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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난민 인정, 동생은 감옥에 갇혔다

2021.11.18 06:00 입력 2021.11.18 09:52 수정

난민 인정 위해 가져온 증거들

본인 동의 없이 본국으로 보내

이집트에 있던 동생 ‘징역 4년’

이집트에서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체포·구금 위험을 피해 입국한 후 난민 인정을 받은 주바(가명)./ 한수빈 기자

이집트에서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체포·구금 위험을 피해 입국한 후 난민 인정을 받은 주바(가명)./ 한수빈 기자

동생 얘기를 꺼내자 주바(가명·25)는 눈물을 보였다. 주바가 동생의 체포 소식을 들은 건 2018년 5월. 이집트에서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지 한 달이 지난 때였다. 그가 자신에 대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자 법무부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직원은 주바가 현지에서 가져온 형사판결문의 진위를 가리겠다며 그의 동의 없이 판결문을 이집트의 대사관으로 보냈다. 주바는 “이집트에서 문제가 있어서 난민 신청을 한 건데 어떻게 그 서류들을 이집트로 보낼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수배 중이던 주바의 동생이 대사관의 사실 조회 이후 이집트에서 체포됐다. 주바는 “법무부 직원들이 확인을 위해 이집트의 대사관에 연락한 후 (현지) 정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가서 기물을 파손하고, 학교에 갔던 동생은 체포를 당했다”며 “개인정보가 유출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체포된 주바의 동생은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9일 기자와 만난 주바는 이집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시위현장에서 살해당하고, 집에 있다가 체포 당하고, 3년째 강제 실종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 역시 정권에 반대하는 평화시위와 농성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8년 4월, 주바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인권이 보장된다’는 한국으로 왔다. 그로부터 3년 반만인 지난 9월 그는 드디어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사랑하는 동생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목숨 걸고 왔더니 “거짓말 마라”
65% 난민심사 기회 조차 없어

■동의 없이 현지에 사실 조회…“난민법 위반 소지 있어”
사실 조회를 위해 난민신청자가 증거로 가져온 서류를 다시 본국으로 보내는 일은 종종 벌어진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주바 사례처럼 본인의 동의 없이 대사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법무부는 현지의 한국 대사관은 한국 정부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간 협력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지의 대사관이 본국 정부랑 결탁이 돼 있을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난민법 제17조는 난민신청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거나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정보를 출신국에 제공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김 변호사는 “(개인정보가 본국에 유출됐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지만 난민법 위반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이집트에서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체포·구금 위험을 피해 입국한 후 난민 인정을 받은 주바(가명). / 한수빈 기자

이집트에서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체포·구금 위험을 피해 입국한 후 난민 인정을 받은 주바(가명). / 한수빈 기자

공항 문턱 넘어도 무한 기다림
난민심사 기간은 평균 16개월
생계비 신청할 수 있지만 몰라
“난민도 사람으로 생각해주길”

■험난한 난민 신청 절차…‘10명 중 3명’의 벽을 넘어야 심사가 시작된다
한국의 난민신청 절차는 ‘난민신청 회부’와 ‘난민인정 심사’로 나뉜다.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 회부 심사를 통과하면 입국이 허가되고 이후 관할 출입국사무소에서 난민인정 심사를 받는다. 회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난민신청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 법무부의 ‘2021년 9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2016년부터 2021년 9월까지 1156건의 난민신청 중 심사에 불회부된 사례는 757건(65.5%)이다. 신청자 10명 중 7명에 가까운 이들이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의 원래 취지는 여러 사정으로 설령 입국이 안 되는 경우라도 난민 신청 의사를 밝히면 심사의 기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건데, 일종의 사전 심사처럼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바도 ‘불회부 결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정치적 박해를 증명하기 위해 100개가 넘는 시위 참가 사진·영상과 현지에서 받은 판결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지금 이집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시위에 참가할 수 있냐,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공항 직원의 냉담한 말이었다. 주바는 당시 심정에 대해 “끔찍했다. 끝이라고 생각했다”며 “정착에 대한 희망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꿈꿨는데 그곳에서 모든 문이 닫혀버린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공항 직원이 송환 서류에 서명을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이집트에 돌아가면 체포를 당해 평생 감옥에 갇히거나 다른 친구들처럼 살해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는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 이 곳이 누군가에겐 트라우마의 장소다. 주바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면 3년 전 공항에서 노숙했던 경험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주어지지 않은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본국에 송환될 수 있다는 불안에 떨며 패스트푸드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공항 의자에서 잤다.

■드디어 입국, 기나긴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2018년 5월, 주바는 열흘 넘는 공항 노숙을 끝내고 드디어 한국에 입국했다. 법무부는 현지 사실 조회를 통해 주바의 형사판결문이 ‘진짜’ 서류로 확인돼 불회부 결정 처분을 취소했다. 정식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바는 3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면접조사는 올해 여름에야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심사가 아예 중단됐다. 주바는 다급한 마음에 코로나19 검사까지 하고 출입국사무소를 찾았지만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비단 주바뿐만이 아니다. 난민인권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평균 난민심사 완료 기간은 15.9개월이었다. 44개월, 4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 심사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난민법에는 6개월 안에 심사를 하고 필요한 경우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제는 법무부가 ‘6개월 연장’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 난민신청자는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 난민신청자는 기타(G-1) 비자를 부여받고 난민인정 신청일부터 6개월까지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난민신청자가 생계비 지원책이 있다는 걸 모르거나 신청하는 방법을 모른다. 지난해 6684건의 난민신청자 중 생계비를 신청해 지원받은 경우는 265건(4.0%)에 그쳤다. 또 법에는 최대 6개월 지원하게 돼 있지만 지난해 평균 생계비 지원 기간은 3.8개월에 불과했다. 지난해 생계비 지원 예산 8억3900만원 중 집행된 금액은 5억4900만원에 그쳤다.

6개월이 지나면 취업이 허가되지만 단순 노무 직종으로 제한된다. 구직 과정에서 인종 차별도 종종 당한다. 주바 역시 일을 구하기 위해 인력 사무소에 갔지만, “무슬림이니까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에게 난민 심사를 기다린 3년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시간이었다. 그는 “3년 간 내 삶은 멈춰 있었다”며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할 수 없었고 제대로 일도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계속 살아갈 나라…“난민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주바가 3년간 겪은 한국은 “난민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나라”이다. 지난 9월 드디어 난민 인정을 받은 그는 “학생 비자이든 뭐든 내가 받을 수 있는 다른 비자가 있었다면 난민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앞으로 그가 계속 살아갈 나라이기도 하다. 이집트는 ‘그립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다. 입국 후 단체 쉼터에서 지내던 그는 이제 혼자 살 집을 구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다 마치지 못한 학업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는 “난민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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