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주민들이 만든 ‘마을의원’,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동네 주치의’

2023.08.25 07:00 입력 2023.08.25 09:28 수정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에서 황찬호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보미 기자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에서 황찬호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보미 기자

휠체어 장애인으로 만성적인 어깨 통증에 시달리는 양혜련씨는 지난 21일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의사와 상담한 후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결과를 듣는 데까지 30여분. 진료실과 방사선실을 오가는 그의 동선에는 막힘이 없었다. 병원의 모든 문은 휠체어가 들고나는 데 충분한 폭의 미닫이였고, 진료·주사용 침대는 보통 병원보다 20㎝ 낮아 옮기기 쉬웠다. 의료진은 환자의 이동이나 증상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양씨는 이날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개원한 ‘마을의원’의 첫 환자였다. 그는 진료실에서 휠체어를 한 바퀴 크게 돌려 나오며 “보통 진료실에서는 조심스럽게 후진해야 한다”며 “병원까지 가기도 어렵지만 시설과 분위기 모두 장애인을 환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파도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곳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인 ‘함께걸음’ 조합원 450여명의 출자금과 후원금으로 만든 병원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예방 진료를 받을 수 있는 1차병원으로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과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상됐다. 입구에 적힌 문구처럼 지역사회를 위한 ‘우리마을 주치의’다.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에서 황찬호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곳이 모든 문은 휠체어를 탄 환자나 유모차를 끈 부모가 드나들기 쉽도록 넓은 폭의 미닫이로 돼 있다. 김보미 기자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에서 황찬호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곳이 모든 문은 휠체어를 탄 환자나 유모차를 끈 부모가 드나들기 쉽도록 넓은 폭의 미닫이로 돼 있다. 김보미 기자

최봉섭 조합 전무이사는 “특정 과에 편중된 전문의 중심 의료체계가 개인이 수시로 신체 상황을 파악할 1차 의료기관의 접근 기회를 줄인다는 위기감을 키웠다”며 “고령화에 따라 질병 치료보다 일상 검진 수요가 많아지는데 만성질환이 시작돼 검진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 50~60대 조합원들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마을의원’은 지역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층과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 높이는 한편 이들에 대한 돌봄과 연계해 지역통합돌봄으로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초고령 사회에 필요한 만성질환 관리, 방문 진료·간호 등으로 지역 내 가장 말단에서 믿을 만한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황찬호 원장은 “환자가 아무 때나 편하게 와서 포괄적 진료를 받는 게 동네 주치의 역할”이라며 “아픈 부위가 특정되지 않지만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고령층은 증상을 해석해 줄 조정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 벽면에 ‘우리마을 주치의’ 역할을 하겠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김보미 기자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 벽면에 ‘우리마을 주치의’ 역할을 하겠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김보미 기자

시간이 해결해 주는 가벼운 증상은 안심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위험 요소는 찾아내 전문의에게 보낼 수 있는 1차 병원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최 이사는 “지역통합돌봄은 포괄적 진료가 중요한데 노골화된 의료 상품화가 이 같은 지역 내 공간을 축소시켰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감으로 지난해부터 조합원 출자금과 후원금 등으로 4억5000만원을 모아 공간 인테리어를 하고 의사 1명, 간호사 1명의 의료진 갖춰 출발하게 됐다.

누구나 편하게 진료받도록 병원 설계에도 신경을 썼다. 휠체어나 유모차, 보행보조기 등이 드나들기 쉽게 넓은 폭의 미닫이문을 달았고, 진료·주사실 침대는 평균 70㎝인 높이를 50㎝로 낮췄다. 안전 손잡이도 곳곳에 설치했다. 앉은 그대로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는 특수 휠체어도 고안 중이다.

병원은 조합이 운영하지만 이용은 누구든 가능하다. 향후 마을의원은 노원 지역 내 어르신 돌봄 기관과 연계한 방문진료 등으로 돌봄과 의료를 통합 관리하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을 장기적인 과제로 보고 있다.

황 원장은 “고령층과 장애인 대상 방문진료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본인부담금을 구청 등에서 바우처 형식으로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 주사실 모습. 이곳이 모든 침대는 휠체어를 탄 환자나 고령층이 이용하기 쉽도록 평균 높이(70㎝)보다 20㎝ 낮게 설계돼 있다.김보미 기자

지난 21일 개원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을의원’ 주사실 모습. 이곳이 모든 침대는 휠체어를 탄 환자나 고령층이 이용하기 쉽도록 평균 높이(70㎝)보다 20㎝ 낮게 설계돼 있다.김보미 기자

조합원 출자금 외 지자체·정부와 파트너십 등을 맺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바탕으로 생존력을 갖추는 것도 숙제다. 이에 영유아건강검진, 장애인주치의사업, 만성질환관리 사업 등에 참여할 계획이다. 의료진 확보 역시 지속가능성의 큰 변수다. 마을의원은 노원에서 20년간 개인병원을 하면서 ‘함께걸음’ 운영에도 도움을 줬던 황 원장이 합류하면서 문을 열 수 있었다.

황 원장은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처럼 방문진료와 지역 내 요양·돌봄 필요성이 커지는 때 마을의원은 주민들이 스스로 필요한 의료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돌봄 기관과 병원이 운동 등 건강한 생활 방식을 함께 형성한다면 지역 공동체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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