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여행의 방식은 천차만별인데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 오면 안돼?

2019.06.22 06:00 입력 2019.06.22 06:01 수정
김혼비 | 에세이스트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루브르에서 만난 블로거의 ‘중년 패키지 단체 관광객 행태 묘사’를 보며
그와 내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본 게 맞는지 의아했다 오랜 세월
별렀던 첫 해외여행의 감격, 모나리자를 직접 본 흥분…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의 매 순간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중년,단체, 패키지’가 빚어낸 편견으로 그들을 냉소하고 멸시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조금만 떠보면 좋지 않을까

여행을 가기 전 여행할 곳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에 올라온 각종 여행기들을 꼼꼼하게 살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인터넷 서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렇다.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여전히 여행지에 머물고 있는 마음을 잘 찾아 데려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똑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수시로 여행기를 샅샅이 찾아 읽다 보면 여행지에서 실제로 봤던 사람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는 일도 간혹 생긴다. 루브르박물관에서 스치듯 마주쳤던 A의 블로그 글도 그렇게 읽게 됐다.

루브르박물관에서 인파로 가장 붐비는 두 곳을 꼽으라면 단연 모나리자 그림 앞과 밀로의 비너스상 앞일 것이다. 특히 모나리자 앞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밀푀유나베처럼 겹겹이 둘러 서 있어 그 안에 섞여들기까지 약간의 각오가 필요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맨 앞줄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그림에 대한 감동이 나베 국물 속 채소처럼 시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인구밀도의 최고치를 경험하고 나니,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비너스상 앞에서는 인파들 속에서도 조각상을 즐길 여유마저 생겼다(그림보다 조각을 더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작용했겠지만).

A를 본 것은 그곳에서였다. 내 뒤편 어딘가에 서있던 네 명의 한국인 중 하나였다. 사실 박물관에서 한국인을 마주치는 건 그리 특기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들 말고도 이미 내 앞쪽 옆쪽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사람들은 ‘○○○○ 상인회’라는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단체로 입은, 50~60대쯤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남성 한 무리였다. 스무명쯤이나 될까. 마침 내 바로 앞에 서있기도 해서 어쩐지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건 A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A의 루브르박물관 여행기 속 주요 등장 인물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A는 그들에 관해 두 문단에 걸쳐 써놓았는데, 첫 문단이 그들의 ‘행태 묘사’였다면 두 번째 문단은 그들로 대표되는 ‘중년 패키지 단체 관광객의 행태 묘사’였다. 그는 예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딱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루브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에 개탄했고, “유명한 작품 앞에서 사진 한 장씩 박는 게 여행의 전부인 사람들”의 문화적 척박함에도 개탄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박물관은 지겨운 공간이었을 거라며 루브르와 그들의 잘못된 만남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그들의 단체 티셔츠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개탄 끝에 내린 그의 결론은 “그런 사람들”은 박물관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흥미로운 부분은 우연히 들른 블로그가 그의 것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볼 만큼 A 본인도 “유명한 작품 앞에서 한 장씩 박은” 자기 사진들을 올려놓았다는 것이겠다).

개탄맨 A의 글을 읽는 동안 그와 내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본 게 정말 맞는지 의아했고 당황스러웠다. A와 나의 인식의 간극은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 간극에서 기인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A보다 그들과 훨씬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귀에 그들이 조용조용 나누는 대화들이 간간이 닿았는데, “이거 무지 유명한 조각상이야”라며 비너스상에 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는 사람, “아, 그래? 너 똑똑하다, 야”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사람, 좀 전에 찍어왔을 모나리자 사진을 돌려보면서 “세상에, 우리가 모나리자를 진짜로 보고 간다?”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냐는 듯 마냥 신기해하는 사람, “내가 그림을 보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솔직히 모나리자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쪼끄맣고”라며 갸웃하는 사람, “근데 모나리자 얘네 첫째 딸 좀 닮지 않았냐?”는 누군가의 말에 소리 죽여 큭큭대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 그룹에는 좀 정겨운 구석이 있었다. 한참 후 조각상 앞에 당도했을 때는 가장 가까이에 서있던 한국인인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비너스상이 어깨 너머에 걸리는 사진을 몇 장 찍어주기도 했다.

거기서 숨이 죽은 줄 알았던 인연은 한 숨 더 이어졌다.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 앞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들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일군의 사람이 반색하며 나를 불렀고(누군가 “어, 저기 루브르 언니다!”라고 외쳐 부른 걸 시작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내내 “루브르 언니”라고 불렸다) 나도 딱히 마다하지 않고 자연스레 합석해서 맥주 한잔을 얻어 마셨다. 한 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에 관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대개 내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분들이었고, 해외여행은 처음인 분들이 많았고, 각기 다른 업종의 장사를 오랫동안 해온 만큼 각기 다른 뚜렷한 개성 아래 흐르는 유대감이 있었다.

그중 가장 개성 넘쳤던 사람은 20년 넘게 꽃집을 했다는, 여자 그룹 안에서 리더격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그분은 손가락으로 휙휙 내 사진들을 넘겨보다가, 색색가지의 온갖 꽃이 한데 섞여있는 게 무척 아름다워서 발걸음을 멈추고 정성들여 찍은 어느 정원의 사진 앞에서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이건 무슨 꽃이고 저건 무슨 꽃이라며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난생처음 듣는 이름들도 있어 나는 늘 갖고 다니는 메모장에 몇몇 이름을 받아 적었다. “역시 꽃집 사장님은 다르네!”라는 옆 사람의 말에 “꽃집 한다고 다 아는 게 아니야~ 이게 다 눈썰미도 있어야 하고, 공부도 얼마나 해야 하는데!”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인 그분은, 너무 빠듯한 일정 때문에 한 나라에 충분히 머물지 못해 아쉬웠는지 몇 년 후에 꼭 다시 올 거라며 “이제 돌아가면 꽃 1억 송이는 팔아야겄다!”라고 호탕하게 의기를 다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 즐겁게 하세요.” “루브르 언니도 잘 지내요.”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었고, 담백한 작별인사였다.

A의 블로그 글 아래에는 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A가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어땠을지 안 봐도 알겠다는 단언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비슷비슷한 목격담들. 많기도 많고 길기도 길었던 그 댓글들만 읽다 보면, 영국 대영박물관부터 대만 국립고궁박물관까지,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며 전 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개탄의 양으로 개탄 화력발전소 서너 개는 거뜬히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소음이나 새치기로 직접적인 민폐를 끼친 사례는 반이 안됐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안 그래도 복잡한 박물관에 ‘그런 사람들’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거리낌 없이 했고, 특히 여행사 깃발 아래 몰려다니는 중년 단체 관광객은 “그런 사람”에 자동으로 포함시키는 듯했다. 아예 ‘깃발 부대’라는 멸칭이 있을 정도였다. 허, 참, 동학혁명의 나라에서 언제부터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의 위상이 이렇게 턱없이 떨어진 것인지.

[김혼비의 혼비백서](2)여행의 방식은 천차만별인데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 오면 안돼?

같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들이 타인의 관람을 방해할 정도로 시끄러웠나? 그렇지 않았다. A와 그 일행들도,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비슷한 데시벨로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A도 그들이 ‘불편을 끼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뭐가 문제였던 걸까. 결국 ‘예술에 조예가 있고 즐길 줄 아는 나’의 쾌적한 관람에 그렇지 못한(이라고 그가 예상하는) 사람들이 혼잡을 빚어 못마땅했던 것 아닌가.

중년, 단체, 패키지여행, 이 세 가지가 결합해서 빚어내는 어떤 편견. ‘여행부심’과 ‘예술부심’이 이중으로 빚어내는 어떤 오만. 거기에는 이전 세대에 비해 박물관·미술관 전시를 생활밀착적으로 관람하는 문화를 경험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예술에 관심을 갖고 취향이라는 걸 만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며,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여행을 가기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들이 쌓은 심리적 장벽을 패키지여행의 형태로 넘기 쉬운 세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었다(중년 안에서도 경험치와 감수성이 천차만별일 거라는 고려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는 건 ‘경험’을 쌓는 걸로 봐주지만, 그래서 당장은 지루해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해도 그런 경험들 끝에 돌아올 ‘무언가’를 기다려주지만, 50~60대 중년이, 이제 와서, 떼를 지어, 박물관·미술관에 가는 건, 단지 패키지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별 생각 없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싶어서, 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들에게는 쌓을 ‘경험’도, 미래의 ‘무언가’도 없을 거라는 듯이.

저 멀리서 관조했다면 사실 나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편견을 갖기 쉬운 몇 가지 키워드에 의해 어떤 사람들이 ‘한 묶음’으로 정리되어 버리면, 그 속에 제각각 다른 감정과 사연, 불가피한 사정과 한계가 있는 개별 인간들이 있다는 걸 떠올리기 힘드니까. 거기에다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질서를 어지럽히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사례들이 추가되면 “안 그런 사람들”까지 “그런 사람들”로 한꺼번에 묶여버리기 쉬우니까.

하지만 조금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묶음 속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벼르고 별렀던 해외여행을 드디어 한다는 커다란 감격이 있었고, 그 유명하다는 모나리자를 직접 눈으로 본 흥분이 있었고, 모나리자에서 누구네 딸내미를 떠올리며 같이 터뜨린 공유된 폭소도 있었다. ‘모나리자가 별로였다’는, 어떤 시작이 될지도 모를 작은 취향이 비로소 만들어진 근사한 순간도 있었다. 비너스상에 관해 미리 공부해 와서 친구들에게 조용조용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도 종류도 전혀 모른 채 그저 ‘예쁜 꽃’ 앞에서 찍은 내 사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꽃이름을 설명해주는 꽃박사도 있었고, 그 꽃박사는 “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예쁘다고 사진이나 한 장 박고 가는 게 전부”라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의 매순간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들도 나도.

그 이후로도 블로그, 책, 잡지, SNS 등에서 읽은 무수한 여행기들에서 여러 종류의 개탄맨들을 만났다. 유독 여행 분야에는 ‘그건 오답입니다!’라고 정답지를 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탄의 대상은 단지 중년 단체 여행객만이 아니었다.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A가 일컬은 “그런 사람들”은, “수박 겉핥기식 패키지여행이나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여행까지 와서 SNS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요즘 애들” “인터넷 정보만 믿고 현지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관광객용 식당에 뭣도 모르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역사적 명소에는 관심도 없고 쇼핑만 하다가는 애들”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여행기 곳곳에 등장했다.

아니, 그러면 좀 안되나요. 어차피 여행지에서 몇 달 살 것도 아니라면 누구도 수박 속까지 다 파먹을 수 없는데, 그냥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가 오면 안되나. SNS를 잠시 끊고 고즈넉한 여행을 즐기는 즐거움과, 그때그때 SNS 친구들과 여행의 순간을 나누는 건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데. 뭣도 모른 채 그냥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오면 안되나. 그래서 맛이 없었다면 그건 실패한 경험인가. 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정원 사진을 찍고,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미술관에 가면 좀 어떤가. “유명한 스폿에서 사진 한 장씩 박고 가는 게 여행의 전부”이면 또 어떤가. 타인이 더 나은 경험을 해보길 진심으로 바라서 하는 조언과, 무작정 던져놓고 가는 냉소와 멸시는 다르다. ‘세상의 빛을 보자’는 게 ‘관광(觀光)’이라면, 경험에 위계를 세워 서로를 압박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조금만 떠보면 좋지 않을까.

마침 어제도 그런 유의 개탄이 살짝 들어간(‘판에 박힌 여행’을 한심해하는) 여행기를 하나 읽는 바람에 오랜만에 A의 글이 떠올랐다.

글 속에서 그분들이 형편없이 묘사되는 걸 속절없이 읽고만 있었던 게 새삼 속상해서 이제라도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이 글을 시작했다. 루브르 언니가 7년 만에 맥주빚을 아주 조금 갚는다.

▶필자 김혼비

[김혼비의 혼비백서](2)여행의 방식은 천차만별인데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 오면 안돼?


퇴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틈틈이 이런저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이다. 축구와 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2018년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2019년에 <아무튼 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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