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덴마크 성교육 책이 2020년 한국에선 '금지'···여가부, 어린이 성교육 도서 회수

2020.08.27 16:47 입력 2020.09.12 08:22 수정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서 회수 대상이 된 도서 중 3종.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서 회수 대상이 된 도서 중 3종.

여성가족부가 ‘동성애 미화’ ‘성관계 노골적 묘사’라는 비판을 받은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용 도서 7종을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사업에 선정된 일부 도서가 “동성애를 미화·조장한다” “조기 성애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여성가족부와 함께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 참여한 초록어린이재단 측도 사업에서 빠질 뜻을 26일 밝히면서 아이들에게 성인지감수성과 성평등문화교육을 제공하려는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흔들리게 됐다.

여성가족부는 26일 “일부 도서의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일고 있음을 감안해 해당 기업과 협의해 도서를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수 대상 도서는 <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 7종이다.

특히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 유아동 성교육 자료로 널리 쓰여온 책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해부학적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 조기성애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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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등은 다양성을 강조한 장면에서 동성애를 미화·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엄마 인권 선언>과 <아빠 인권 선언>은 국제엠네스티 지원으로 출간된 도서이며 프랑스에선 3만부 이상 팔리고 10개 언어로 번역 출판된 도서다.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역시 스웨덴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등 유수의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페르닐라 스탈펠트 작가의 작품이다.

50년 전 덴마크 성교육 책이 2020년 한국에선 '금지'···여가부, 어린이 성교육 도서 회수

해당 책이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르자마자 전격적으로 회수 결정을 내린 여성가족부의 결정을 두고 여성단체 측에서는 유감을 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7일 성명을 내고 “성평등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할 책무가 있는 여성가족부는 인권과 다양성, 성평등과 존중의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국회의원과 일부 혐오세력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문화적 수용성’이란 이유를 붙여 실질적인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며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가족부는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부처다. 여가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 심각하게 평가하고 반성하라.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요구했다.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6일 논평을 내고 “김병욱 의원이 문제삼은 도서는 1970년 덴마크에서 발간한 초등학교 교재에 실린 내용이다.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보건과 금욕 중심의 학교 성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시대에 맞지 않는 성교육을 지적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구시대적이며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부는 학교에서 국제표준을 반영한 인권과 성평등 기반의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성희롱과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를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양한 교수 매체, 도서, 교재들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금기시해 온 성소수자 관련 내용, 성별, 가족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고 소수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 또한 성평등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N번방·다크웹 사건 등을 통해 미성년자들이 성적 착취와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제공하지 않고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아동문학평론가 A씨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더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을 최근 N번방 사건 등을 통해 알게 됐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겪는 성적 착취와 같은 일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희생자가 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A씨는 “성폭력 피해 아동,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나와는 상관 없는 아이들이고 내 주변 아이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며 “유튜브 등 모바일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이 접하는 콘텐츠는 이미 통제나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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