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을 꼬박 굶었다” 인터넷 구걸 글의 진상은

2021.10.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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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넷] “한숨도 못 자고 몸 상태가 죽을 것 같습니다. ㅠㅠ 마실 것만이라도 부디 정말….”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여러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글을 올린 이는 “이틀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배가 안 불러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쓰레기 음식이라도 먹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도움 요청 글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왜일까.

한 댓글이 “글 말미에 달린 계좌번호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라”라는 팁을 알려준다. 실제 계좌번호로 검색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인터넷커뮤니티와 게시판에 해당 구걸 글이 올라와 있다. 이번 추석 연휴만이 아니다. 올여름, 지난해 겨울, 2018년 정도까지 비슷한 레퍼토리를 담은 도움 요청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인터넷 구걸 또는 사이버 구걸 글이다.

한 게시물에서 인터넷커뮤니티 DC인사이드에 올라온 인터넷 구걸 계좌인증 글 캡처를 발견할 수 있다.

저렇게 인터넷커뮤니티를 쫙 돌면서 글을 올리면 요즘에는 인터넷뱅킹에 수수료도 없다 보니 1000원, 2000원씩 보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장난삼아 혹은 욕하려는 의도로 1원, 18원 이렇게 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쌓이면 기백만원쯤 된다는 요지다.

이번 추석 연휴 때도 “밥 굶는다고 하니 짠해서 보냈다”며 1만원에서 10만원을 보낸 인증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정말 사기일까. 일단 계좌 개설은 실명으로만 가능하다. 글 말미의 계좌번호를 조회하면 최○○라는 이름이 나온다.

지난해 올린 글을 보면 자신을 대구에 사는 스물한 살이라고 밝혔으니 올해 스물두 살이다. 조금씩 변형됐지만, 이 청년이 올린 글의 사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 말기암으로 돌아가시고 고아가 됐다. 자전거를 타다 빗길에서 전봇대를 받아 넘어져 골절돼 수술했는데 병원비가 없어 집 보증금 200만원을 빼서 월 8만원에 개인 이삿짐으로 맡기고 병원비·생활비로 썼다. 저렴한 여관을 전전했지만, 돈이 떨어져 노숙하게 됐다.’

그런데 계좌를 제외하고 연락하거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글과 함께 올린 인증사진도 게시판에서 사용한 닉네임을 제외하고 얼굴이나 실제 그가 머무는 장소나 위치 등을 특정할 방법이 없다. 절박한 도움 요청이 실은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에 하나 진짜라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진짜로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는 것이라면?

“키다리 나눔점빵이라고 있어요. 당장 갈 데가 없다면 하루 이틀 정도 임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도록 긴급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 주인공이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한 대구시 희망복지과 관계자의 말이다.

도움을 요청할 경우 지원되는 긴급복지서비스는 3일 이내에 생계비가 나오고, 갈 데가 없다면 일시거소를 마련해준 다음 상담을 통해 적절한 수급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긴급지원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본인의 도움 요청이 전제돼야 한다.

“이름과 계좌만으로 확인이 어렵습니다. 본인 요청 없이 조회를 요청하는 것도 힘들고요.”

이 관계자는 9월 28일 통화에서 “대구는 구마다 긴급복지담당자들 네트워크가 있다”며 “혹시 거론한 것과 유사사례가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밝혔다.

기사 마감을 앞둔 9월 30일, 이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해 물어봤다.

“수소문을 해봤습니다만 따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적어도 대구시 관내에는 비슷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추석 명절 게시판을 달군 인터넷 구걸 사건의 결론?

역시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사이버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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