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맞아 “차별금지법 제정” 외친 이주노동자들

2022.03.20 16:44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3월21일을 맞아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공익인권법 재단 공감의 회원 및 이주 노동자 등이 모여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3월21일을 맞아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공익인권법 재단 공감의 회원 및 이주 노동자 등이 모여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3년 전 한국에 들어와 강원 원주시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A씨(25)는 지난해 12월 어느 날 오전 2시쯤 잠에서 깼다. 공장 관리자가 노크도 없이 기숙사 방문을 활짝 열었다. A씨, A씨와 같은 방에 있던 4명의 다른 네팔인은 관리자가 휘두르는 야구 배트에 맞았다. A씨가 ‘동생’이라고 부르던 네팔인 1명은 코에서 피가 났다. 공장 관리자가 떠난 후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경찰에 신고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A씨는 2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관리자가 왜 폭행을 저질렀는지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며 “‘동생’도 ‘여기 기숙사에서 머물기 무섭고 네팔로 돌아가겠다’며 일을 그만뒀다. 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의 이주노동자·이주민들이 20일 ‘2022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옆에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인종차별 철폐의 날은 매년 3월21일로,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69명이 희생된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무지갯빛 깃발 아래 모인 이들은 국적도, 피부색도 달랐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인력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주민은 같은 사람이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국내에선 이주민을 상대로 한 차별·혐오 사례가 수차례 발생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지난해 6월 모로코 국적 남성 등에게 손목수갑, 발목수갑, 포승을 이용해 사지를 등 뒤로 묶어 결박한 ‘새우꺾기’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울산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 배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1조409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피해자 B씨는 “순식간에 불법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삼엄한 교도소에 갇혀서 노예처럼 다뤄지며 수개월간 고문당했다”며 “과연 한국 정부가 미국인이나 유럽인이어도 이렇게 대우할까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차별금지법을 미뤄 온 게으름과 무능이 혐오를 만든 만큼 지금 당장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했다.

차별금지법은 지난해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민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법사위는 이 청원의 심사기일을 21대 국회 마지막날인 2024년 5월29일로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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