을 가져다 줄 공동사업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수익이 마을 공동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적어도 꾸준한 순수익만 있어도 된다고 본 것이다.

“사업 자체로만 보면 농민 분들이 과외소득 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내 일처럼 성실히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내부 갈등 때문에….” 예상 못한 사업의 좌초 원인은 주민들 내부의 알력이었다. 이웃마을에서 온 최씨는 마을 안에 뿌리 깊은 편가르기가 자리잡고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두 편의 의견이 갈리니 최씨가 당초 계획했던 사업 정착 스케줄도 점점 미뤄지기 시작했다. 지역 사정에 그나마 밝은 지자체의 사업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상명하달식 사업이었던 것도 문제를 악화시켰다. 애초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사업 방향에 대해선 유연하게 변화가 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초의 계획에서 수정이 필요할 때도 여러 번 반복되는 담당공무원 설명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렇게 결정이 미뤄지면서 주민 내부의 갈등도 더 번졌다. 결국 의견이 맞지 않는 한 편의 주민들이 참여를 중단하면서 사업도 자연히 멈춰서게 됐다.

계속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문제는 공동체 지속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의 ‘2016년 마을계획 제도화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마을계획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사업의 가장 불만족스러운 점’을 묻는 문항에 36%가 ‘지역문제를 주민이 직접 해결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낌’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이라고 답했다. 최초 시작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의 자발적인 발의로 출발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마을공동체 외부의 문제는 물론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기보다는 사업이 진행되어온 관성으로 움직여간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지원되는 예산 없이 향후 순수하게 주민들의 힘으로만 자립할 수 있는지도 사업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마을공동체의 고민이다. 서울시의 사업으로 범위를 한정해서 살펴보면 사업이 시작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사업의 진행 단계에 따른 공동체의 수는 높은 단계로 갈수록 크게 줄었다. 보다 정착되고 안정적인 형태를 갖춘 높은 단계일수록 마을공동체 사업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위 단계 사업들이 저조해 감소세를 보이는 면에 대해서는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장 하위단계인 1단계와 2단계의 사업건수는 각각 1632건과 1250건에 이르지만, 3단계와 4단계로 가면 각 312건, 113건으로 크게 줄어들며, 종합적 마을계획 수립 지원단계인 5단계에 가서는 79건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서울연구원의 안현찬 부연구위원은 “4~5단계 사업은 모임 간 연계지원 추진이 저조하고, 2014년 이후 대폭 마을계획 지원을 확대했지만 단순한 활동지원에 그친 사업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주민만의 힘으로 자립 가능성 고민

하지만 마을공동체 사업이 또 하나의 ‘예산 따먹기’ 사업으로 전락해 자립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가 다수다. 참여하는 주민들이 사업에 필요한 예산 중 일부를 자부담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의무 자부담률인 10%보다 훨씬 높은 예산의 18%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 부연구위원은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최소 12만8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기존 추산보다 시민들의 참여가 5만명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들 시민이 부담한 자부담률이 18%라는 건 기본요건은 충족했지만 그렇다고 의존도가 낮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사업에 들어가는 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하는 비율이 의무요건보다는 높지만, 아직 완전한 자립에는 미치지 못한 상황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실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는 자부담률을 높이더라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사실상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이 참여 주민의 사적 이익보다는 공공복지 차원의 지출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지출이라고 비판할 여지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이민지씨의 경우도 지원금이 개인의 이익으로 돌아간다고 보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씨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육아 프로그램은 사업 유지를 위해 임대료를 내거나 시설을 갖추는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면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필요한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방식이다. 마을공동체 중심이기 때문에 어린이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등하원 버스가 필요 없고, 학부모가 직접 데려다 준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청소는 학부모들이 당번제로 돌아가며 맡아야 하는 수칙도 있다. 다소 귀찮은 점은 있지만 아이를 맡긴 만큼의 책임감이라고 받아들인다. 이씨는 “물론 지원금이 줄어들면 학부모들이 경제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더 많은 대가를 내야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며 “학부모들이 당연한 책임을 다하는 만큼 복지 차원에서도 지원을 계속해 준다면 더 만족도가 높아지긴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시에서의 마을공동체가 이미 파괴된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하고 공공복지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자립성을 요구하는 물음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에게 전가된 책임을 다시 정부나 지자체와 같은 공공이 일부 가져가는 것인데도, 자립성이나 지속성과 같은 성과주의적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5년여간의 기간 동안 정착된 정책적 기반을 유지하고 더 높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마을공동체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마을공동체가 담당하는 공적인 복지 역할은 도외시한 채 자립성을 요구하기만 하면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책임만을 강조해 결과적으로 공동체 내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는 연구도 있다”며 “한정된 예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쓰는 데 대한 고민은 나오고 있으니 현 시점에서는 보다 장기적으로 안정성을 갖추는 쪽으로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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