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집단 산재신청, 내용 뜯어보니

2021.01.02 11:46 입력 2021.01.02 20:37 수정
이하늬 기자

포스코에서 일한 뒤 각종 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이 같은 집단 산재신청은 포스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에 따르면 산재 신청자는 폐암 4명, 폐섬유증 2명, 루게릭병 3명, 방광암 1명, 혈액암 1명 등 총 11명이다. 모두 짧게는 15년 길게는 42년을 포스코 현장에서 일했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건강수첩 하나 못 받았다”는 정모씨

포스코 정규직이었던 정모씨(70)도 산재 신청자 중 1명이다. 그는 1980년에 포스코에 입사해 29년 동안 ‘코크스’ 공정에서 일했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원료인 코크스는 석탄을 아주 오랫동안 구운 것을 말한다. 일종의 ‘숯’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코크스 공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석탄과 함께한다. 석탄을 준비해 ‘코크스오븐’에 넣는다. 석탄이 건류(휘발성 물질과 비휘발성 물질을 분리하는 일)되면, 오븐에서 꺼내 물이나 진공으로 코크스에 남은 불을 끈다(소화). 이런 과정을 거친 코크스는 용광로에 들어가기 위해 이동된다.

정씨는 코크스를 식힌 다음,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앞쪽에는 코크스오븐이 뒤쪽에는 철광석을 건류하는 소결로가 있었다. 또 한쪽에는 철광석을 쌓아놓는 야적장이 있었다. 그는 “코크스오븐에서는 가스가 나왔고, 야적장에서는 늘 분진이 날렸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게 위험한 줄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젊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 다만 눈이 아플 정도로 분진이 날렸고, 얼굴을 쓱 닦으면 까만 것들이 묻어나와 마스크는 쓰고 일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와 동료들은 방한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10년 정도가 지나서야 방진마스크와 보호안경을 지급받았다.

퇴직 후 건강검진에서 폐가 안 좋다는 말을 들었다. ‘별문제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2년 뒤, 서울 대형병원에 갔더니 폐섬유증이라고 했다. 의사가 정씨의 직업을 물었다. 제철소에서 일했다는 대답을 듣더니 “작업환경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폐섬유증은 폐조직이 굳어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이다. 진폐증과 함께 탄광노동자들이 많이 걸리는 직업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석탄 분진 속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라는 1급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정씨가 말했던 ‘코크스오븐가스’는 코크스오븐배출물질(COE)로 역시 1급 발암물질이다.

COE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COE에는 벤젠, 벤조피렌 등 익숙하게 들어온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COE는 발암물질 덩어리”라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복잡하니 코크스오븐에서 배출되는 가스 자체를 발암물질로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섬유증 진단을 받고 나니 아프다고 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조에서 근무했던 김모씨(61)는 2016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입사 동기는 퇴직 전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역시 코크스 공정에서 일했던 송관용씨(70)는 재직 중 두 차례 백혈병에 걸렸다. 송씨는 산재를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정씨는 포스코 지회를 찾아가 산재를 신청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퇴직자 중에 암환자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그였다. 그는 “그 가스와 분진이 발암물질인 줄 몰랐다. 회사가 말해줬어야 알지. 나는 건강수첩 하나 못 받았다”며 “책임을 다퉈보고 싶다”고 말했다.

포스코 집단 산재신청, 내용 뜯어보니

냉연부 2명 루게릭병 진단

지난해 세상을 등진 박모씨(사망 당시 64세) 유족도 산재를 준비 중이다. 박씨는 1980년에 포스코에 입사해 36년을 일했고, 마지막 8년은 스테인리스 공장 냉간압연부(냉연부)에서 근무했다. 냉연은 거대한 롤러에서 두꺼운 철판을 얇게 펴는 공정이다.

냉연공정에서는 절삭유, 윤활유 같은 오일이 많이 사용된다. 코일이 매끄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공중에 오일이 둥둥 떠다닌다. 햇빛을 받으면 오일이 반짝거린다고 해야 하나. 오일 때문에 바닥도 미끈거린다”고 말했다. 오일미스트, 즉 기름먼지다.

기름칠을 한 롤러는 빠른 속도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쇳가루 같은 먼지도 많이 날렸다. 스테인리스 공장 냉연공장에서는 니켈, 육각크롬 등의 중금속 가루가 날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테인리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크롬과 니켈을 인위적으로 넣기 때문이다. 두 성분은 녹이 안 슬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크롬과 니켈은 사람 몸에서는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반짝거리며 공중에 떠다니는 오일미스트도 발암 가능 물질이다. 석유로 만들어진 절삭유는 온도가 올라가면 벤젠 등 휘발성 유기화학물질을 배출한다. 박씨가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사망했다.

냉연공정에서 일한 지 7년째, 박씨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왼쪽 팔에 힘이 빠진다며 헬스를 더 열심히 했다. 그는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왼쪽 팔의 힘은 돌아오지 않았고 점점 야위어갔다.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초기 증상이었다.

퇴직 6개월을 앞두고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해, 박씨와 같은 스테인리스 공장 냉연부에서 일했던 이모씨(포스코 30년 근무)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박씨의 부인은 “세상에 이런 우연의 일치도 다 있다고만 생각했다. 남편이 그런 작업환경에서 일한 걸 몰랐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다 길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포스코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윤활유에 노출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루게릭병 발병 위험이 3배 이상(2016년도 안전보건공단 연구보고서) 높아진다는 내용 등을 알게 됐다.

루게릭병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는 많지 않다.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이라서다. 유족은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작업환경의 무해함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연의 일치’라 생각했던 이씨도 이번 산재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지난해 사망했다.

금속노조 사내하청 지회와 포스코 퇴직 노동자, 산재 신청자의 유족 등이 2020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하늬 기자

금속노조 사내하청 지회와 포스코 퇴직 노동자, 산재 신청자의 유족 등이 2020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하늬 기자

“앞으로는 하청노동자에 주목해야”

이번 집단 산재 신청자 11명 중 9명이 포스코 정규직이고 1명이 건설노동자, 1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인 이모씨(57)다. 이씨는 사내하청에서 15년을 일했다. 초반 7년가량 드럼 필터 공정에서 일했고, 나머지 8년 동안 용접을 했다. 둘 모두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작업이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 때, 쇳물만 나오는 게 아니다. 쇳물은 가라앉고 나머지 찌꺼기는 위에 뜬다. 이런 찌꺼기와 사용하지 못하는 코크스 등은 모두 드럼 필터로 모인다. 부산물 처리장인 셈이다. 이들은 드럼 필터에서 물을 뺀 다음 드럼통으로 옮겨진다.

부산물들을 그냥 버리지 않는 건 드럼통에 모아 다시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대정 지회장도 드럼 필터 공정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여기서는 유리규산, 석면, 가스 등 온갖 유해물질이 나온다”고 말했다. 유리규산과 석면 모두 1급 발암물질이다.

각종 물질에 노출되는 건 용접도 마찬가지다. 제철소에는 각종 설비가 많다. 이씨는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절단하고 용접했다. 그는 “공장 안에 모든 공정을 다 왔다갔다 한다. 공정마다 나오는 유해물질에 골고루 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용접할 때는 중금속 연기인 ‘흄’이 나오는데, 이는 산업안전보건기준의 관리를 받는 유해물질이다.

주변에는 암환자가 여럿 있었다. 이씨 직전에 드럼 필터에서 일하던 팀장은 간암에 걸려 부서를 바꿨다. 그 자리에 이씨가 팀장으로 들어갔다. 이씨와 같이 일했던 팀원은 폐암에 걸렸다. 그는 “이상하긴 했지만 일이 바빠 그런(작업환경)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8년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산재를 신청했지만 당시에는 승인되지 않았다. 이번 집단 산재 신청을 계기로 이씨도 재심을 청구했다. 이윤근 소장은 이씨와 같은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 중 상당수가 하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포스코 “유해환경이라는 건 일방적 주장”

지회는 이번에 산재를 신청한 이들보다 더 많은 직업병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대정 지회장은 “40건이 넘는 제보를 받았지만, 지금 산재 신청이 가능한 인원만 추려 11건이다”라며 “회사에서 교육을 안 하니까 본인이 취급하는 물질이 위험한지 아닌지 잘 모른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산재 신청이 많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산재 신청자 일부를 대리하는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는 지난해 12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제철소는 발암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인데도 직업성암 신청 건수가 10년간 4건, 암 산재인정이 3건이라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먼저 집단 산재 신청이라는 것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산재 신청은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신청할수 있으며, 공단에서 산재 조사 과정에서 회사로도 사실관계 확인 문의가 온다. 우리가 받은 문의는 아직 한건밖에 없다”며 “실제로 집단으로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산재 판단이 난 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암물질과 암 발병 위험과 관련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연 2회 실시하고 있는 작업환경 측정결과에 따르면, 포스코는 법적 노출 기준보다 현저히 낮게 관리되고 있다”며 “폐암이나 루게릭병 발병률도 전국 평균보다 낮고, 의학적으로도 업무와 질병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어렵다. 유해환경이라는 건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다. 향후 포스코는 공단의 조치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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