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설치보다 나은 대안이 있나”

2019.08.03 16:15

성형외과 안면윤곽 수술 후 숨진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지난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지난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5살 청년 권대희씨는 2016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은 직후 과다출혈로 49일간 뇌사상태로 있다 숨졌다. 권씨의 수술을 집도한 병원은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송한 대학병원에서 혈관을 제때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바람에 쇼크로 숨졌다고 주장했다. 아들이 눈을 뜰 것이라고 기대하며 차분히 성형외과로부터 각종 자료를 받아둔 어머니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대학병원 의사의 말에 무너졌다. 하지만 일어났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성형외과 원장이 내놓은 폐쇄회로TV(CCTV)를 500번 돌려봤다. 경찰에 자료를 넘길 때까지 200번, 경찰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이후 300번을 봤다.

어머니 이나금씨는 “경찰도, 검찰도 우리 아이 사건으로 장난칠 수 없도록 모든 증거를 분·초 단위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병원장과 마취과 의사, 수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를 모두 녹음, 녹취록을 만드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렇게 성형외과와 긴 싸움을 시작했다. 민사소송은 소를 제기한 지 2년 만인 지난 5월 28일 “병원에 8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형사고소는 3년째 검찰의 기소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7월 29일 이씨를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씨는 “CCTV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밝혀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의무설치를 주장하며 100일간 릴레이 1인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국회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두 차례 관련법안 발의를 한 이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안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이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처음부터 CCTV를 입수했나.

“그건 아니었다. CCTV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우리 아이에게 2분 심정지가 온 이후 숨지기 전까지 49일을 대학병원에 있었다. 집도의를 비롯해 병원 관계자들이 매일 입원실로 찾아왔다. 우리는 계속 물었다. ‘병원에서 한 게 뭐냐.’ 병원장(그가 집도의다)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수술실에 CCTV도 설치해 놓았다. 달라면 줄 수 있다’고 했다. 영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달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CCTV 영상 전체를 받았다. 남들이 볼 때는 병원장이 바보같이 그걸 왜 자진해서 줬나 싶을 테지만 원장은 우리가 그것을 본들 밝혀낼 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줬지 않나 싶다.”

생전의 권대희씨 모습 / 이나금씨 제공

생전의 권대희씨 모습 / 이나금씨 제공

-CCTV 분석이 웬만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원장으로부터 CCTV를 받아놓고도 우리 애가 죽을 때까지 열어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소송으로 안 가려고 했다. 아이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애가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대학병원 의료진이 어느날 ‘더 이상 가망이 없고 호전되더라도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실신해버렸다. 그런데 집도의는 끝까지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민사판결 선고 일주일 전까지 자신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죽기 전까지 병원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우리 아이가 얼른 깨어나야 선생님들도 좀 편히 쉬실 텐데요’라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계속 묻고 또 물었다. 물은 것들을 전부 녹음했다. 그들이 답변했던 것과 수술실 CCTV에 찍힌 영상들을 전부 비교·분석했다. 그 누가 봐도 한눈에 우리 아이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많은 것을 밝혀내셨다.

“우리 아이는 ‘공장형 동시수술’을 받았다. 그해(2016년) 2월에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3월에 병원에 들어온, 인턴도 레지던트 과정도 안 거친 의사가 우리 아이의 수술에 참여했다. 사전에 단 한 번도 고지되지 않은 인물이다. 집도의가 나가면 ‘유령의사’가 교대로 들어온다. 그리고 간호조무사가 아무 의료진이 없는 상태에서 단독으로 35분간 지혈을 한다. 우리 아이 사고만 터지지 않았으면 이런 식의 수술이 계속돼 왔지 않겠나. 마취기록이 조작된 것도 내가 영상과 녹취록을 분석해서 찾아냈다. 환자를 살리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CCTV 영상을 통해 입증해냈다. 우리 아이 몸에서 피가 3500㏄가 나왔다. 성인 남성 몸 속 혈액(5000㏄)의 70%가 빠져나갔다. 일부 의사들 중에는 그 이상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분도 있었다. 아이의 수술을 하면서 피가 침상 밖으로 뚝뚝 떨어지는데 간호사가 바닥에 흐른 피를 대걸레로 6번 밀어버렸다. 아이가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13번의 대걸레질을 했다. 혈액이 얼마나 빠져나갔는지는 수술대 밑에 깔아놓은 수술보를 몇 개 갈았는지로 출혈량을 예측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애는 수술보가 넘쳐 바닥으로 피가 떨어지고 있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대걸레질을 해서 피를 닦아버렸다. 그게 다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의무설치를 주장하며 100일간 1인시위를 하셨다.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고, 수술실은 안 변할 거다.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 중 나만큼 이렇게 많은 증거자료와 분석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내가 CCTV 영상을 입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나서야지. 우리 아이는 이미 죽었지만 앞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내가 우리 아이 이름을 걸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힘겨운 과정으로 보인다. 국회도, 보건복지부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의사를 위한 법은 바로 발의되고 바로 통과되는데 우리 경우는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도 움직이지 않고, 보건복지부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나는 CCTV 의무설치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 더 나은 대안이 있으면 가지고 와봐라. ‘유령수술’, ‘동시수술’을 뿌리뽑을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이 있으면 갖고 와보라는 것이다.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나. 나는 내 아이가 죽어가는 CCTV 영상을 공개해 가면서… 죽은 내 아이의 인권도 엄마로서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이러고 있다. 사회제도를 바꾸겠다고. 수술실에서도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내 자식을 죽어서도 보호해주지 못하며 이렇게 싸우고 있다. 내 자식 같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뭐라도 만들어놓고 이 일을 끝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무리한 요구인가.”

-국회가 움직여야 하는데.

“국회의원 자식들은 내 아이와 같은 일은 겪지 않겠지. 병원장이 가려던 휴가도 취소하고 VIP 대접해가며 수술해주겠지. 그런데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렇지 않다. 선거 기간에만 서민 체험하며 표 구걸하지 말고, 서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정부와 의원들은 모두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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