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어떻게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나

2021.03.14 07:57

2019년 6월 13일,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는 대상자 8명을 심사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61)이 단연 화두였다. 당시 추천위원이었던 법조계 인사는 “다른 후보는 대부분 법조계 추천인데, 윤석열은 시민사회단체 추천이 유독 많았다”고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의 대중적 인지도가 반영된 현상이었다.

윤석열 전 총장을 두고 위원들 사이 논의가 길어졌다. 기업범죄나 권력형 범죄를 맡는 특수부를 주로 해 ‘특수통’ 아닌 검사들이 조직 내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당시 또 다른 추천위원은 “생각이 다른 검사들과 부딪혔을 때 갈등을 잘 풀 수 있겠냐는 지적도 있었다”고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을 종종 ‘패싱’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심사는 절차였을 뿐이었다. 청와대가 점찍어둔 윤석열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한때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임기 142일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취임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3월 5일 진행한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사임 직후 첫 여론조사였다. 문재인 정부와 부딪히고 맞서며 쌓은 포인트가 여론조사 성적표로 찍혔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가 찍어 올린 발탁인사였고, 다시 찍어내리는 과정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언급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본인이 정치하고 싶다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사람은 없다. (청와대가) 열심히 칼을 휘두르려고 하는 사람(윤석열 전 총장)을 무서워해 일을 못 하게 했다는 이미지와 맥락이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3월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3월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우리가 알던 윤석열

윤석열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혐의를 포착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수사 스타일을 고수했다. 누구나 알던 윤석열이었다. 수사대상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해석과 반응이 달랐고, 이 과정에서 ‘윤석열 스타일’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치적 자산이 됐다. “애초에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이 무리였다. 여권이 반성해야 한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후회는 2020년 12월에서야 공개적으로 나왔다.

윤석열 전 총장의 적폐청산 수사는 거침없었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핵심인사와 기업인 상당수를 감옥에 보냈다. 청와대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2017년 12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적폐청산 수사의 연내 마무리를 언급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대검의 수사 데드라인 설정에 반발하는 모양새였다. 청와대와 여당이 서울중앙지검에 힘을 실어줬다. 적폐청산 수사의 당위와 명분이 앞섰다. 청와대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직거래’한다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한 시점과도 일치한다.

저돌적인 수사 스타일을 향한 지적도 비껴갔다.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적폐청산 수사과정에서 변창훈 검사 등 주요 피의자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금로 법무부 차관은 “무리한 수사는 없었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수언론에선 보복 수사라고 비판했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반헌법적 범죄 수사이며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했다. 수사는 큰 차질없이 이어졌고, 윤석열 총장의 ‘거악 척결’ 이미지는 선명해졌다.

문재인 정부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정, 부패 척결, 공직자 범죄 엄벌을 앞세워 발 빠른 수사가 이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는 30여곳을 압수수색하며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필요 이상의 인력을 투입한 과잉수사라는 비판에 권력자가 사회 공정성을 뒤흔든 사건이라는 명분이 맞섰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심 재판에서 상당수 유죄가 나와 수사 정당성을 확보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와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도 이어졌다.

‘윤석열 스타일’은 사실 정권 초반부터 예견됐다. 서울중앙지검이 2017년 11월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면서 법무부와 청와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큰 갈등은 빚지 않고 넘어갔다.

제 식구만 챙긴다는 약점은 ‘맞으면서’ 갔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친형이 얽힌 사건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석열 전 총장의 위증논란까지 나왔지만 당시만 해도 여당 의원들이 방어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취임 직후 첫 간부급 인사에서 측근으로 분류되는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대검 간부에 임명했다. “검찰에 특수부 검사만 있냐”는 뒷말이 나왔다. 논란은 조국 전 장관 수사와 총장 징계 국면에서 검사들이 뭉치며 해소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019년 9월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며 창밖의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019년 9월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며 창밖의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갈팡질팡’ 검찰개혁이 원동력

‘반 검찰개혁’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상징처럼 따라붙는 꼬리표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개혁에 저항하려 조국 전 장관 일가를 수사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외부 인사의 의견을 수렴해 내부 개혁을 추진하던 검찰인권위원회, 대검 미래위원회는 윤석열 전 총장 재임 시절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검찰개혁의 가장 큰 축인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만 놓고 보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흐름은 ①특수수사 등 직접수사는 유지→②특수수사 등 직접수사 대거 축소 필요→③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로 검찰수사 기능 완전 분리로 이어졌다. ①번 국면은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②번 국면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직후에 나왔다. 윤석열 전 총장은 ③번 국면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①번은 조국 전 장관이 2018년 1월 직접 발표한 기조였다. 조국 전 장관의 발표 전후 대검 분위기는 미묘했다.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발표 내용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부 특수부 수사를 제외하곤 직접수사를 포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작 청와대가 직접수사를 많이 남기려고 하는 분위기”(당시 대검 관계자)라거나 “(문무일) 총장이 종종 일부 특수부 검사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특수부 검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아니겠냐. 청와대도 사실상 윤석열 지검장 손을 들어준 것”(당시 또 다른 대검 관계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종민 변호사(전 순천지청장)는 “직접수사 대폭 축소 내지는 폐지로 가자는 공감대는 대부분 형성돼 있었다. 정작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4차장을 신설하는 등 실제 움직임은 가야 하는 개혁 방향과 달랐다. 갑자기 다시 직접수사 축소로 간다고 하니 의아했다”고 했다. 김종민 변호사는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이었다.

직접수사 존치는 윤석열 전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때만 해도 청와대와 윤석열 전 총장이 대립하기 전이다. 여권에서 윤석열 전 총장을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인물로 여기진 않았다.

정부가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직접수사 대폭 축소로 기조를 틀면서 검찰에 권한을 줬다 빼앗는 모양새가 됐다. ②번 국면이다. 권력에 억압받는 ‘피해자’ 윤석열 이미지도 한층 강화됐다. 동시에 조국 전 장관 수사 강행이 곧 검찰개혁 반대로 읽히게 됐다. 윤석열 전 총장은 보수에겐 정권에 순응하지 않는 강골 검사, 여권에겐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적폐 검사가 됐다. 각 입장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열린 것도 이때쯤이다. 정치인 윤석열의 가능성은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부터 움트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여당에서 꺼내든 중수청도 검찰의 직접수사를 아예 없애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최근 진행되는 ③번 국면이다. 중수청을 둘러싼 논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중수청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독립수사청은 원래 특수부 검사들이 선호하는 검찰개혁 방식이다. 문무일·윤석열 전 총장을 비롯해 특수부 검사들 다수는 분점된 금융범죄수사청, 조세범죄수사청 등 독립수사청 설립을 선호했다. 검찰수사 권한을 분산해 힘을 빼되, 수사하고 싶은 검사는 계속 수사하게 해주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다만 이들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맥락에서의 독립수사청을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중수청 추진은 윤석열 전 총장 사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총장 징계 추진과 대검 간부 인사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으로 갈등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 수사·기소의 완전 분리를 전제로 한 중수청 설치는 법치주의 말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사퇴할 결정적 명분이 없던 윤석열 전 총장에게 여당의 중수청 추진은 그럴싸한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운데)가 2020년 12월29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1차 회의에 참석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운데)가 2020년 12월29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1차 회의에 참석했다. | 국회사진기자단

■출마가 부를 혼란

윤석열 전 총장의 발언에는 ‘국민’이 자주 등장했다. 2019년 7월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선 국민을 19번 언급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되겠다는 취지였다. 자유민주주의도 시장경제질서, 공정한 경쟁과 함께 종종 입에 올랐다. 검찰의 기업범죄 수사로 대기업의 불공정 경쟁을 막아 자유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이끌겠다는 의중으로 읽혔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들어맞는다.

이번에는 달랐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3월 4일 사임하면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과 자유민주주의 모두 자주 썼던 단어였지만 뉘앙스는 확 달라졌다. 검찰수사의 맥락은 사라지고 정치인의 출사표처럼 여겨졌다.

윤석열 전 총장의 행적이 다시 회자되고 그간 언행에 해석이 따라붙는다.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주와 연이어 만난 사실이 부각됐다. 윤석열 전 총장이 2020년 10월 대검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고민하겠다”고 한 발언도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었냐는 지적이 불거졌다.

총장 취임 이후 이어진 정권 수사의 배경도 의심받는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에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윤석열 총장이 사퇴하면 정권 수사를 하던 수사팀은 어떻게 되느냐”(김종민 변호사), “검찰총장이 부당한 탄압을 받았다고 해서 대선에 출마해도 되느냐는 별개로 판단해야 할 문제”(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윤석열 전 총장이 공식 대선 출마를 시사한다면, 검찰개혁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여당에선 강경파를 중심으로 중수청을 앞세워 윤석열 전 총장을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청와대는 기존 검경수사권 조정 안착을 주문했지만, 여당 강경파는 중수청을 매개로 움직이고 있다”며 “총장 사퇴로 검찰 조직은 할 말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윤석열 전 총장은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사퇴와 출마가 법치주의 붕괴를 막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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