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처럼 번지는 ‘불법체류자 잡는 법’···베트남인 집단폭행 불렀다

2023.07.12 16:52 입력 2023.07.12 18:09 수정

미등록 이주민 찾아 경찰에 신고

온라인 커뮤니티서 유행처럼 공유

“이주민 혐오 집단폭행 현상 뒤엔

정부의 강경 단속 강화 기조 깔려”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신고했다는 내용의 틱톡 영상. 트위터 갈무리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신고했다는 내용의 틱톡 영상. 트위터 갈무리

“불법체류자 같이 잡으실 분. 그냥 취미로 하려고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2일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선착순으로 두 분 모셔서 2시간에 각자 10만원을 드리겠다”고도 했다. 해당 커뮤니티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중단’ ‘자국민 지키자’ 등의 표어를 내걸고 있다. ‘불법체류자’ 신고 방법을 묻는 글에는 구체적인 답변이 달려 있었다. “마약이 요즘 핫하던데 ‘마약이 의심된다’고 하라” “불법체류자 검거 축하드린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밖에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경찰에 신고한 뒤 검거 현장을 촬영한 영상들이 유튜브와 틱톡 등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30초 남짓한 짧은 영상에는 “뿌리 뽑아야 한다” “112 집중 신고하세요” 등의 자막과 함께 후원금을 보낼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이처럼 최근 틱톡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을 찾아내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 유행처럼 공유되고 있다. 이주민 지원 활동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단속 기조가 이처럼 혐오 정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폭행 등 범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며 단속일변도의 정책에 변화를 촉구했다.

경기 포천에서 지난 1일 미등록 이주민을 집단폭행한 10대 청소년들도 SNS상 공유되는 방법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에 탄 베트남 출신 노동자를 보고는 오토바이를 세워 “불법체류자 아니냐”고 협박하며 1시간여 폭행한 사건이다.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집단폭행이 꽤 계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주민들을 지원해 온 포천 샬롬의집 관계자는 “가해 학생들이 이전에도 다른 미등록 이주민을 협박하거나 돈을 뺏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면서 “매체 등을 통해 ‘미등록 체류자는 신고해도 항의를 못한다’는 점을 학습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전국이주인권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익 2차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6.15 /서성일 선임기자

전국이주인권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익 2차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6.15 /서성일 선임기자

이주민 지원단체들은 미등록 이주민을 향한 혐오 분위기가 집단폭행으로까지 이어진 현상 뒤에는 정부의 강경 단속 강화 기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들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내국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데서 혐오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섹 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제주 예멘 난민이나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나 비슷한 이슬람 국가에서 왔는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에 따라 시민들은 다르게 인식했다”며 “미등록 체류자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마약·불법 단속과 연결 짓다 보니 시민들도 미등록 체류자를 일종의 범죄집단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샬롬의집 관계자는 “그동안 이주민을 많이 접한 사업주나 일반 시민에게는 차별이나 혐오 정서가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올해부터 상시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이 진행됐는데 여기에 언론 보도와 개인 방송이 편승하면서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이 확대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 “현재 41만명인 불법체류자를 5년 내 20만명대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이후, 법무부는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강경 단속을 이어오고 있다. 태국 가수의 내한 공연장이나 교회 예배실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체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장관은 지난 5월 “불법체류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단속 분위기에 미등록 이주민들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번화가 길거리를 다니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불시에 단속을 하다 보니 미등록 이주민들이 어느 때보다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나 늘어나는 이주민을 방치해 온 과거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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