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어느날 이른 아침. 잡지 '빅이슈' 판매원인 임흥식씨(67)는 서울 영등포구의 사무실에서 잡지를 챙겨 판매 장소인 중앙대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때 길가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3개월쯤 된 새끼 강아지 세 마리도 좌판에 있었다.
“무척 덥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 쬐는 날인데 우산 하나 씌워놨더라고요. 불쌍하기도 하고 원래 동물을 좋아하기도 해서 가까이 들여다 봤죠.”
복실복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인형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흥식씨가 선뜻 4만원을 꺼냈다. 그에겐 큰돈이다. “퇴근할 때 데리러 올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요.” 주인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날은 일을 하는 내내 강아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일찍 일을 마치고 와보니, 강아지는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름은 제리라고 지었다. 감명 깊게 본 영화 <제리 맥과이어>가 갑자기 생각나서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 함께 성공해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영화다.
흥식씨는 전기설비 작업을 하는 ‘뺀찌(펜치)쟁이’로 평생을 살았다. 1980년대 후반 작업을 하다 오른쪽 눈을 다쳐 실명했다. 그래도 계속 이 일을 해왔다. 하지만 군대에서 다친 허리가 점점 더 나빠져 2000년대 중반쯤 결국 펜치를 놓았다. 통증 탓에 다른 일도 할 수 없었다. 가족도, 돈도 없었다. 그렇게 쪽방촌을 전전했다.
2010년 방세가 수개월째 밀린 어느날, 그는 노숙을 할 작정으로 전 재산 2000원을 가지고 방을 나왔다. 그러다 무료 급식소에서 우연히 '빅이슈'를 알게 됐다. 빅이슈는 잡지 판매 수익 일부를 홈리스 판매원에게 돌려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흥식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허리 통증이 다리까지 번졌다. 너무 아파 속으로 울면서 일했다.
그래도 견뎌야 했다. 일정 기간 근무 후 꾸준히 저축한 판매원에겐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주어졌다. 2011년 12월, 드디어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제리를 만난 건 그가 자립해서 새 삶을 시작하려던 무렵이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흥식씨의 집은 방 2개짜리 조그만 빌라다. 제리와 둘이 살기엔 충분하다. 제리는 흥식씨 집에 처음 왔을 때 꼬리를 흔들며 잘 돌아다녔다.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곧 눈에 띄었다. 부르면 다가오는 다른 강아지와 달리 제리는 가만히 있었다. 시끄러운 지하철 안에서도 잠만 잤다.
수의사는 아직 어려서 그럴 수 있다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얼마 뒤 부엌에서 실수로 떨어트린 접시가 큰소리를 내며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제리는 거실에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었다.
“그때 귀가 안 들린다는 걸 알았어요. 어쩌겠어요. 같이 살아야지.”
동물과 사람, 함께 건강하기
각자의 아픔을 안고 둘은 가족이 되었다. 귀가 안 들리는 제리는 언제나 흥식씨 옆에 붙어있다.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표정을 읽으려고 늘 그를 바라본다.
허리가 아파 빅이슈 판매원 일을 2014년 무렵부터 쉬고 있는 흥식씨와 열 살 노견이 된 제리는 하루종일 함께 지낸다. 오전 7시쯤 제리가 흥식씨 몸 위로 올라와 잠을 깨운다. 산책을 나가자는 거다. 전에 한 번 넘어진 이후로 제리는 계단 내려가기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흥식씨가 허리 통증을 참고 매번 제리를 안고 내려갔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식사 시간이다. 흥식씨는 제리에게 사료를 먼저 챙겨준 뒤 식사를 한다. “제리 밥은 항상 먼저 줘야 돼요. 산책 갔다오면 밥 먹는 줄 알거든요.”
그 뒤에는 제리의 귀 소독을 해준다. 제리는 크고 긴 귀가 귓구멍을 덮은 ‘코커 스패니얼’종이다. 귀 질환이 자주 생기는데, 제리는 귀가 석회화돼 계속 소독을 해줘야 한다. 제리는 귀가 아프면 짖거나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흥식씨 품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오후에 산책을 한 번 더 나갔다 온 뒤 밥을 먹고 쉬다가 잠자리에 든다. 제리는 불이 꺼지면 흥식씨 옆으로 와서 잔다. 둘은 이런 하루를 10년 넘게 함께 보냈다.
제리는 흥식씨가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할 때도 늘 함께 있었다. 2012년 중앙대 인권센터에서 일했던 성정숙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대표는 둘의 당시 모습을 아직도 기억했다. 둘은 친구 처럼 평화로워 보였다고 했다. “편안해지는 풍경으로 기억해요.” 이런 둘을 보고 학생·교직원들이 간식 거리를 챙겨주거나 동물병원 진료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강아지 데리고 다니니 장사 잘돼요?”
제리를 이용하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리듯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흥식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자신과 제리의 관계를 비꼬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빅이슈 판매원을 할 때는 잘 팔리면 하루 2만5000원쯤 벌었다고 했다. 제리를 키우고 얼마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는데, 지금은 매달 70만원 정도 생계비 지원을 받는다.
빠듯한 생활이지만 우선순위는 언제나 제리다.
“저는 무조건 최저로 먹습니다.”
흥식씨는 반찬으로 10마리를 7000원에 파는 싸구려 ‘풀치’(갈치 새끼)를 대량으로 사두고 먹는다. 대신 아낀 돈은 제리에게 쓴다. 시장에서 노가리 잔뜩 사다가 물에 불려 소금기를 빼고 챙겨준다. 본인은 안 먹는 소고기도 사먹였다.
제리에게 간식을 계속 주었더니 살이 너무 쪄버렸다. 1년 전에는 19㎏가 훌쩍 넘었고, 엉덩이엔 지방종이 생겼다. 다이어트를 위해 배추, 당근 같은 채소나 닭가슴살로 간식을 바꿔줬다. 사료도 유명 브랜드의 반려견 다이어트용을 준다. 간식 달라고 보채는 제리를 외면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취약계층이라고 반려동물 양육 비용이 적은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2020년 조사를 보면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월평균 반려견 양육비는 13만8437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전체 반려견 양육 평균 비용(14만9700원)과 비슷하다. 흥식씨도 그 정도 비용을 쓴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반려동물을 키울 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좋지 않은 반려 관계다. 대표적인 게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다. 경제적·정신적으로 반려동물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에서 과도하게 양육에 집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보기도 한다.
서울 중랑구에서 길고양이 돌봄 활동을 하는 정경희씨(61)도 애니멀 호더 문제와 맞딱뜨린 적이 있다. 길고양이를 돌봐주면서 개체수 조절과 질병 예방을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해왔다. 2020년 봄 한 고양이가 주택가 반지하집 창문으로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문을 두드리자 A씨가 나왔다. A씨 집에는 고양이 15마리가 살고 있었다.
집에선 심한 악취가 났다. 쓰레기들이 곳곳에 쌓여있고, 제대로 된 고양이 화장실이나 음식이 없었다. A씨는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태였다. 경희씨는 “고양이를 도와주려면 사람도 같이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경희씨는 함께 활동하는 동생 정경선씨(60)와 A씨에게 반찬도 가져다주고, 상점 외상값도 갚아주면서 지원을 시작했다.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는 모임 회원들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믿음이 쌓인 뒤 A씨는 서울시와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우리동생)의 통합복지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질병을 앓던 A씨의 고양이들은 치료를 받았고 생활환경 개선과 심리 상담도 이뤄졌다. 지금은 고양이 대부분을 입양 보냈다. A씨는 일자리를 찾아 남은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흥식씨도 2021년부터 우리동생의 통합복지사업 도움으로 제리를 돌보고 있다. 우리동생 김현주 상무이사는 “흥식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리를 극진히 챙기는 모범 사례”라며 “A씨처럼 문제적인 반려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돕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 무분별한 양육을 부추기지 말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건강히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하루에 두 번은 꼭 운동하는 셈이에요.”
흥식씨에게 제리는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다. 흥식씨는 제리를 돌보면서 외로움을 이겨냈고,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관계의 풍성함을 제리와 쌓아왔다. 한 생명을 돌보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자존감도 되찾았다. 흥식씨는 제리와 만나 꾸준히 운동하게 된 걸 장점으로 꼽았다. 제리를 건강하게 돌보는 것은 흥식씨 삶의 질과도 연결된다.
“제리는 내 삶의 끈”
지난달 13일 흥식씨와 제리가 서울 마포구 우리동생 동물병원을 찾았다. 문 앞에 도착하자 제리가 갑자기 멈춰섰다. “병원인 줄 알아서 그래요.” 흥식씨가 간식으로 달래자 제리가 겨우 움직였다.
이날 제리의 몸무게는 1년 전보다 6㎏ 이상 빠진 13㎏ 정도였다. 구민희 우리동생 통합복지사업팀장은 첫 진료 후 흥식씨가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고 간식도 줄여 제리 체중이 줄고 지방종도 사라져 다행이라고 했다.
구 팀장은 통합복지사업으로 만난 모든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흥식씨 같지는 않다고 했다. “반려동물 의료지원을 할 때 보호자의 역할을 안내하고 최소 본인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귀찮다’거나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반려동물의 삶과 건강에 인색한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날 제리가 병원에 온 건 귀 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얼마 전 흥식씨가 돈을 모아 귀 수술을 해주려고 했는데, 제리의 퇴행성 심장판막 질환 탓에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심장 질환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꾸준히 귀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취재 차량 뒷좌석에 제리와 흥식씨가 나란히 앉았다. 제리가 흥식씨의 한쪽 팔에 다리를 올리며 낑낑거렸다. 흥식씨는 제리를 굳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제리가 한 번 더 툭툭 치며 울었다. 흥식씨 표정이 이내 풀어졌다. 간식을 달라고 하면 모른 척하는 둘만의 장난이다. 제리는 흥식씨 옆에 붙어 간식을 먹었다.
“제리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에요.” 간식 먹는 제리를 흥식씨가 가만히 쓰다듬었다.
동물병원을 찾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몇 해 전 제리가 설사 치료를 받고 온 날 새벽이었다. 제리가 낑낑거리며 잠든 흥식씨를 깨웠다. 제리 귀에서 피가 났다. 귀가 아픈지 계속 긁어댔다.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제리를 안고 갔다. 알레르기 반응 같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수술에 500만원쯤 든다고 했다. 흥식씨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전에 반려견 보험에 들려 했지만 제리 나이가 많아 가입하기 어려웠다. 우선 약을 처방받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약을 먹고 건강을 되찾았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언젠가 다가올 제리와 헤어질 날을 상상하는 것이 흥식씨는 두렵다. 2016년 12월 어느날 밤 잠자리에 들던 흥식씨는 심장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고 구급차에 실려갔다. 제리가 겁을 잔뜩 먹고 응급실로 가는 흥식씨 뒤를 따라 나서려고 짖어댔다. 겨우 제리를 떼어 놓고 병원에 온 흥식씨는 그날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다. 2019년에도 한 차례 더 앓았다. 지인이 제리를 잠시 돌봐줬지만, 제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없으면 귀도 안 들리는 노견 제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흥식씨는 제리보다 먼저 죽을 수 없다고 했다. “제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살다 갔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제리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해요.”
“제리와 함께 풍족하진 않더라도 헤어질 그날까지 고통없이 살았으면.” 흥식씨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이렇게 적어뒀다. 흥식씨에게 “제리는 어떤 존재냐”고 물었다. “내 삶의 끈이죠.” 그가 이야기하는 내내 제리는 흥식씨 옆을 지켰다. 제리도 흥식씨가 삶의 끈인 것처럼 보였다.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