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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아니라 사자 탈출하면 어떡하려고”···동물원 실태조사 보니

2023.03.27 16:17 입력 2023.03.27 17:24 수정

환경부 ‘울타리 기준’ 매뉴얼

동물원 10곳 중 1곳만 충족

제도적 허점 대책 마련해야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23일 오후 2시50분쯤 탈출한 얼룩말 한 마리가 시내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23일 오후 2시50분쯤 탈출한 얼룩말 한 마리가 시내 주택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환경부가 매뉴얼로 정해 놓은 울타리 높이 기준을 지키고 있는 동물원이 10곳 중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주한 얼룩말 ‘세로’의 도심 질주 소동 이후 동물원의 안전불감증과 열악한 사육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데, 안전시설이나 사육에 필요한 환경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도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허점이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27일 입수한 환경부의 ‘동물원 보유동물 서식환경 현황조사’ 문건을 보면, 환경부 매뉴얼에 적시된 울타리 기준(높이 1.2~4.3m 등)을 모두 충족한 동물원은 포유류 수용 동물원 76곳 중 7곳(9.2%)에 불과했다. 이를 포함해 내부 울타리 4분의 3 이상이 기준을 충족한 동물원도 18곳(23.7%)에 그쳤다. 기준에 맞는 울타리가 4분의 1 미만인 동물원이 11곳(14.5%)이나 됐다.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이 조사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환경부 용역을 받아 수행했다. 지난해 7월 기준 전국의 동물원 수는 총 113곳이다. 이 가운데 누락 없이 설문에 응답한 86곳을 분석한 결과이다. 연구를 수행한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울타리 기준을 만족한 7곳은 모두 소동물만 있거나 시설 규모가 작아서 기준 충족의 의미가 별로 없는 곳들”이라고 했다.

2022년 12월 환경부 조사결과 나타난 전국 동물원 포유류 시설 표준 매뉴얼 항목별 충족 현황

2022년 12월 환경부 조사결과 나타난 전국 동물원 포유류 시설 표준 매뉴얼 항목별 충족 현황

‘얼룩말 탈출’ 소동이 벌어진 서울어린이대공원의 경우 높이 기준을 충족한 울타리 비율은 55%였다. 전체 동물원 평균(62%)보다 낮은 수치다.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은신처가 마련된 비율도 67%로 평균(77%)보다 낮았다. 조경욱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장은 통화에서 “얼룩말 세로가 탈출했던 울타리를 목재에서 철재로 바꾸고 높이도 2m 이상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외 방사장 등 동물 복지에 중요한 시설을 갖춘 동물원도 적었다. 조사 대상 동물원 중 야외 방사장이 필요한 곳은 67곳인데, 이 가운데 기준치의 4분의 3 이상을 갖춘 곳은 33곳(49.3%)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4분의 1도 갖추지 못한 곳이 22곳(32.8%)에 달했다. 바닥 면적 기준을 4분의 3 이상 충족한 시설 역시 44.7%로 절반 이하였다. 모래나 흙 등 바닥재를 갖춘 비율, 이중문을 갖춘 비율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12월 시행되는 개정 동물원수족관법은 기존의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변경했다. 일정 규모만 충족하면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등록제와 달리 허가제에서는 보유동물 종별로 서식환경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미 등록된 동물원도 6년 이내에 허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환경부는 구체적인 동물원 허가 기준 등이 담긴 시행령을 마련하고 있다.

2022년 12월 환경부 조사결과 나타난 전국 동물원 종별(포유류) 시설 기준 충족률 결과

2022년 12월 환경부 조사결과 나타난 전국 동물원 종별(포유류) 시설 기준 충족률 결과

얼룩말 ‘세로’의 최근 탈출 소동을 두고 ‘갇혀 사는 동물의 일탈’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동물원의 안전불감증과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사자나 코끼리가 탈출했어도 귀엽다고 할 거냐” “애초에 좁은 동물원에서 얼룩말을 키우는 게 문제”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강원 강릉의 한 동물농장에서는 지난 1월 새끼 사자 2마리가 우리를 탈출했다 생포됐다. 2005년에도 어린이대공원에서 코끼리 6마리가 탈출해 길 가던 여성이 중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이형주 대표는 “애초에 정부가 우후죽순 동물원이 생겨나도록 방치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며 “환경부 매뉴얼이 국제적 수준에서 봤을 때 결코 높은 게 아닌데도 현재 전국에 있는 동물원 중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유예기간 동안 지자체가 관내 동물원이 허가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준이 매우 낮은 시설이 문 닫을 경우를 대비해 동물 보호시설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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