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5공화국 이야기 “우리는 늘 함께 맞서왔다”

2018.11.07 06:00 입력 2018.11.07 17:22 수정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5공 신군부가 쓴 ‘승리의 역사서’다. 동시에 ‘패배의 과정’을 자인하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군부 독재정권이 자신들만의 역사를 쓰고 있던 시간,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민의의 역사’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어깨를 겯고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은 결국 권위주의 정권을 넘어 스스로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5공 전사>는 1981년 3월 전 전 대통령의 12대 대통령 취임 직후를 기록하며 끝난다. 책은 마무리됐지만 역사의 종착점은 아니다. <5공 전사>가 지우고, 숨기고, 왜곡한 ‘진짜’ 이야기가 행간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5공화국체제를 넘어 온 사람들, 그리고 이후 세대들에게 물었다. ‘왜 여전히 5공화국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달랐지만 답들은 서로 닿아 있다. 5공을 겪은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실현돼온 역사를 돌이켜봤다. 5공 이후 세대 역시 그 가치들을 기꺼이 품고자 했다. ‘더 깊고 풍성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라는 방향성에서 공감을 이뤘다.

5공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렸다. 시간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 탓이다.

‘부림사건’ 피해자 고호석씨(63)는 “이미 끝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민주화운동세력의 탄압을 위해 부산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직장인 등 2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법체포해 구타·고문한 것이다. 5공화국의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2014년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저는 교사로 복직했는데, 아주 운이 좋았던 경우죠. 다른 사람들은 대학 졸업이나 취직을 못하고, 고문과 징역살이에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옹색한 딱지를 달고 있고요.” 고씨는 “민주주의는 완성되거나 안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이전의 아픔을 기억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야만의 시대’ 몰아낸 시민…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일러스트 | 김병철 기자 ppassu@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병철 기자 ppassu@kyunghyang.com

박종철 열사의 1년 후배인 이현주씨(52)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5공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5공 당시 박 열사와 함께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삶을 너무나 야만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개개인이 선택의 여지 없이 폭력에 가담하거나 방관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데 맞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5공을 기억하는 것은 스러져간 사람들을 떠올리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1987년 민주항쟁과 이후 이어진 촛불집회를 보며 희망을 봤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으면서도 간절히 원했던 것이 우리 세대였어요. 이후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서 촛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곳곳에서 박 열사의 숨결이 느껴졌어요. 아, 우리가 이런 것을 원해서 싸워온 것이구나 싶었죠.”

이씨의 말처럼 ‘5공화국’을 기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1980년 ‘서울의봄’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이들도 ‘현재’를 바로 보기 위한 창으로써 5공을 언급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60)은 “우리 세대는 어두운 시대에 스러진 사람들에 대한 의식을 하면서 사는 게 무거운 때가 있다”며 “그만큼 오늘 서 있는 이 자리가 여러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 속에 있다는 것, 그 생명들의 뜻이 이어진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77)은 “역사는 기억해야만 되풀이되지 않는다”며 “우선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밝혀진 것들을 기억해야 역사가 올바르게 정리되고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공 이후 세대들 역시 ‘현재와 닿아 있는’ 5공을 기억하면서 나아가고자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김재원씨(32)는 “지금 보수의 이데올로기 등 많은 것들이 80년대 5공 정권에서 시작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현실과 떼어낼 수 없는 문제”라며 “5공의 유산은 위계라는 ‘일상의 보수성’으로 남았다. 80년대를 기억하며 우리의 일상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남북 현대사를 공부하는 박창희 박사(42)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5공을 돌아봐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조선시대는 배웠어도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부정의와 부조리로 평가되는 시대를 살아오며, 자랑스레 얘기할 게 없다는 점이 부끄러우셨던 게 아닐까요. 1970~1980년대 역사는 아직 학계에서도 폭넓게 연구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계층이나 학연, 지연 등 특수관계를 가진 이들이 똘똘 뭉치는 식의 민주주의를 막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담보해내는 것이 87년체제 이후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5공 전사> 속에서 시민들은 철저하게 지워졌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집단적인 민주주의 열망은 행간마다 살아 움직인다. ‘서빙고분실’과 ‘남영동분실’의 고문 속에서도 시민들은 손을 맞잡았다. 군인들의 총칼에도 다시 횃불을 들고 모였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현장에서 주먹밥을 나누고, 군홧발에 짓밟힌 시민들의 관에 불을 밝혔다. <5공 전사>가 지운 시민들의 열망이 결국 2016년 촛불정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민주주의의 ‘끝날 수 없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시리즈 끝>

※기획시리즈 <5공 전사>는 특별취재팀에 이어 자문단 교수들이 집필하는 <5공 전사-더 깊이 보기>로 거듭나 다음주부터 연재됩니다.

■ 특별취재팀 (기자)
배명재·강현석·유정인·조형국

■ 자문위원단 (교수·가나다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노영기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