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퀴어라고? 그게 뭐 어때서?"···중학생 10명 중 8명 "친구가 동성애자여도 상관없어"

2017.12.03 15:26 입력 2017.12.25 15:48 수정

"네가 퀴어라고? 그게 뭐 어때서?"···중학생 10명 중 8명 "친구가 동성애자여도 상관없어"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정모양(15)은 지난달 친한 친구 6명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자신이 ‘퀴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정양은 친구들에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으로 얘기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 너희들은 나쁘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친구들은 정양이 퀴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친구들은 “그럴 수 있지, 너를 지지하고 연대해. 말해줘서 고마워”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친구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가 퀴어이든 아니든 상관없어”라고 답했다. 정양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말했다”라며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라고 했다. 정양은 “누군가 익명으로 제게 트윗을 보내 ‘언니, 저도 성소수자에요’라며 밝힌 같은 학교 친구들도 10명 남짓이다.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고도 했다.

실제 중학생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아도 평소처럼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김애라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5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성 평등 교육정책 연속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 7월4~19일 서울 중학교 3학년 66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토론회에는 중·고교 학생 42명이 참석해 성 권리, 성평등 교육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응답자 가운데 81.2%는 친구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38.4%는 ‘전과 다를 바 없이 지내겠다’고 했고, 29.5%의 학생은 ‘조금 불편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13.3%는 ‘해당 친구가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없는지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고도 했다. ‘절교하겠다”나 ‘거리를 두겠다’고 답한 학생은 18.8%에 그쳤다. 동성애자를 트렌스젠더로 바꿔 질문했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조사 결과 13.3%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중학교 3학년 송모군(15)은 “게이, 바이섹슈얼(양성) 등은 개성일 뿐”이라며 “성이 개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모양(15)은 “학교 교육은 성소수자를 특이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대한다”며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4.1%)은 자신의 외모나 행동에 대해 ‘여자답지 않다’, ‘남자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중학교 남학생은 “‘남자는 힘이 세야 돼’, ‘남자는 과묵해야 돼’ 등의 얘기를 듣는 경우가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조모군(13)은 “요즘 아이돌의 경우 여자는 섹시해야 되고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응답자 중 40.0%가 특정 성별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을 써봤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48.9%)와 ‘별 뜻 없이 습관이 됐다’(40.1%)는 답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한 고등학생(17)은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하면 ‘메갈년’, ‘메갈짓’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학교에서 제대로 된 페미니즘 교육을 받는다면 다른 학생들이 올바른 성 인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에 성평등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답변한 학생들은 78.9%에 달했다.

한편 응답자의 43.3%는 학교 성교육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중복응답)로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답한 학생이 54.2%로 가장 많았다. ‘여러 번 들어서 지루하다’(53.2%), ‘알고 싶은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다’(35.6%) 등이 뒤를 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학생은 “제대로 된 성교육이라면 콘돔 사용법도 가르쳐줘야 하지 않나. 지금까지 성교육을 받으면서 콘돔을 실물로 볼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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