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프롤로그]‘더 큰 헌법’을 위하여

2017.12.31 23:50 입력 2018.01.05 11:53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정 헌법 계승, 9차례의 개헌…‘87년 헌법’도 낡고 좁은 그릇

올해 개헌하면 11번째 헌법…절차 넘어 인권·권력 공론화

시민의 가치, 새로 정립할 때

<b>헌재 휘장 지우고 스스로 낮춘…재판관 9인의 새 의자</b>  헌법재판소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심판정 재판관 의자 9개를 지난 11월 교체했다. 높이를 낮추고 등받이의 무궁화 문양 헌재 휘장을 없앴다. 재질도 딱딱한 느낌의 나무에서 부드러운 가죽으로 교체했다. 헌재는 “별도로 주문 제작하지 않고 시중의 사무용 의자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헌재가 스스로를 낮추면서 헌법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진성 헌재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8일 대심판정에서 사법시험 폐지 위헌확인 소송 선고를 위해 교체한 의자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헌재 휘장 지우고 스스로 낮춘…재판관 9인의 새 의자 헌법재판소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심판정 재판관 의자 9개를 지난 11월 교체했다. 높이를 낮추고 등받이의 무궁화 문양 헌재 휘장을 없앴다. 재질도 딱딱한 느낌의 나무에서 부드러운 가죽으로 교체했다. 헌재는 “별도로 주문 제작하지 않고 시중의 사무용 의자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헌재가 스스로를 낮추면서 헌법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진성 헌재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8일 대심판정에서 사법시험 폐지 위헌확인 소송 선고를 위해 교체한 의자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강탈됐을 때 우리는 헌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이다. 참혹한 일제 지배에서도 정부를 작동시켜 광복을 맞았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됐다.

헌법은 이후 9차례 개정됐다. 개헌에는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이 배어 있다. 엉터리 절차를 밟은 게 세 번이다. 1952년 발췌 개헌, 1954년 사사오입 개헌, 1969년 삼선 개헌이다. 군사 쿠데타와 독재를 연장한 개헌도 세 번이다. 1962년 박정희 개헌, 1972년 유신헌법 개헌, 1980년 전두환 개헌이다.

의자 교체 전인 지난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선고 요지를 읽고 있다. 박한철 소장 퇴임으로 맨 오른쪽 좌석이 비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 크게 보기

의자 교체 전인 지난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선고 요지를 읽고 있다. 박한철 소장 퇴임으로 맨 오른쪽 좌석이 비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19혁명 이후 1960년 3·4차 개헌이 있었지만 국민투표가 아닌 국회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제대로 시행되기 전에 사라졌다. 유일하게 여야 간 합의와 국민투표를 거친 헌법은 1987년 만들어져 1988년 시행한 현행 헌법이다. 이를 민주화 헌법이라 부르며 30년 동안 써왔다.

1987년 개헌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적지 않다. “1987년 개헌 작업은 정치권 ‘엘리트 협상’의 결과물”(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전광석 연세대 교수)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엘리트 협상’은 1987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의원 4명씩으로 이뤄진 8인 정치회담을 가리킨다. 8월3일 시작해 9월1일 끝났다. 타결안은 국회로 넘어가 8차례 회의를 거쳐 9월21일 의결되고, 10월27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석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헌법 조문 37%를 고치면서 적잖게 혼선이 빚어졌다. 가령 64조 4항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의 징계와 제명은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1987년 새 헌법으로 도입된 헌법재판소에는 제소가 가능할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헌재와 관련될 조항을 꼼꼼히 보지 않고 헌재가 없던 시절 조항을 그대로 뒀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기본권 조항도 수정할 부분이 적지 않다.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만 한정해 헌재가 국민에 외국인도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가가 보호할 장애를 신체장애로 적어 정신장애는 어떡하느냐는 항의를 받는다. 가족이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는 조항에 따라 동성혼은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혼인 외 자녀 보호를 명시한 외국과 달리 한국 헌법은 동거 같은 사실혼을 제외한다.

이런 것들은 1987년 당시에는 예상도 못했던 일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적·기술적 환경에 처한 우리에게 20세기의 헌법은 충분하지 못하다. 헌법이 ‘낡고 좁은 그릇’이 된 것이다. 개헌을 통해 헌법을 손질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은 조항들이 헌법재판관 9명의 해석에 따라 변경되고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헌재에 의해 소규모 개헌이 계속되는 셈이다.

개헌은 국민투표로 헌법 조항을 바꾸는 절차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핵심은 인권과 권력을 논쟁하는 것, 공론화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시민혁명이 3차례 있었다. 1960년 4·19혁명, 1987년 6월항쟁, 2016년 촛불집회다. 모든 시민혁명은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완성된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더 큰 헌법 논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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