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 “나쁜 짓은 쉽게 배우게 되더라”

2019.08.03 16:15 입력 2019.08.04 09:49 수정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불법 의료행위들이 CCTV 설치로 없어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의사로서 윤리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원로 의료인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료사고 피해자·가족·유족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원들이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의료사고 피해자·가족·유족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원들이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15년 6월 24일에 태어난 동호(가명)는 2018년 6월 4일 사망했다. 1077일. 동호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기간이다. 동호는 태어날 때부터 난산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 18시간 30분 만에 산모의 질 입구에서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산모는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의료진은 태아의 머리에 흡입기를 부착해 빼내는 ‘흡입분만’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하자 제왕절개로 아이를 꺼냈다. 아이는 낳은 직후부터 다음날까지 잘 울지 않았다. 태어난 직후 폐포 확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울음도 보이지 않았다. 동호는 인근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의료진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진단을 내렸다. 심각한 발달지체와 경직성 사지마비 형태의 뇌성마비 증상이 보였다.

동호의 부모는 산부인과를 상대로 5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동호는 소송 도중 사망했다. 법원은 의료진의 책임을 10%로 판단했다. 신생아의 호흡이 태어날 때부터 불안정했던 사실을 인지했으면 산소포화도만 살필 것이 아니라 분만손상 가능성과 함께 부종의 출혈이 잘 멈추고 크기 변화가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했어야 함에도 하지 않았고, 상급병원으로의 이송 결정도 늦었던 점 등을 토대로 적극적 대처가 미흡했다고 봤다. 그러나 오진이나 적극적 의료과오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들 부부에게 내려진 배상금은 청구액의 10분의 1 수준인 4000여만원이었다.

의료사고는 환자 또는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다. 멀쩡히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수술받은 환자가 수술 직후 돌연 상태가 나빠져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인과관계가 설명돼야 한다. 문제는 의사들조차도 이 인과관계를 100%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여전히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발병 원인이 많이 존재하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치료법이 특정인에게는 들어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건 전담재판부를 맡았던 판사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이 갑자기 호흡곤란 등으로 응급실에 왔어. 그런데 통상 이 같은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효과를 보이는 약물이 A예요. 전체 환자의 70%가 A약물을 주입하면 상태가 호전됐기 때문에 의료진이 A약물 처방을 내려요. 그런데 이 사람한테는 이 약물이 듣지 않아요. 그러면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B약물이에요. 그런데 B도 들어맞지 않아요. 왜 그런 것인지 원인 파악을 하고, 차후 조치로 C치료를 하는 사이에 멀쩡히 걸어 들어왔던 사람이 사망했어요. 알고보니 이 사람에게는 D라는 약물을 처치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대증적인 방법은 아니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것은 의료사고일까요. 아닐까요. 왜 처음부터 D를 쓰지 않았느냐고 유가족들은 주장하지만 이것을 재판부가 의사의 과실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의료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

의료소송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의사가 수술 전 또는 처방 전 환자에게 수술의 위험성, 부작용 등을 다 설명해도 이를 100% 이해할 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다. 심지어 “자기가 의사이면서도 자기 전공 과가 아니면 다른 과 의사가 과잉처방을 해도 뭐가 잘못됐는지를 모른다”는 게 의사들의 얘기다. 소송에 돌입하겠다 마음먹고 병원으로부터 의무기록지 등 각종 자료를 입수해도 마찬가지다. 의학적 지식이 없으면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의료사고 피해자·가족·유족과 환자단체연합회는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촉구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한 지 100일째인 지난 4월 18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입법발의 요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면윤곽수술 과정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도 이날 “내 아들의 수술장면이 녹화된 CCTV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의사들이 수술실을 비우고, 수술실에 간호조무사만 혼자 남겨놓고 지혈을 하도록 한 사실, 지혈을 하던 간호조무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눈썹 화장을 고친 사실, 혈액이 수술실에 도착했는데도 긴급수혈을 하지 않고 방치한 뒤 아이를 대학병원에 전원시킨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국회에서 진척된 것은 5월 21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5명의 의원이 CCTV 설치가 담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게 전부다. 본회의 심의까지 가지도 못하고 폐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개정법률안 자체가 예방보다는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어 의사단체의 반발이 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발의만 했을 뿐이지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의원이 없고, 보건복지부 역시 “무면허 의료행위 예방 및 환자의 알권리 확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설치 목적, 효과 및 부작용 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첨예한 사안이므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그렇다면 수술실에 CCTV만 설치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까. 적어도 ‘유령수술(환자에게 고지하지 않은 의사 또는 간호사가 대리로 수술·시술하는 행위)’, ‘동시수술’ 등 명백한 불법행위를 적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부지만) 의사 집단에서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담당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를 해 수술을 마친 경우까지 CCTV가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한 대학병원 교수의 말이다. “우리도 수술실에 CCTV가 설치돼 있다. CCTV 설치 주장 이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수술실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아름다울 것 같나. 전기톱이 돌아다니고, 뼈가 튀고, 피가 수술 내내 등장한다. 사람들이 호러영화를 보지 않나. 수술실 영상이 딱 그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의료사고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수술실 한편에 설치된 CCTV가 얼마나 화질이 좋길래 근육을 절개하고 뼈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현미경처럼 보이겠나. 그냥 잔인한 장면만 보고 마는 것이다. 만약 유령수술이나 동시수술 같은 것을 잡고 싶으면 수술실 밖 복도나 문 근처에 CCTV를 달면 된다. 반드시 수술실 내부여야 할 필요는 없다.”

30년 경력의 마취과 전문의는 “빈대 하나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라고 했다.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서로를 보호하려고 반대하는 게 아니다. 지금 어린이집마다 CCTV가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지 않나. 그래도 아이를 학대하는 교사는 계속 학대를 한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못배워 먹은 놈’들은 강제로 CCTV를 설치해 놔도 유령수술, 동시수술, 비의료인에 의한 수술을 계속한다. 아이를 안 때리는 교사는 CCTV가 있든 없든 끝까지 안 때리고, 때릴 교사는 CCTV가 있어도 때리는 것처럼 나쁜 짓을 할 놈들은 계속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 정작 피해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하는 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에게 돌아간다. 환자 살리겠다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쓰는데 그게 CCTV 영상 속에서 이상하게 비춰진다고 해봐라. 그리고 그걸 이유로 선량한 의사가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해봐라. 소문은 삽시간이다. 수술이 복잡한 환자는 피하고, 살 확률이 낮은 환자도 피하다 보면 당장 어떤 조치든 해야 하는 환자가 피해를 본다. CCTV 설치 반대는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의료사건을 다수 검토해온 의사 출신 변호사는 “CCTV로 의료사고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CCTV 설치방안 이외에 불법 의료행위를 적발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도 “더 나은 대안을 가져와 봐라. 있으면 수용하겠다. 그런데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쁜 의사’를 적발하고,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CCTV 설치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집행부가 2014년 4월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에서 일련의 의료사고에 대해 고개 숙여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집행부가 2014년 4월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에서 일련의 의료사고에 대해 고개 숙여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수술실 밖에 달아도 유령수술 적발 가능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발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의무설치 내용을 담은 법안이 한 차례 추진됐지만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의원 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해 발의가 무산된 적이 있다. 또 2015년 1월 최동익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CCTV 설치를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조차 올라가보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기도 했다. 의사단체의 지속적인 압력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결국은 실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CCTV를 달 것이냐 안 달 것이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각종 불법 의료행위들이 CCTV 설치로 없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당장이라도 수술실에 CCTV를 달자고 하면 복지부 입장에서도 가장 쉽다. 시설기준에 병원 수술실을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환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인권문제 등을 걱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상을 촬영해서 어떻게, 누가 갖고 있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병원이 알아서 관리하라고 맡겨두는 것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은 근본적으로 자율정화를 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한 원로 의료인은 “의학적 지식만 있다뿐이지 배워 먹지 못한 놈들이 의사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을 함께 쌓고, 의사로서의 윤리의식을 갖춘 다음에 의사 자격을 줘야 하는데도 현재의 의사 배출방식은 ‘기술자’만 양산하는 형태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2019년도 의사국가시험의 경우, 전체 3307명이 응시해 3115명이 합격했다. 합격률 94.2%다. 매년 합격률을 보면 93~94%를 상회한다. 의대 교과를 충실히 이수했다면 큰 무리 없이 합격할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인 셈이다. 여기에 별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절차는 없다.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으로 전부 거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를 평가할 보완책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면허는 한 번 취득하기만 하면 웬만한 불법 의료행위를 하다 적발돼도 사실상 박탈될 일이 없다는 점 때문에 징계 강화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형집행이 종료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허 재교부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종신 면허’인 셈이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개업한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나쁜 짓은 생각보다 쉽게 배우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대학교수까지 하고 적어도 내 전공에 있어서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성형외과를 개업했는데 나는 월 2000만원을 벌고, 그 옆에 전문의 자격증도 없는 일반의가 각종 시술을 하면서 월 5000만원을 벌면 어떨 것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소신껏 잘하는 분야의 시술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개업의 사이에서는 매출이 곧 실력이었다. 전문의인 내가 일반의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담실장이나 여러 곳에서 ‘원장님, 이런 시술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이런 수술이 요즘 유행이랍니다’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들여오다보면 매출은 오르는데 어느 순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수술에 한계가 온다. 거기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러면 ‘사람’을 쓰게 된다. 유령수술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를 한 적은 절대 없지만 마냥 떳떳하지는 않다.”

환자들 인권문제도 고려해야

실제 유령수술이나 공장형 동시수술 등의 불법 의료행위는 환자가 몰리는 성형외과나 정형외과 분야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014년 4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때 성형외과의사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유령수술, 의사면허 대여, 대리수술을 감추기 위한 다량의 수면마취제 투여 실태 등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또 근절할 수 있도록 자구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이 같은 불법의료 실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강남의 일부 병원에서는 국소마취만 하면 되는 쌍꺼풀 수술 환자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 그렇게 하겠나. 환자를 재워야 대리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술 경험이 적거나, 의사면허가 잠정 박탈돼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수술에 동원되다보니 쌍꺼풀 수술을 하다 실명되는 환자가 나오는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지금 현재도 벌어지는 일이다.”

보건복지부는 차선책으로 의사 징계정보를 공개하는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16년에 한 차례 법률안 발의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회계사, 법무사, 세무사는 징계정보를 공개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들에게 어떤 의사가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 제공은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환자단체나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정보공개 요구를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변호사법과 달리 별도의 의사법이 없어 정보공개 등에 관한 규정은 별도의 법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법안 마련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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