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낳아야지” “노년 어쩌려고” 압박에 ‘무자녀 부부’ 많지만, 말할 수 없는 현실

2018.09.29 06:00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펴낸 이수희씨 부부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저자 이수희씨와 남편 이용원씨가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나란히 앉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저자 이수희씨와 남편 이용원씨가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나란히 앉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너도 얼른 낳아야지” “노년에 어쩌려고 그래. 그쪽으로 유명한 병원 소개해줄까?”

 한국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합계출산율)가 지난해 사상 최저인 1.05명으로 집계됐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적지 않지만, 이들의 삶은 쉽지 않다. 부모·시부모의 걱정과 비난, 이미 아이를 가진 또래 친구들과 직장상사, 동네 이웃의 오지랖…. 왜 결혼의 ‘다음 관문’으로 가지 않느냐는 독촉이 끊임없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이수희씨(41)는 4~5년 전 그런 말들에 갇혀 있었다. 33세에 결혼한 그는 2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난임병원에 다녔지만 2달간 하혈을 하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그때 이씨 부부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몇 달간의 상의 끝에 아이 없이 살기로 결론을 내렸다.

 ■소수자 아닌 소수자

 이씨는 지난 4월 자신의 이야기,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중쇄를 찍은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의 ‘조용한 흥행’은 수적으로는 소수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관념상 ‘극소수’로 취급받는 무자녀 부부의 현실을 닮았다. 이들은 우리 곁에 무수히 존재하지만 마음놓고 자신들을 드러낼 수가 없다. 책소개 게시물에 어떤 독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책의 제목 만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이씨는 공식적으로 ‘무자녀 부부’가 된 후 외로움에 시달렸다. 난임병원에 다니는 도중 건강악화로 회사를 그만뒀고, 재취업을 하려 했지만 30대 후반의 유부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대화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또래 모임에선 온통 아이 얘기 뿐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지내?” 어렵게 고민거리를 말했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넌 참 팔자 좋다.” 이씨와 같이 아이를 낳지 않은 많은 여성들은 ‘인사’로 주고받는 “아이가 몇살이에요?”나 “그럴거면 결혼 왜 했니”와 같은 말들에 아파하다가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인간관계가 끊어지다보니 몇날 며칠 나 혼자 말을 안 할 때가 있는 거예요. 어느 날 이웃이 인사를 했는데 제가 더듬더듬 대답을 제대로 못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게 힘들다 싶을 정도로.”

 이씨를 일으켜세운 건 남편이었다. “너와 비슷한 친구를 찾아보면 어때?” 남편 이용원씨(45)는 “아내가 원래부터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척 외로워하고 있구나”라는 걸, 굳이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남편의 말에 지역주민 카페에 자신의 이야기를 간략히 올렸다. 간절하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댓글 수십개가 금세 달렸다. 모임 첫날, 밤이 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나도 같은 처지”라며 울먹이는 이들의 연락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3년이 흘러 지금은 그 모임의 구성원이 약 350명에 이른다.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에 담긴 이수희씨와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이 ‘소수자’를 넘어 ‘비정상’으로까지 치부되는 한국 현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이런 한국사회의 여성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 사실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씨는 책을 통해 이 사회에 담담히 말한다. ‘저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이가 없을 뿐이에요.’

이수희,  이용원씨 부부가  경기 고양시 자택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수희씨는 주로 밤에 글을 썼다. 아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남편도 작업실에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강윤중 기자yaja@kyunghyang.com

이수희, 이용원씨 부부가 경기 고양시 자택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수희씨는 주로 밤에 글을 썼다. 아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면 남편도 작업실에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강윤중 기자yaja@kyunghyang.com

 ■아이 없이도 평범한 부부

 ‘아이가 없는 부부’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나면 이씨 부부는 특별할 것이 없다. 결혼 직전, 남편의 잦은 야근 때문에 이씨 혼자 살림살이를 보러 다녔다. 이건 “10년짜리” 부부싸움거리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가지고도 자주 다퉜다.

 하지만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 두 사람은 서로 ‘합’을 맞춰나갈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은 ‘말이 많은’ 부부다. 하루에 아무리 바빠도 30분은 대화를 한다고 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도 “오늘은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가 내일은 또 저렇게 결론짓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대화가 많다고 해서 ‘우리 너무 행복해’라며 호들갑을 떠는 부부도 아니다. 정보기술(IT) 계열에서 일하는 남편은 때로 컴퓨터를 만지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 노래 한 곡에 꽂혀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이씨는 남편을 그냥 내버려 둔다.

 “너무 밀착하는 것도, 너무 거리를 두는 것도 좀 그렇죠. 완급조절을 하는 걸 배워 나가고 있어요. 2인 가구는 둘의 관계에 대한 노력이 꼭 필요해요.”(이수희)

 ‘실리’를 중시하는 이씨는 재취업이 안되자 초조해서 바리스타, 관광통역사, 상담사 같은 돈 될 만한 자격증을 따는 데 집중했다. “놀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남편이 또 무심코 한마디를 했다. “의미 없는 일을 좀 해봐.” 지금 이씨는 남편 말대로 진짜로 ‘놀아보고’ 있다.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아이의 탄생과 첫 걸음마 등을 보며 ‘난생처음’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 없는 부부의 삶을 두고는 신혼 시절을 떠올리며 ‘알 것 같다’고 쉽게 말해 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의 걸음걸음, 둘이서 늙어가는 경험은 ‘유자녀 부부’는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다.

 요즘 이씨의 가장 큰 고민은 노후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걱정해주었던 것도 노년의 삶이었다. 무자녀 부부는 스스로의 장례비용까지 마련해놓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또 정반대의 방향에서 ‘노후’라는 주제에 접근 중이다. 이씨는 노후자금을 걱정하지만, 남편은 “노후자금이 다 마련된다고 해도, 노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한다. “그때 하고 싶은 걸 생각하는 거야말로 진짜 노후준비”라는 게 남편 주장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사실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겠죠. 지금은 아무 일 없는 일상도 감사하고 행복해요.”(이수희)

 남편의 대답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일 때문에 힘겨울 때가 많다보니 일상이 당연하지가 않죠. 아내와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저는 아내랑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거든요.” 이씨는 남편 이용원씨의 대답에 생략된 표현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부부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결혼을 한다. 이씨 부부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솔직히 우리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불안정한 미래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지금은 서로 애틋하게 손을 맞잡고 있으며, “한쪽이 놓아버리는 일 없게”(남편)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저출산·고령화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면 그것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각자의 숙고가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합의’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지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임신과 출산을 하면 모두의 축하와 응원을 받잖아요. 내가 아이 낳은 사람들을 응원했던 것처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저도 응원과 존중, 지지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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